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석희의 영화 같은 하루] [4] 홀로 가는 자가 가장 빠른 법
1917년 4월 6일, 1차대전이 한창이던 프랑스 전선에서 영국군 병사 스코필드와 블레이크에게 불가능에 가까운 명령이 내려진다. 수개월째 독일군과 대치 중인 무인 지대를 단둘이 건너가 아군 부대에 공격 중지 명령을 전달하라는 것이다. 이 명령을 제때 전달하지 못하면 그 부대에 있는 블레이크의 형을 포함해 아군 1600명이 전멸한다.
“저희만 갑니까?” 당황한 스코필드의 질문에 에린무어 장군은 러디어드 키플링의 시 ‘The Winners’를 한 구절 인용하여 답한다.
“지옥으로 가든, 왕좌로 가든 홀로 가는 자가 가장 빠른 법이다.”(Down to Gehenna or up to the Throne, He travels the fastest who travels alone.)
실화를 바탕으로 한 1차대전 전쟁 영화 ’1917′의 한 장면이다. 비교적 극 초반에 등장하는 이 대사는 이 이야기가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를 한 문장에 모두 함축하고 있다. 에린무어 장군의 말처럼 두 병사의 여정은 지옥이 되고 결국 한 명만이 여정을 이어간다.
블레이크는 천신만고 끝에 홀로 공격 중지 명령서를 전달하지만 아군 부대의 지휘관인 매켄지 중령은 막무가내로 공격을 강행하려 한다. 일견 전쟁광처럼 보이는 매켄지는 결국 공격을 취소하며 절망스러운 한숨을 내쉰다. “오늘은 끝날 거란 희망이 있었다. 희망은 위험한 거지.”(I hoped today might be a good day. Hope is a dangerous thing.)
매켄지는 대치 상황에 무력하게 병사들을 계속 잃어 가느니 하루라도 빨리 이 전투를 끝내는 것이 희생을 줄이는 길이란 걸 알고 있던 것이다. ‘1917′은 영리한 수미쌍관 연출을 통해 끝나지 않는 전쟁의 참상을 그려낸다. 지옥을 뚫어낸 블레이크의 비극이 또다시 반복될 것을, 이 전장의 수많은 매켄지가 언제 끝날지 모르는 전쟁에서 계속 부하들을 잃을 것임을 암시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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