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시각] ‘신세계 야구단’ 환영합니다

양지혜 기자 2021. 1. 30. 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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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진 신세계 부회장./ 스포츠조선

인수 합병이란 말엔 아직도 가슴이 덜컹하는데, 23년 전 겨울의 트라우마가 남아서다. 매사 IMF 위기가 수식어로 붙으며 기업들의 ‘M&A’나 ‘빅 딜’이 쏟아졌고 그게 사람들이 죽겠다고 아우성치게 만드는 원흉처럼 느껴졌다. 휘청대는 해태 때문에 일본 주니치 드래건스로 간 이종범은 안타를 쳐도 쓸쓸해 보였고, 회사가 부도난 쌍방울 선수들은 초라했다. 지난 25일 SK와이번스가 신세계에 팔린다는 소식을 듣고 깜짝 놀랐다. 지금껏 프로야구단이 팔린 사례는 그 겨울처럼 모기업이 망한 경우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재계 3위 SK그룹이 야구단을 왜 팔지?”

매수가와 협상 분위기도 예상 밖이었다. 신세계는 약 1352억원에 구단을 샀는데, 1995년 현대그룹이 태평양 돌핀스를 당시 450억원에 인수했던 것을 감안하면 싼 가격이다. SK가 창단 20년간 4번 우승하며 왕조 역사를 일궜던 팀인데도 가치가 그랬다. 무엇보다 2021시즌 스프링캠프 시작을 일주일 앞두고 선수단은 낌새도 못 챈 ’007 협상'이었다는 게 충격이었다. SK 선수들은 “(김)광현 형과 (최)정 형은 당연히 SK의 영구결번일 줄 알았는데 이제 ‘이마트 레전드’가 되는 거냐”고 혼란스러워했다. 해설위원들은 “한국 기업들의 야구단에 대한 인식이 예전 같지 않다는 상징적인 사건이다. 프로야구는 팬이 계속 줄어드는데 위기가 가속화할 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 뉴스도 우려의 목소리가 많았다.

하지만 해외에선 프로 팀이 새 주인을 만나는 것은 흔하디 흔한 일이다. 스포츠 역사가 길수록 그 나라 산업의 흥망성쇠를 증언하기도 한다. 한국처럼 모기업 운영 체제인 일본 프로야구에선 1950년대 철도 회사들(고쿠테쓰, 난카이, 한큐, 니시테쓰 등)이 주름잡았다가 1970년대 롯데·닛폰햄 등 유통 소비재 기업들이 뛰어들었고 21세기가 되자 소프트뱅크·DeNA 등 IT 기업들이 가세했다. 2004년 긴테쓰 버팔로스의 해체로 12구단 체제에 구멍이 생기자 IT 기업 라쿠텐이 이듬해 창단해 메웠다.

‘(정)용진이 형’이 NC ‘(김)택진이 형’의 인기가 부러워서 야구단을 샀다는 시선도 있다. 기업인들이 스포츠 구단 오너가 돼 대중의 관심을 즐기는 일은 최근 대세다. 시카고대 경영대학원은 “자아도취 성향이 있는 젊은 억만장자일수록 스포츠 클럽 소유를 통해 자신과 사업이 모두 빛나길 원한다”고 분석한다. 인터넷 사업으로 자수성가한 NBA댈러스 매버릭스 구단주 마크 큐번은 별명이 관종(attention seeker)일 만큼 농구장에서 살다시피 하며 인기를 얻었고, 미키타니 히로시 라쿠텐 회장도 야구는 물론 축구단(비셀 고베)에 이니에스타를 데려오는 등 스포츠에 적극 투자한다. 한국 스포츠계에도 새 얼굴이 더 많이 등장하길 기대한다. 그게 이 나라가 역동적이라는 증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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