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봉 100억 '1타 강사'가 왜 댓글 조작?.. 2등은 의미없는 승자 독식 시장

김미리 기자 2021. 1. 30.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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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인강 시대' 20년
1타 강사의 빛과 그림자
일러스트=유현호

#1. “국어가 약해서 인강(인터넷 강의)을 들으려고 이리저리 비교해보니 박광일 강의 추천 댓글이 많더라고요. 그분 강의가 있는 32만원짜리 대성마이맥 프리패스(전 과목 자유 이용권)를 샀는데, 선생님이 불법을 저질러 구속됐다는 게 말이 되나요?” 경기도 분당에 사는 예비 고3 박모(18)군은 지난 18일 국어 1타 강사(‘1등 스타 강사’를 줄인 은어) 박광일씨가 댓글 조작 혐의로 구속됐다는 뉴스를 보고 배신감이 들었다. 강사에게 배운 건 국어 지식이 아닌 비열한 세상이었다.

#2. 같은 날, 한 스타 강사의 인강 데뷔 소식으로 ‘수만휘’ ‘오르비’ 등 수험생들이 찾는 커뮤니티가 들썩였다. 주인공은 제대하고 갓 복귀한 대치동 국어 1타 강사 강민철씨. 현장 강의만 고집했던 강씨가 메가스터디 인강을 시작한다는 뉴스였다. 당장 포털 실시간 인기 검색어에 올랐다.

2000년 메가스터디가 온라인 수능 강좌를 시작한 이래 국내에 ‘인강 시대’가 열린 지 20여 년이 흘렀다. 2000년대 후반~2010년 초·중반 급성장하다가 주춤하던 인강 시장은 최근 코로나 사태로 반사 이익을 얻고 있다. 인강 1타 강사에게 쏠린 관심도 어느 때보다 뜨거운 상황. 그만큼 잡음도 끊이지 않는다.

최근 댓글 조작 사건으로 구속된 국어 1타 강사 박광일. /대성마이맥

◇승자 독식, 프리패스… 1타를 모셔라

수능시험이 끝나고 신학기를 앞둔 연말·연초는 인강 업계의 스토브리그(프로야구 시즌이 끝나고 연봉 협상, 이적이 이뤄지는 기간). 1타 강사 모시기 경쟁이 불붙는다. 2년 전 메가스터디에서 스카이에듀로 이적한 국어 1타 강사 유대종씨는 유튜브 채널에서 “이적할 때 A 업체에선 50억원, B 업체에선 90억원을 주겠다고 했다. 인강 기본 틀은 강사 수익이 매출의 25~26% 정도인데 50%를 제안하는 회사도 있었다”고 밝혔다.

수십억원대 천문학적 이적료를 주고서라도 업체에서 이들을 영입하는 이유가 뭘까. 입시 전문가인 이만기 유웨이 교육평가연구소장은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하는 홍길동이 아닌 한 오프라인 강의는 수강 인원이 정해져 있다. 반면 인강은 시공간 제약이 없어 1타 강사에게 학생이 무제한 몰릴 수 있는 시스템”이라고 했다. 철저한 승자 독식 체제란 얘기다. 한 인강 업체 관계자는 “오프라인 학원에선 1타와 2타 간극이 크지 않을 때도 있지만, 온라인 강의는 100대0이 될 수도 있다. 업체들이 기를 쓰고 자체 1타 강사를 띄우거나 팬덤이 막강한 1타 강사를 스카우트하는 이유”라고 했다.

5~6년 사이 인강 시장이 프리패스 판매 위주로 굳어지면서 1타 강사 영향력은 더 커졌다. 프리패스란 1년에 일정 금액을 주면 전 과목 강의를 들을 수 있는 수강권. 최근엔 특정 강사 강의 하나만 끊는 금액과 전 과목 프리패스 가격 차가 얼마 안 돼 대부분 프리패스를 끊는 추세다. 수강생들은 1순위로 듣고 싶은 1타 강사가 있는 업체의 프리패스를 선택한다.

