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인=범죄" 암묵적 편견.. 골 깊은 인종차별
죄 확정 안된 흑인 구금 비율 백인의 4배
범죄와 연관 짓는 편견, 그들 삶까지 왜곡
개인 차원의 문제 넘어 전염되고 대물림
우리 삶 곳곳에 침투.. 계속 피해자 양산
“Black Lives Matter(흑인의 목숨도 소중하다).”
이처럼 당연한 사실은 어떻게 대규모 시위를 이끈 구호가 되었을까. 사람 목숨의 중대함을 수많은 시민이 강조하고, 그것을 존중해 줄 것은 요구해야 하는 현실은 도대체 어떤 지경일까.
미국 스탠퍼드대 사회심리학 교수인 저자는 ‘편견’에서 미국 사회 인종차별의 근원을 파헤친다. 책의 제목에서 드러나듯 저자가 주목하는 것은 “인류 역사적으로 축적된 경험에 따라 작동하는 부조리한 인식일 뿐 아니라 사회화된 인간의 신경생리학적 반응일 수 있는” 편견이다. 편견은 부지불식간에 작동하는 ‘암묵적인’ 것이어서 뿌리가 깊다. 특히 “미국 사회에 자리 잡은 가장 강력한 인종관념인 흑인을 범죄와 결부시키는 것”이라는 점에서 폐혜가 크다.
#“정의를 내리고 그다음에 본다”
뉴욕 경찰의 ‘불러 세우고 질문하고 몸수색을 하라’ 캠페인이 절정에 달한 2010∼2011년 130만명의 행인이 불심검문을 당했다. 이 중 절반이 ‘은밀한 움직임’을 보였다는 이유였다. 검문 대상자의 54%가 흑인. 뉴욕 거주자의 흑인 비율이 23%라는 점을 감안하면 검문이 흑인에게 집중되었음을 알 수 있다. 흑인을 대상으로 한 총기사고 역시 경찰이 은밀한 움직임이라고 판단한 것에서 비롯된 사례가 많다. 41발을 맞고 죽은 1999년 아마두 디알로 사건이 대표적이다. 사건에 관련된 경찰은 “그가 마치 우리에게 무언가를 숨기려고 하는 것처럼 굴었다”고 총격의 이유를 설명했다.
“우리는 대부분의 영역에서 본 다음에 정의하는 것이 아니라 정의를 먼저 내리고 그다음에 본다.”
흑인들에 대한 경찰 인식의 실체가 무엇인지를 잘 보여주는 설명이다. “사실이라고 믿는 생각을 검열하지 않고 반복해서 찍어내듯 퍼트리는” 편견이 비극적 결과를 낳는 것이다.
저자는 흑인에 대한 암묵적인 편견을 다양한 실험을 통해 보여준다.
일반 사물을 들고 있는 이미지에 ‘쏘지마’ 버튼을, 총을 들고 있는 이미지에 ‘쏴’ 버튼을 누르는 반응을 알아본 실험에서 참가자들은 백인이 총을 들고 있을 때보다 흑인이 들고 있을 ‘쏴’ 버튼을 빨리 눌렀다. 총이 아닌 일반 사물을 든 흑인에게 ‘쏴’ 버튼을 누른 경우도 더 많았다. “인종 편견이 반응 속도와 총을 쏘는 여부를 결정하는 데 모두 영향을 미친다”는 뜻이다.
‘대인행동 연구’ 참가자들은 같은 행동을 하더라도 백인보다 흑인에게 보다 위협감을 느꼈다. 밀친 쪽이 흑인이고 당한 쪽이 백인일 경우 75%가 폭력적이라고 평가한 반면 반대의 경우에는 17%에 불과했다.
흑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쉽게 범죄와 연관 짓는 편견은 흑인의 실제 생활을 어떻게 왜곡시킬까. 저자는 “모든 통계 뒤에는 실제 사람과 삶이 있다”며 각종 통계를 제시한다.
죄가 확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흑인의 구금 비율은 비슷한 죄로 기소된 백인의 4배에 이른다. 보석금을 산정하는 방식이 직업 안정성, 체포 기록, 가족 수입 등을 바탕으로 정하기 때문에 젊은 흑인들이 피해를 볼 공산이 크다. 흑인 남성 피고에게 부과된 보석금이 백인보다 35% 더 높다는 게 일반적인 분석이다.
범죄자가 될 확률도 흑인이 확연히 높다. 저자가 소개한 한 연구에 따르면 1940년대 후반에 태어나 고등학교를 중퇴한 흑인 남성이 서른 살에 교도소에 갈 확률은 17%로 백인 남성의 4%와 대비된다. 이는 “국가 체제가 흑인에게 범죄자라는 꼬리표를 받아들이도록 압력을 가하고 대중은 흑인과 범죄를 결합시키는” 상황의 결과물이다.
죗값을 치른 후에도 흑인은 백인보다 더 가혹한 현실을 마주해야 한다. 전과가 있는 흑인은 같은 조건의 백인보다 취업기회를 잡기 어려웠다. 심지어 전과가 없다고 해도 전과가 있는 백인보다 지원회사로부터 연락을 적게 받았다. 결혼이 어려운 것도 당연한 일이다. “흑인과 백인의 결혼 비율은 1950년대에는 같았지만 흑인의 결혼 비율이 지난 40년간 눈에 띄게 하락한 까닭은 더 많은 흑인 남성들이 교도소에 가고 형량이 늘어났기 때문”이라는 연구 결과가 있다.
인종 차별을 경험하기 힘든 한국의 독자들은 이 책에서 어떤 의미를 찾을 수 있을까. 출판사는 “편견은 우리의 삶 곳곳에 침투해 뿌리를 내리고 피해자를 양산하고 있다”며 “불평등은 유색인종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권력자들이 가진 ‘정상성’ 이념에서 벗어난 모든 이들을 겨냥하며, 그들의 미래와 안전을 위협한다”고 밝혔다.
강구열 기자 river910@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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