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된 '몬스터'가 말했어요 "너는 너일 때 가장 아름답단다"

채민기 기자 입력 2021. 1. 30. 03:08 수정 2021. 1. 30.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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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숲으로 간 몬스터' 쓴 시각디자이너 최림·부창조 인터뷰

인터뷰하는 동안 줄곧 진지했던 시각디자이너 최림(42)·부창조(42)의 표정은 아이들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환해졌다. 디자인 스튜디오 ‘스티키몬스터랩’ 설립자인 둘은 각각 여덟 살, 일곱 살 아들을 둔 아빠다. 아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담아 2016년 펴냈던 그림책 ‘숲으로 간 몬스터’의 개정판을 이번에 냈다.

시각디자이너가 이야기까지 쓴 그림책은 흔치 않지만 이들에겐 자연스러운 결과물이었다. 스티키몬스터랩은 직접 디자인한 ‘몬스터’ 캐릭터로 단편 애니메이션을 만들며 지난 2007년 디자인 회사라기보다는 콘텐츠 제작사에 가까운 모습으로 출발했다. 나이키와 함께 만든 첫 작품 ‘더 러너스’로 첫해부터 주목받았다. 소문을 탄 몬스터는 그 뒤로 삼성전자·현대차·닛산 같은 글로벌 기업들과 협업했다. 영상·포스터·인쇄물을 넘나들었고 ‘처음처럼’ 소주병에도 응용됐다. 이들은 “몬스터라는 하나의 캐릭터를 다양한 방식으로 활용한다”면서 “그림책도 그중 하나”라고 했다. 그림책이라는 형식은 처음이었지만 이야기를 구상하고 캐릭터와 이미지로 표현하는 것은 익숙한 작업이었다는 의미다.

동글동글 몬스터는 외로움을 견디다 숲으로 간다(왼쪽). 숨은그림찾기처럼 원숭이들 사이에 섞여 보려고도 하지만(가운데) 결국 처음의 모습으로 돌아온다. 원래의 모습으로 숲을 나서는 몬스터를 친구가 된 동물들이 배웅한다(오른쪽). /스티키몬스터랩

몬스터는 대표 상품이자 디자이너의 분신이면서 스티키몬스터랩 그 자체다. 27일 서울 합정동 스튜디오에서 진행된 인터뷰 사진을 나란히 앉은 둘의 모습을 한 몬스터가 대신한 것도 그런 이유다. 두 캐릭터의 모습이 거의 같은 건 처음 둘을 연결해준 선배가 “둘이 닮았다”고 했기 때문이다.

◇누구나 자기 모습 그대로 아름답다

이들이 만드는 콘텐츠는 종종 보는 이의 예상을 넘어선다. 발랄한 것 같은데 순간 그로테스크하다. 예컨대 아버지와 아들의 시간을 그린 애니메이션 ‘더 파더’의 경우. 아빠 품을 떠난 아들이 반항아 시절을 거쳐 사회인이 되고 아버지의 길을 따라 걷기 시작한다. 서로 이해하게 된 부자(父子)의 극적 화해를 기대하는 순간 아버지가 강도의 총에 맞는 것으로 이야기는 끝난다. 부창조는 “스티키몬스터랩을 처음 시작할 때 조금 다른 걸 해보고 싶었고, 당연하다는 것들은 피하려고 했다”고 말했다. “캐릭터는 밝고 귀여워야 한다든가 교훈이 뚜렷해야 한다든가 하는 공식이 있잖아요. 그런 것들을 빼보고 싶었죠.”

숲에서 만난 동물들을 흉내 내던 외톨이 몬스터(오른쪽 까맣고 동그란 캐릭터)가 자신의 본래 모습으로 돌아와 숲을 나서는 장면. 남들처럼 되고 싶다는 생각에서 자유로워진 몬스터는 각기 다른 모습의 동물들과 친구가 된다. /스티키몬스터랩

이런 시각이 그림책에도 이어진다. 몬스터가 숲으로 간 것은 외로워서였다. 최림은 “누구나 외로움같이 그늘진 면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을 담은 것”이라면서 “다만 스토리는 아이들 눈높이에 맞게 짰다”고 했다. 처음에 몬스터는 동물들을 닮으려고 애를 쓴다. 원숭이를 만나면 원숭이처럼, 코끼리를 만나면 코끼리처럼. 그러다 결국 자기 모습으로 돌아와 숲을 나선다. “다른 누구를 따라 할 필요 없이 자기 모습 그대로일 때 다른 이들과 동등한 존재가 된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죠.” 2007년에 첫선을 보인 몬스터가 동글동글한 체형에 팔이 없었던 것도 “비정상적으로 보일 수도 있는 그 모습이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지길 바랐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아이들은 아빠표 그림책을 좋아했을까. “비웃는 것 같으면서도 아빠가 그린 거라는 걸 알아서인지 재밌게 보더라고요.”(부창조) “아이들은 재미없으면 안 보는데 가끔씩 꺼내 봤어요. 하지만 남자아이들이 정말로 좋아하려면 일단 주인공이 싸우거나 변신을 해야….”(최림)

스티키몬스터랩 디자이너 최림의 별명은 FLA(이름 '림'을 영문 키로 쓴 것), 부창조는 성에서 따온 BOO다. 캐릭터로 말하는 이들은 인터뷰 사진을 찍는 대신 몬스터 캐릭터로 자신들의 모습을 표현했다. 두 캐릭터가 거의 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은 처음 둘을 소개해준 선배가 "둘이 닮았다"고 해서다. /스티키몬스터랩

◇아빠가 된 디자이너들

독립하는 디자이너들이 대개 그렇듯 이들도 ‘나만의 것’을 하고 싶어 다니던 회사를 나왔다. 나만의 것이 무엇인지 확실치 않았지만 디자이너로 살아가려면 의뢰인을 납득시켜야 한다는 사실은 확실했다. 잘할 수 있는 것이 뭔지 보여줘야 했고 몬스터라는 캐릭터로 영상을 만들었다. 그것으로 독자적 영역과 스타일을 개척할 수 있었다.

둘은 아이들에 대해 이야기할 때만큼은 인정받는 디자이너에서 ‘아들 바보’ 아빠들로 돌아갔다. 아이들은 그새 조금 더 자랐다. 최림은 “같이 운동을 하고 싶은데 어려서 운동을 싫어했던 나처럼 아이도 운동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밖에 잘 나가질 못한다”면서 “그래도 요즘 줄넘기를 조금씩 하고 있다”고 했다. 부창조는 “아이가 더 어릴 때는 시간도 안 가고 힘들었는데 요즘은 같이 지내는 게 즐겁다”면서 “철사로 공룡 뼈도 같이 만들고 주사위 놀이를 직접 만들어서 해보기도 한다”고 했다. “놀아 준다고 생각하면 힘들어요. 같이 놀아야 재밌습니다.”

※ 아빠가 된 ‘스티키몬스터랩’의 두 디자이너가 아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보림출판사가 엮었다. 32쪽. 1만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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