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부처도 무르팍 치고 돌아앉을 '명랑 트로트'를 아십니까?

장유정 단국대 교수·대중음악사학자 입력 2021. 1. 30. 03:09 수정 2021. 1. 30.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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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유정의 '알고보면 더 재미있는 미스트롯2']
[아무튼, 주말]
빈대떡 신사·안되나용 등 웃음이 절로나는 興노래
익살스러운 표정과 몸짓으로 '안 되나용'을 열창하는 주미. 자신을 완전히 내려놔야 가능한 퍼포먼스로 '명랑 트로트'의 절정을 보여줬다. /TV조선

트로트를 포함해 인간의 희로애락을 담고 있는 노래는 범박하게 한(恨)의 노래와 흥(興)의 노래로 나뉜다. 한의 노래는 눈물과 슬픔의 노래, 흥의 노래는 웃음과 기쁨의 노래라고 할 수 있다. 특히 ‘흥의 노래’는 우리를 안도와 희망의 세계로 이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매회 화제를 불러일으키는 ‘미스트롯2’에서도 흥의 노래 혹은 ‘명랑 가요’를 만날 수 있으니, 주미의 ‘안 되나용’(원곡 김영철)이 대표적이다. 자신을 내려놔야만 나올 수 있는 익살스러운 표정으로 무장한 주미는, ‘진(眞)’을 향한 욕망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며 ‘욕망 트로트’라는 신조어마저 만들어냈다. 처음엔 충격과 놀람으로 입을 떡 벌리고 보다가 노래가 끝날 무렵엔 감탄과 웃음이 절로 나왔다.

노랫말 자체로 ‘피식’ 웃음이 흘러나오는 트로트도 있다. ‘1대1 데스매치’에서 김다나가 부른 ‘늙어서 봐’(원곡 선경·빛나리)가 그렇다. ‘주색에 빠져 홍야홍야 하는 남편’을 향해, ‘늙어서 봐’라고 하는 말들이 웃음을 자아낸다. ‘늙어서 찬밥 신세 되지 않으려면 후회하기 전에 잘하라’는 것이 자칫 협박처럼 들릴 텐데, ‘홍야홍야’와 같은 음성 상징어를 사용해 ‘협박’이 아닌 ‘웃음’으로 나아간다. 심지어 마지막에는 ‘부부가 최고랍니다’라며 훈훈하게 마무리한다.

흥 노래의 결정판은 본선 3차전 첫 번째 팀으로 나온 ‘미스유랑단’(윤태화·양지은·윤희·전유진·김태연)의 메들리 공연이었다. 자기보다 큰 북을 멘 아홉 살 김태연이 북을 둥둥 울리며 등장하더니, ‘빈대떡 신사’(원곡 한복남)와 ‘범 내려온다’(원곡 이날치)로 전국의 안방을 들썩이게 했다.

‘빈대떡 신사’야말로 대표적인 명랑 가요. 내 또래 사람들치고 어려서 이 노래를 불러보지 않은 사람이 드물 것이다. 노래 중간에 나오는 웃음소리가 웃겨 그 부분을 반복해 불렀던 기억이 난다. 원곡은 1919년 평안남도 안주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양복점을 운영했던 한복남이 불렀다. 직접 확인한 한복남의 친필 악보에는 1946년 5월 20일이라 적혀 있으나 ‘빈대떡 신사’의 첫 음반은 1947년에 나왔다.

노랫말에는 1940년대 후반의 대표 술집인 ‘요릿집’과 ‘대폿집’이 나온다. 요릿집이 기생들의 술 시중을 받는 고급 술집이라면, 대폿집은 큰 잔으로 막걸리를 마시던 서민들의 술집이었다. 가사에는 돈도 없으면서 요릿집에 가서 술을 마신 뒤, 도망치다 잡혀 매 맞는 신사가 등장한다. “돈 없으면 대폿집에서 빈대떡이나 부쳐 먹지, 한 푼 없는 건달이 요릿집이 무어냐, 기생집이 무어냐”고 하여 비웃음의 대상이 된 ‘신사’는 종국에 ‘건달’로 전락한다.

‘흥 노래’의 역사는 오래되었으니, 광복 이전에 나온 대중가요 중에서 이런 노래들을 ‘만요(漫謠)’라 불렀다. ‘만담(漫談)’에서 그 용어가 유래한 만요는 코믹한 노랫말로 이뤄졌다. 음악적 특성보다 문학적 특성을 강조한 명명이기도 하다. 만요의 노랫말에서 드러나는 웃음은 크게 ‘해학’과 ‘풍자’로 나뉜다. 해학이 연민에서 나온 따뜻한 웃음이라면, 풍자는 조롱에서 기인한 차가운 웃음이다.

심술 맞은 데다 불평 많고 술 좋아하는 직장인 오빠의 행태를 여동생이 콧소리 섞어가며 귀엽게 폭로한 ‘오빠는 풍각쟁이’(원곡 박향림, 1938년)는 해학적 웃음을 지향한 노래다. 당시 이 노래 광고에는 “돌부처라도 무르팍을 치고 돌아앉을 익살 진진한 명랑 가요”라 적혀 있다. 반면, ‘엉터리 대학생’(원곡 김장미, 1939년)은 연애에 빠져 10년 넘도록 졸업을 못 하고, 공부보다 당구를 잘하며, 학교는 안 가고 이 다방 저 다방 전전하는 옆집 대학생을 풍자한 노래다.

대중음악사에서 만요가 중요한 이유가 있다. 첫째, 당대의 세태와 문화를 알 수 있다. ‘오빠는 풍각쟁이’는 직장인의 생활은 물론 불고기, 떡볶이, 오이지, 콩나물로 이어지는 당시의 음식 문화를 엿보게 한다. 만요는 또, 교훈과 즐거움을 동시에 준다. ‘엉터리 대학생’이 그렇다. 단지 웃고 마는 노래가 아니라 당시 대학생 문화를 날카롭게 풍자해 교정의 효과를 노린다.

광복 이후에도 만요의 계보를 잇는 다양한 명랑 가요 또는 흥의 노래가 등장했다. 노랫말 이상으로 퍼포먼스 자체가 웃음을 유발하는 경우도 많아졌다. 듣기만큼 보기가 중요해진 매체 환경의 변화와 관련 있다.

웃을 일 적은 세상이다. 하지만 ‘행복해서 웃는 것이 아니라 웃어서 행복하다’는 말이 있듯이, 억지로라도 웃다 보면 진짜 웃을 일이 생긴다. ‘웃음학의 아버지’로 알려진 노먼 커즌스(Norman Cousins)는 “우리에게 어떤 병도 고칠 수 있는 강력한 약이 있으니, 그것이 웃음”이라 했다. 그러니 외로워도 슬퍼도, 화나고 짜증 나도, 힘들고 괴로워도 일단 한번 웃자. ‘흥 노래’나 ‘명랑 가요’ 한 곡도 우리가 웃는 데 도움이 된다. 웃음도 눈물처럼 전염성이 강하다. 노래 한 곡에서 시작한 웃음이 널리 퍼져가기를, 그리하여 여기저기서 웃음꽃이 피어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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