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버드대 졸업 앞둔 그 여자는 왜 경찰에 붙잡혔나

양지호 기자 2021. 1. 30. 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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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인 여성이며 심리학 교수인 저자
피부색 때문에 겪은 수모 토대로
성별·인종·나이·장애 유무 등
겉모습만으로 편견 갖는 사회 비판
"악의·혐오 모르는 다섯살 아들도 '흑인=범죄자' 공식을 품고 있어"
편견/스노우폭스북스

편견

제니퍼 에버하트 지음|공민희 옮김|스노우폭스북스372쪽|1만7000원

지난 20일 열린 미국 대통령 취임식은 다인종적 행사였다. 미국 역사상 첫 흑인·인도계 여성 부통령 카멀라 해리스가 첫 라틴계 여성 대법관 소니아 소토마요르 앞에서 취임 선서를 했다. 취임식 최고 스타는 흑인 청년 계관시인 어맨다 고먼이었다. 그렇지만 미국 내에서 인종에 기반한 암묵적 편견은 여전히 공고하다. 책은 이러한 ‘편견’이 인간 무의식에 자리 잡고 있는 양태를 추적한다. 백인 우월주의자만 편견에 빠지는 것이 아니다. 저자는 “피부색, 나이, 체중, 인종, 억양, 장애 유무, 신장, 성별 등 특징을 토대로 편견을 가질 수 있다”며 “나와 다른 이에 대한 두려움, 사회적 고정관념이 편견이라는 왜곡된 렌즈를 만든다”고 지적한다.

저자는 하버드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스탠퍼드대 사회심리학 교수이자 흑인 여성. 그는 다섯 살 난 아들과 비행기를 탔던 경험을 털어놓는다. 아들은 비행기 안의 유일한 흑인 남성을 보더니 “저 사람이 비행기를 털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저자는 “악의나 혐오가 없는 다섯 살 아이의 마음속에도 ‘흑인=범죄’라는 공식이 자리 잡고 있다”고 했다.

저자는 편견이 마치 본능처럼 무의식에 잠재돼 있다고 설명한다. 두 집단에 각각 흑인과 백인 사진을 보여준 다음 흐릿한 권총 사진을 보여주며 무엇인지 맞히라고 했다. 흑인 사진을 본 집단이 더 먼저 ‘총’이라고 답한다. 인종을 분간할 수 없는 사람 사진을 보여주고 키와 몸무게를 추정하게 했을 때도 ‘흑인’이라 알려주면 사람들은 실제보다 키와 덩치가 더 크다고 대답했다. ‘흑인’과 ‘범죄 위험’이 강력한 연관성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맨다 고먼(22) 미 청년 계관시인은 지난 20일 바이든 대통령 취임식에서 축시 낭독을 했다. 인종, 성별, 나이에 대한 편견을 깨트린 상징적 사건이다. 그러나 스탠퍼드대 사회심리학 교수인 저자는 편견이 여전히 사회 곳곳에 퍼져 있다고 지적한다. /로이터 연합뉴스

이런 무의식은 종종 끔찍한 결과로 이어진다. 2016년 오클라호마 털사에서 경찰 검문에 따르던 중 총에 맞아 숨진 테런스 크러처는 신장 175㎝, 몸무게 116㎏의 흑인 남성이었다. 총을 쏜 백인 경찰은 그가 136㎏에 달하는 거구였다고 진술했다.

미국 뉴욕 경찰은 2010~2011년 2년 동안 약 60만명을 ‘불룩한 주머니가 수상하다’며 불심검문했다. 뉴욕 거주 흑인 비율은 23%에 불과한데 검문한 사람 절반 이상(54%)이 흑인이었다. 저자도 1993년 하버드대 박사 학위 수여식 하루 전 보스턴 인근 흑인 빈민가에서 어머니 차를 몰고 가다가 경찰 불심 검문 이후 수갑이 채워진 채 연행됐다. 죄명은 ‘경찰 공갈 폭행죄'. 그는 경찰이 내리라던 차에 계속 앉아 있었을 뿐이었다. 그는 하버드대 학장의 구명으로 겨우 풀려났었다.

편견은 공유 숙박 서비스 ‘에어비앤비’에서도 나타난다. 2017년 하버드대 연구에 따르면 흑인은 백인과 비교했을 때 집 주인의 숙박 수락률이 16% 낮았다. 흑인 전용 식당과 숙박 업소를 표기한 1960년대 미국 남부 여행 안내서 ‘그린 북’의 인종차별적 편견이 21세기 공유 숙박 서비스에도 여전히 존재한다는 것이다.

무의식에 뿌리 박힌 편견을 극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저자는 시스템을 바꾸는 것이 우선이라고 말한다. 미국 지역별 커뮤니티 정보를 제공하는 애플리케이션 ‘넥스트도어’에는 “흑인과 라틴계 주민이 길거리를 걸어 다녀 불안하다”는 혐오성 글이 계속 올라왔다. 이 회사는 사용자들이 글을 올리기 전에 이런 문구를 읽도록 했다. ‘그 사람의 어떤 행동이 범죄 가능성과 연관이 있느냐’ ‘인종차별성 글을 쓰면 안 된다’ 그러자 인종차별성 글은 75% 감소했다. ‘에어비앤비’는 집주인이 투숙객의 과거 에어비앤비 투숙 이력을 확인할 수 있도록 했다. 그 결과 인종을 이유로 투숙을 거부하는 비율이 줄어들었다. 메이저리그에서 같은 인종 투수에게 유리한 판정을 내렸던 심판들은 카메라 모니터링이 이뤄지자 더 공정한 판정을 하기 시작했다. 감시도 효과가 있는 것이다.

다문화 가정, 난민 등에 관한 혐오와 차별이 계속되는 우리 상황에도 유효하다. 해리스 부통령은 “보이지 않는 혐오를 해결하기 위해 꼭 읽어야 할 책”이라고 추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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