‘수학 1타 강사’ 정승제(이투스 소속)씨는 “주요 인강 업체(메가스터디·대성마이맥·이투스·스카이에듀)별로 티켓 파워를 지닌 1타 강사 3~4명이 매출을 이끄는 구조다. 사실상 1타 강사 십여 명이 약 3000억원 규모 대한민국 인강 시장을 움직인다고 보면 된다”고 했다. “편의점에서 고만고만한 1등 제품을 나란히 두는 것보다 ‘압도적인 수퍼 1등’을 매대 맨 앞에 둬 전체 판매를 높이는 것과 비슷하다”고 설명하는 강사도 있었다. 이만기 소장은 “빵(1타 강사) 사러 제과점 갔다가 잼(2·3타 강사)까지 사는 격이다. 낙수 효과가 생기니 회사에선 기를 쓰고 1타를 데려오려고 한다”고 했다.

업계 평을 종합해 보면, 현재 ‘1타 중의 1타’는 국어 김동욱·유대종·강민철, 영어 이명학·조정식, 수학 현우진·한석원·정승제, 사탐 이지영, 과탐 오지훈(지구과학)·배기범(물리) 등이다. 대개 인강 사이트 메인 화면에 뜨는 강사진 사진에서 맨 위 왼쪽 첫째가 그 회사에서 매출이 가장 높은 대표 강사다.

미스터트롯에도 출연해 화제 모았던 수학 1타 강사 정승제. /이신영 영상 미디어 기자

◇불법 조장하는 압정형 구조

1타 강사 일부는 톱스타 연예인급 수익을 벌어들인다. 한 입시 전문가는 “현재 독보적 스타는 스탠퍼드대 출신 수학 1타 강사 현우진(메가스터디)씨다. 연봉 200억~300억원 정도로 추정한다. 그다음이 10여 년 동안 사탐 1위를 지킨 이지영(이투스)씨라는 게 업계 사람들 얘기”라고 했다. 현씨는 2017년 박인비·장동건이 산다는 청담동 최고가 아파트 ‘PH129’ 펜트하우스(분양가 최고 250억원) 입주민이 됐고, 2018년엔 서울 논현동에 있는 320억원대 4층 건물을 사들인 사실이 알려졌다. 이씨는 지난달 유튜브 라이브 방송에서 130억원이 찍힌 통장 잔액을 인증하고, “2014년 이후 연봉이 100억원 이하로 내려간 적이 없다”고 밝혔다. 정승제씨는 “강사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미국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한국 선수들 연봉과 맞먹는 금액을 받는다”고 했다. 투수 류현진의 작년 연봉은 2000만 달러(약 223억원) 정도였다.

1타 자리를 지키거나 뺏기 위한 싸움이 치열해질 수밖에 없다. 최근 박광일 사건처럼 경쟁 상대를 비방하는 댓글 조작이 팽배한 이유다. 인강계 불법 댓글 문제는 2017년 수학 스타 강사 삽자루(본명 우형철) 폭로로 시작됐다. 그는 이투스 댓글 조작을 비롯해, 박광일 등 1타 강사의 댓글 조작을 폭로하다가 작년 뇌출혈로 쓰러졌다. 삽자루 측 관계자는 “인강 시장은 ‘압정 구조’다. 압정의 가는 바늘에 해당하는 극소수 1타 강사 자리를 차지하려고 치졸한 바이럴 마케팅을 펼친다”고 했다.

그는 “티 안 나게 댓글을 달려면 순발력 있고 인강 내용도 잘 알아야 한다. 제보를 받아 보니 댓글 ‘알바’ 상당수가 명문대생이었다”며 “친구 말에 쉽게 휘둘리고 충동적인 10대 심리를 악용해 여론을 조장하는 것은 정말 문제”라고 꼬집었다. 실제로 인강 세대인 유모(27)씨는 “수험생 커뮤니티엔 특정 강사 팬이 다른 강사를 비방하는 글이 많다. 훌리짓(극성 축구팬을 뜻하는 ‘훌리건’에 ‘짓’을 더한 은어)이라고 하는데 장난삼아 하다 보면 악플에 둔감해진다”고 했다.

