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 입대 환송회도 랜선으로.. 우리는 '코로나 학번'입니다

백수진 기자 2021. 1. 30. 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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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20학번의 코로나 1년
지난 8월 경기도의 한 대학 강의실에서 개강을 앞둔 교수가 온라인 강의를 준비하고 있다. /연합뉴스

2020년 대학에 입학한 최호재(20)씨는 코로나 사태로 비대면 수업이 계속되면서 10월에야 처음 학교에 갔다. 컴퓨터 화면으로만 보던 교수를 만나니 “연예인을 보는 기분”이었다. 채팅방에서 처음 만난 동기들과는 게임 속 보이스 채팅을 통해 목소리를 듣고, 생일에는 기프티콘을 보내주며 가까워졌다. “대학 축제도 유튜브를 통해서 비대면으로 진행했고요. 화상 회의 프로그램에서 군대 가는 친구 환송회도 열어줬어요.”

◇ 동기 얼굴도 모르는데 후배 들어와 울상

최씨처럼 지난해 대학교 신입생이 된 20학번은 ‘코로나 학번’ 소리를 듣는다. 평생에 한 번뿐인 스무 살을 대부분 온라인에서 보내야 했다. 올해도 대면 수업이 불투명해지면서 “20학번도 명예 1학년으로 쳐주면 안 되나요?” “동기 얼굴도 모르는데 후배가 들어오다니” 하는 탄식이 나온다.

아르바이트 전문 포털 ‘알바천국’이 20학번 3129명을 조사한 결과, 코로나 종식 후 캠퍼스에서 꼭 이루고 싶은 꿈은 ‘대학 축제(52.6%)’가 1위를 차지했다. 그 뒤를 OT 및 MT(48.7%), 개강 및 종강 파티(31.1%), 과팅·소개팅·미팅(30.4%), 선배·동기와 친목(27.6%)이 이었다.

서울여자간호대 20학번인 윤지윤씨는 “다들 처음 겪는 상황이라 혼란스러웠지만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이나 축제도 유튜브로 대신하면서 어떻게든 소통하는 길을 찾게 되더라”고 했다. “선배나 동기들과 줌(zoom·화상 회의 앱)으로 만나서 랜선 술자리도 갖고, 화상으로 마피아 게임을 하며 놀기도 했어요.”

랜선 미팅·소개팅이 이들의 아쉬운 마음을 달래주기도 한다. 대학생 온라인 커뮤니티 ‘에브리타임’에는 줌을 통한 3:3 온라인 미팅 참가자를 모집하는 글이나, 간단한 자기소개와 함께 “관심 있으신 분은 쪽지를 보내달라”는 ‘셀프 소개팅’ 글이 자주 올라온다. 나이·지역·취미와 이상형 등을 적어 신청서를 보내면 온라인 소개팅을 연결해주는 스타트업까지 등장했다.

◇스펙 하나 못 쌓고 취준생 될까 불안감도

최근엔 덕성여대 20학번들이 모여 ‘코로나 학번 하이퍼 리얼리즘’이라는 책도 출간했다. “코로나 시대에도 진취적 삶을 살아보자”는 취지로 여섯 명의 이야기를 써 나갔다. 집에서도 할 수 있는 글쓰기, 상품 제작, 코딩 배우기 등에 각자 도전한 기록을 담았다.

저자 강민경씨는 “주변에선 1학년 때 외부 활동을 많이 하고 3학년 때부터는 취업 준비를 해야 한다고 하는데, 1년을 ‘이게 뭐지?’ 하면서 흐지부지 보내버리니까 시간이 촉박하게 느껴지더라”고 했다. “이 상태로 스펙 하나 없이 취업 준비를 해야 하나 싶은 불안감도 크죠. 그래도 ‘할 수 있는 것들을 해보자’는 마음으로 책 출간에 도전하게 됐습니다.”

코로나 대유행은 학생뿐 아니라 교수들에게도 혼란이었다. 박길성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코로나 학번’과 함께한 2020년 1학기 강의실 풍경을 ‘한 사회학자의 어떤 처음’이란 책으로 펴냈다. ‘내게 대학 1학년 시절 캠퍼스는 마치 라파엘로가 그린 아테네 학당의 축소판이었다. 내 생각의 규모와 범위가 이때 움트기 시작했던 것에 비추어 보면 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앞선다.’

박 교수는 “처음엔 많이 걱정했는데 학교도 학생도 ‘적응하는 인간(호모 어댑턴스)’의 역량을 발휘하며 비일상이 일상으로 자리 잡게 됐다”면서 “다만 비대면 수업이라도 교수한테 메일을 보내거나 면담을 요청하며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학생과, 학교에 아예 오지 못하는 학생의 교육 양극화는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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