[만물상] 꼴찌 부서 됐는데 ‘기재부의 나라’?
20여 년 전, 과천 정부청사에서 재정경제원(현 기획재정부)을 취재했다. 옆 건물의 농림부도 함께 맡게 돼 출입 기자 인사를 하러 갔더니 농림부 공보관이 쑥스러운 표정으로 “재경원에서 똑똑한 경제 관료들을 많이 만나겠지만, 우리 농림부는 너무 경제 논리로만 바라보지 말아달라”고 했다. 농업 정책은 늘 정치 논리가 앞선다는 의미에다 재경원 엘리트 관료들에 대한 ‘선망’ 같은 분위기도 느껴졌다.

▶30대 후반의 기획재정부 사무관이 사표를 내고 민주당 의원의 비서관으로 갔다고 한다. 의원 비서관 자리는 기재부 사무관보다도 고용 안전성이 떨어진다. 그런데도 ”기재부에서 미처 하지 못했던 일을 국회에서 구현하고 싶다. ‘정치’를 해야 일이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이직 이유를 밝혔다. 정치가 경제를 쥐락펴락하면서 온갖 경제 정책을 국회에서 정치 논리로 밀어붙이는 걸 보고 내린 판단일 것이다.
▶5급 공채 신임 사무관들이 부처 지망을 했다. 올해 기재부는 산업통상자원부, 새만금개발청과 더불어 ‘정원 미달’의 꼴찌 부처로 전락했다. 예전 같으면 행시 재경직 상위권은 당연히 재경부행(行)이었다. 올해는 재경직 최상위 5명 가운데 기재부 지원자가 1명뿐이었다. 행시 일반행정 직렬 최상위 5명 중에는 지원자가 아예 없었다.
▶작년 말 민주당 의원 출신이 조달청장이 되면서 기재부 내부가 부글부글했다. 전임 조달청장은 행시 31회로 기재부 1급 출신이었다. 신임 조달청장은 행시 40회로 기재부 출신이기는 하나 막내급 과장만 지내고 정치에 뛰어들었다. ‘정치 엘리베이터’를 올라탄 덕분에 기재부 선배들을 제치고 조달청장 자리에 오른 셈이다. 관세청, 조달청 같은 외청(外廳)은 기재부 1급 출신들이 청장으로 갔는데 지금은 이런 인사 통로도 막혔다. 다른 부처보다 업무량은 많은데 인사 적체로 승진 기회는 줄었으니 신임 사무관조차 기피하는 부처가 된 것이다.
▶오랫동안 기재부는 엘리트 경제 관료의 산실이었다. 역대 정권에서는 기재부 출신을 타 부처 장차관으로도 중용했다. 대통령 앞에서도 “그건 안 된다”고 소신껏 직언하는 선배 경제 관료들이 기재부의 자부심이었다. 현재 장관들 중에 기재부 출신은 홍남기 부총리가 유일하다. 정권의 포퓰리즘에 판판이 굴복해 ‘홍두사미’ ‘홍백기’라는 별명까지 붙었다. 국무총리가 “이게 기재부의 나라냐”고 버럭 했는데 생뚱맞은 호통이다. ‘기재부의 나라’는커녕 ‘여당 집행부’ ‘청와대 ATM(현금인출기)’으로 전락해 사무관 모집조차 미달인 부처가 기재부의 실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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