강사 간 고소·고발도 종종 있다. 지난해 이지영씨가 자기에게 모욕 발언을 계속했다며 현우진씨를 경찰에 고소하는 사건도 있었다. 한 입시 전문가는 “인강 1타 강사 대부분이 현강(현장 강의)을 한다. 이때 토요일 오후 시간대 등 황금 시간이나 강의실 선점 문제로 부딪치다가 비방전을 벌이기도 한다”고 했다.

◇'1타 교재 필진' 모시는 1타 강사

1타 강사 실력을 흠잡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이만기 소장은 “쇼맨십, 외모로 경쟁한다는 비판도 있지만 1타 자리는 실력 없인 오를 수가 없다”고 했다. 1타 강사에 한번 오르면 수익 상당 부분을 강의 개발에 투자한다. 2타가 1타를 따라잡기가 그래서 더 힘들어진다고 한다.

독보적 1타 강사로 꼽히는 수학 강사 현우진(위)과 10여 년간 사탐 1타 강사인 이지영. / 유튜브 캡처

교재, 영상 제작, 수업 조교 등 수십 명이 팀을 이뤄 일한다. 요즘은 강의료를 낮추고 교재를 비싸게 파는 추세. 그만큼 교재에 공을 들인다. 한 강사는 “1타 강사들 사이에서 ‘1타 교재 필진’ 모시기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고 했다. 과학고, 영재고 출신 대학생에게 문제당 10만~20만원 정도를 주고 문제를 만들어 달라고 한 다음 취사선택하기도 한다.

그냥 주어지는 1위는 없다. 영어 1타 강사 이명학(대성마이맥)씨는 한 방송에서 하루 10시간씩 수업 준비를 한다고 했다. 정승제씨는 “강의 중심으로 삶을 세팅해 둔다. 행여 컨디션에 영향 미칠까 봐 모르는 전화는 거의 안 받는다. 가끔 택배 기사분이 연락이 안 된다고 짜증 낸다”며 웃었다.

◇학생 수 감소, 인강의 미래는?

2000년대 초 무료 인강 사이트 ‘티치미(2011년 대성마이맥에 합병)’로 화제를 모았던 영어 스타 강사 출신 김찬휘(정치경제연구소 ‘대안’ 부소장)씨는 “인강 시장의 폐해도 있지만, 소득·지역별 교육 불평등 해소에 큰 역할을 한 건 틀림없다”고 했다. 특히 2004년 강남구청에서 만든 ‘강남인강’과 같은 해 EBS에서 시작한 무료 인강은 지방 학생에게도 싼 가격에 좋은 공부 기회를 줬다고 평했다. 김 부소장은 “요즘은 20만~30만원이면 1년 동안 모든 강의를 무제한 듣는 시대까지 왔다. 인강이 완전한 교육 평등까지는 아니어도 우리 교육에 혁명적 변화를 가져왔다고 본다”고 했다. 다만 “2008~2009년 인강 시장이 벌이가 잘된다는 소문이 돌면서 대상, KT, SK 등 대기업 자본이 들어와 업체가 난립하는 바람에 과당 경쟁으로 시장이 혼탁해진 건 아쉽다”고 덧붙였다.

인강 시장의 앞날은 안갯속이다. 결정적 변수가 인구 감소다. 지난해 수능 응시자는 49만여 명. 처음으로 40만명대로 떨어졌고, 올해도 40만명대를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한 학원 강사는 “인강 시장은 국내 시장인 데다, 학생이 감소할수록 쪼그라들고 있다. 코로나 반짝 특수가 사라지면 작아진 파이를 서로 뺏어 먹으려는 업체 간 출혈 경쟁이 더 심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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