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사삭 부서지는 튀김 속 보드라운 굴 속살이 씹혔다

정동현 음식칼럼니스트 입력 2021. 1. 30. 03:04 수정 2021. 1. 30. 0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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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정동현의 Pick] 굴
서울 반포동 '부엉이'의 굴 튀김./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좁은 계단은 남자 한 명이 오르내리기도 벅찼다. 도쿄 긴자 뒷골목 낡은 건물 2층 ‘가키바’는 굴을 전문으로 팔았다. 그곳에서 오로지 굴로 이루어진 코스를 먹었다. 도쿄 근해에서 홋카이도까지, 일본 열도를 훑으며 굴을 종류별로 방탕한 카사노바처럼 고루 섭렵했다. 나중에 받아 든 가격표는 ‘은화를 만드는 거리’라는 뜻인 긴자(銀座)의 이름값을 했다.

좁은 바다 너머 한국은 전 세계에서 굴이 가장 싼 나라다. 풍부한 양식 굴, 저렴하고 숙련된 노동력으로 굴을 대량 재배해 신속하게 유통한다. 덕분에 굴 요리 값이 조금만 나가도 본전 생각이 난다. 하지만 양보다는 질로 승부하는 곳이 하나둘 생겨나고 있다.

서울 성수동에 새로 생긴 ‘더즌오이스터’도 그중 하나다. 가정집을 개조한 이곳에 들어서면 말발굽 모양의 커다란 바가 보인다. 바 위에는 부서진 얼음 사이에 굴이 박혀 있다. 굴을 주문하면 훤칠한 요리사들이 짧고 굵은 굴 칼로 굴을 손님 앞에서 딴다. 가장 신선하게 먹는 방법이지만 그때그때 주문에 맞춰 굴을 깐다는 게 말처럼 쉽지 않다. 그러나 바 건너편에 서 있던 요리사는 주문이 들어오자 절도 있게 굴을 집어 들더니 작은 칼을 뿌리 쪽에 들이밀어 뽀얀 살을 가볍게 발라냈다.

굴에 레몬 즙을 뿌리고 타바스코 소스를 곁들였다. 혀를 오그라들게 만드는 신맛이 거친 바다 향기를 잠재웠다. 생굴뿐 아니라 굴을 이용한 다른 요리도 있었다. 갈릭 버터와 파마산 치즈를 올려 그릴에 구운 굴은, 생굴만 먹을 때의 지루함을 달래줬다. 생굴이 지닌 약간은 퇴폐적인 느낌 대신 다가가기 편하고 쉬운 맛이었다.

굴을 색다르지만 친숙하게 맛보려면 신사동 ‘있을재’에 가봐야 한다. 형제가 각각 주방과 홀을 책임진다. 조리 기법이나 음식의 모양새를 보면 이탈리아 본토의 웬만한 식당을 뛰어넘는다.

소고기와 크림, 치즈를 그야말로 때려 박아 만들어낸 라자냐는 겨울 차가운 기운을 이겨낼 만한 열량과 맛을 가졌다. 부드럽게 익힌 문어와 흙이 가진 미네랄 풍미를 지닌 감자가 곁들여진 샐러드는 그 산뜻한 맛에 가장 먼저 바닥을 보였다.

겨울 한정으로 내는 굴 파스타는 겨울 바다를 한참 졸여낸 듯 응축된 맛을 냈다. 가느다란 외줄을 타듯 섬세하고 빠르게 볶아낸 굴은 전혀 질기지 않았다. 신선한 굴이 가진 청량한 숨결만 가지고 있을 뿐이었다. 올리브오일과 육수가 한 몸처럼 얽혀 만들어낸 소스가 파스타에 칭칭 감겼다. 소스에 흘러나온 진한 감칠맛이 위장으로 통하는 길을 부드럽게 인도했다. 거센 바람이 모든 것을 훑고 가듯 바닥에 남긴 소스까지 사라져버렸다. 형제는 그런 손님들을 보며 사람 좋은 얼굴을 할 뿐이었다.

한강을 건너 강남에 가면 ‘부엉이’라는 일본식 선술집이 있다. 논현동 먹자골목 반대편에 문을 연 이곳은 조용히 사람을 끌어 모은다. 주방과 홀을 각각 맡은 여사장 둘은 서로 말도 거의 하지 않으면서 합을 맞춘다. 그러면서도 주문이 잘못 나가거나 밀리는 일이 없다.

제철 맞은 방어회, 참돔회 같은 것을 시켜놓고 혼자 사케(일본 청주) 잔을 홀짝여도 좋고, 후토마키(커다랗게 만 김밥) 같은 밥 메뉴와 함께 맥주를 마셔도 좋다. 하지만 밖으로 차가운 바람이 불 때 보글보글 끓어오르는 돼지고기 샤부샤부와 바삭거리는 굴 튀김을 가운데 두고 벗을 마주 보는 것은 지금 이때만 할 수 있는 즐거움이다.

서울 반포동 '부엉이'의 굴 튀김(앞)과 돼지고기 샤부샤부./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얇게 썬 돼지고기를 다시마와 표고버섯, 가다랑어 포를 우린 맑은 육수에 담갔다. 불필요한 기름기가 빠지고 담백하고 하얀 살코기만 남았다. 하얀 눈밭 위에 선 것처럼 담백하고 깨끗한 맛이었다. 입가에 묻는 기름기마저도 불필요하게 무겁거나 부담스럽지 않았다.

잠시 후 기름 끓는 소리가 나더니 굴 튀김이 나왔다. 쌓여서 언 눈이 부서지듯 튀김옷이 바스러졌다. 그 뒤로 빵을 씹는 듯 푹신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굴 속살이 이에 닿았다. 옅은 증기와 함께 부드러운 속살이 씹혔다. 곁들인 타르타르 소스의 시고 달콤한 맛이 별빛처럼 반짝였다. 바사삭, 바사삭. 문 밖에서 행인이 눈 밟는 소리가 났다.

#더즌오이스터: 굴 3만2000원(12개), 그릴드 오이스터 1만5000원.

#있을재: 굴 파스타 2만9000원, 라자냐 3만2000원, 문어 샐러드 3만2000원. 서울 강남구 언주로168길 19 1층,

#부엉이: 굴 튀김 1만8000원, 돼지고기 샤부샤부 3만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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