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K 험지서 압도적 지지로 당선된 기초의원… 그는 왜 민주당을 탈당했나

대구/곽창렬 기자 2021. 1. 30.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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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대구시 수성구의원 백종훈

“그때 그 교수님, 맞으시죠? 용기에 박수를 보냅니다.”

백종훈(45) 대구광역시 수성구의원의 휴대전화기에 전화와 메시지가 쏟아졌다. 지난 14일 그가 A4 용지 한 장에 적어 낸 보도자료 때문이었다. 백씨는 이를 수성구의회에 전달하며 더불어민주당을 탈당(脫黨)한다는 사실을 알렸다. 그 이유를 이렇게 적었다. “대한민국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다는 그 약속은 지켜지지 못했고, 사상 유례 없는 분열과 갈등의 양상을 보이면서 국민을 갈라놨다.” “여성 인권을 대변한다고 자처하던 민주당 출신 광역단체장들이 연이은 성범죄와 함께 우리 편 감싸기를 위해서 피해자 모욕, 사태를 수수방관하는 모습을 보며 ‘인면수심(人面獸心)’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대구에서 만난 백종훈 대구시 수성구의원. 그는 자신의 지역구인 수성구가 아닌 다른 지역에서 만나자고 말했다. 아직 마음의 준비가 안 됐다는 게 이유였다. / 대구=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백씨는 전국에 있는 지방 기초의원 2900여 명 가운데 한 명. 급(級)으로만 보면 그의 탈당은 주목을 받기 어렵다. 그런데 막상 백씨의 탈당 소식이 알려지자 1만개 넘는 댓글이 달리며 뜨거운 화제가 됐다. 용기 있는 행동이란 반응부터 배신자란 비난까지. 그를 대구에서 만났다.

백씨는 고려대 독문과를 졸업하고 2003년 미국으로 건너가 스포츠 산업학을 공부했다. 귀국 후 한양대와 고려대에서 강의했다. 그러다 2015년 민주당 김부겸 전 의원의 20대 총선(대구 수성갑) 캠프에서 자원봉사 한 것을 시작으로 정치에 몸담았다. 2018년 6월 지방선거에서 대구 수성구의원에 출마해 이변을 연출했다. 백씨가 출마한 지역(고산동)은 중선거구제로 3명이 당선되는데, 총 8명(민주당 1명, 정의당 1명, 자유한국당 3명, 무소속 후보 2명 등)이 선거에 뛰어들었다. 텃밭에 출마한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 후보의 1위가 예상됐다. 그런데 투표함을 열어보니 백씨가 압도적으로 1위를 차지했다. 그가 얻은 표는 1만5930여 표(34%)로 세 명의 자유한국당 후보자들이 받은 표를 합친 것(1만7500여 표)과 맞먹었다.

-기적을 낳았는데, 당을 떠난다.

“비록 기초의원이지만 주민의 선택으로 당선됐고, 정치적으로 중요한 결정이라 보도자료를 냈다. 지역 신문에 알리기 위해서였는데, 이렇게까지 이슈가 될 줄 몰랐다. 아내와 두 아이도 당황했다.”

-왜 관심이 컸다고 생각하나.

“탈당을 알린 직후, 전화와 문자 300여 통이 쏟아지더라. 사람들이 가장 많이 언급했던 것이 ‘용기 있게’라는 말이다. ‘내 생각이 맞다 그르다'가 아니라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 ’이런 시국에 이런 행동을 하다니 대단하다'는 거였다. 소신 있게 바른말을 할 수 없는 현재 민주당의 상황을 나타내는 게 아닐까 한다.”

-민주당을 선택한 이유가 있었나.

“미국에서 10년 공부하면서, 인터넷으로 한국 뉴스를 꾸준히 봤다. 내 고향 대구는 기존의 정치 틀로는 안 된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 그러다 김부겸 장관님(전 행정안전부 장관)이 지역주의 깨겠다고 대구에 나선 것을 봤고, 이 정치인을 통해 내 이상을 실현하겠다고 마음먹었다. 귀국해 대학에서 강의하던 2015년, 대구 수성구 범어동에 있는 김부겸 캠프 사무실을 찾아갔다. 20대 총선을 앞두고 있을 때였다. 그야말로 자원봉사 하러 갔다. 장관님(김부겸)이 선거에서 이겼을 때 너무 기뻐서 울었다. 그리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강의했다. 그러다 2018년 지방선거를 맞았고, 1등으로 당선됐다. 내가 아니라 김부겸이라는 정치인을 보고 찍어줬을 거다. 정말 열심히 일했다. 그런데 이후 민주당의 행태를 보면서,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뭐가 문제였나.

“민주당 잘못은 대부분 알고 있으니 일일이 밝힐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다만 나는 학교에서 대학생들을 가르쳤던 사람이다. 그들은 일자리 수보다 ‘투명성’과 ‘공정한 세상’을 원하고 있다는 점을 절실히 느껴왔다. 국민의힘보다는 민주당이 그런 세상을 더 잘 만들 거라고 생각해 선택했는데, 시간이 갈수록 점점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였다. 조국 사태에서 그 민낯이 드러났다. 적어도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던 사람이 그렇게 행동해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 내 탈당 소식이 알려지니, 몇 년 전 내 수업을 들었다며, 그 교수님 맞느냐, 정말 용기 있는 모습을 응원한다는 제자들의 격려가 쏟아졌다.”

-김부겸 전 장관에게 알렸나.

“탈당하기 전 직접 만나뵐까 생각도 했지만, 도저히 못 하겠더라. 대신 긴 문자 메시지를 보내드렸다. 그랬더니 직접 전화를 하셨다. ‘긴 세월 고민했다’고 말씀드렸다.”

-민주당은 대구에서 어떤 정당인가.

“대구에서 민주당은 다른 어느 지역보다 중요한 정당이다. 그런데 민주당 간판 달고 대구에서 정치하는 사람들은 정말 외롭다. 당대표와 지도부가 자주 내려와서 위로하고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 민원을 해결하는 것보다 못지 않게 자주 직접 내려와서 목소리를 듣는 게 더 중요한데, 그러지 않았다. 중앙에서 볼 땐 투입한 것에 비해 지지율이 안 나오니까 신경을 안 쓰게 되는 것 같다.”

-끝까지 민주당에 남아 옳은 소리를 내는 게 맞지 않을까.

“작년 8월 김부겸 장관님이 당대표 경선에서 대패하는 걸 보고, ‘이건 아니구나’ 확신했다. 물론 이낙연 대표가 앞설 거라 봤지만, 험지에서 헌신하는 정치인한테 당은 21%밖에 표를 주지 않았다(이낙연은 60% 득표). 또 내년이면 대통령 선거가 치러진다. 당원이면 당 후보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게 도리니, 내 본심을 숨기고 후보 당선을 위해 뛰어야 한다. 그건 나 자신을 속이는 이중적인 모습이라고 생각했다.”

-단물 빨아먹고 떠나는 ‘기회주의자’란 비판도 있다.

“밖에서 볼 때 그런 생각이 들 수도 있지만, 난 임기가 마무리될 때까지 무소속으로 남을 거다. 더 반성하는 자세로, 지역을 위해 일하겠다는 말씀을 드린다.”

-민주당에 남기고 싶은 말이 있나.

“민주당이 집권하고 나서 가족 간에도 정치 성향이 안 맞으면 서로 싸우는 세상이 됐다. 민주당의 판단과 정책이 설령 옳더라도 다른 쪽 목소리도 듣는 모습을 보여줬으면 한다. 지금 우리 국민이 원하는 건 겸손한 민주당, 낮은 자세의 민주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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