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코의 유작 산문.. "요즘 마피아는 배신자 입에 돌 대신 핸드폰을 물린다"
미친 세상을 이해하는 척하는 방법
움베르토 에코 지음 | 박종대 옮김 | 열린책들 | 320쪽 | 1만4800원
‘전방위 지식인’의 일반 명사가 된 움베르트 에코(1932~2016)의 유작 에세이. 소설가이자 기호학자, 미학자였던 그가 썼던 산문 55편을 묶었다. 이탈리아 원제는 ‘Pape Satan Aleppe. Cronache di una societa liquida(파페 사탄 알레페 : 유동 사회의 연대기)’. 단테의 ‘신곡’ 지옥편 제7곡 첫머리에서 지하 세계의 신은 이렇게 외친다. “파페 사탄 알레페.” 이후로 전문가들이 이 말의 의미를 찾기 위해 무진 애를 썼지만 두 손 두 발을 들었다. 에코는 “두서없는 잡동사니 모음집인 이 책 제목에 잘 어울린다고 생각한다”고 썼다.
그는 냉철하면서도 유머러스한 시선으로 ‘유동 사회’의 단면을 드러내 보인다. ‘액체 근대’로 번역되기도 했던 이 개념은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이 제시했다. 흐르는 액체처럼 변화하는 현대 사회는 불안정하고 가벼우며 예측 불가능하다는 것.
그렇기에 ‘한 모로코인이 로마에서 핸드폰을 삼켰다가 경찰에 구조됐다. 마약상 소행으로 추정된다’는 신문 기사는 에코에게 상징적인 사건으로 읽힌다. 마피아는 배신자의 입에 돌을 물려 죽였지만, 이제 핸드폰을 쑤셔 넣는다고? 이런 행위는 “가장 내밀하고 개인적인 것을 훼손하는 일”이란 측면에서 성기를 잘라 내는 것과 같다. 핸드폰은 현대인 육체의 일부가 됐다.
“귀의 연장(延長)이고, 눈의 연장이고, 심지어 페니스의 연장이기도 하다. 누군가를 그의 핸드폰으로 질식시키는 것은 그의 창자로 목을 졸라 죽이는 것이나 진배없다. ‘자, 받아, 메세지 왔어!’ 하고 말이다.” 스티브 잡스가 아이폰을 소개한 뒤 1년 지난 2008년 발표된 칼럼이지만, 이때만 해도 모로코인이 꿀꺽한 건 스마트폰이 아닌 구형 휴대전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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