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라산 줄기에 금강 물길 금상첨화.. 재물도 인심도 함열이어라
작은 마을에 만석꾼 셋
세 부잣집의 위용
함라마을에 깃든 기운
옛사람들 오간 곰개나루
○ 풍요 기운 즐기는 골목길 여행
만석꾼은 지금으로 치면 재벌 반열에 오른 부자다. 불과 2.8km² 남짓한 촌락에서 만석꾼이 3명이나, 그것도 동시대에 출현한 것은 보기 드문 사례다. 대체 어떠한 마을이기에 이런 부자들을 배출해 냈을까.
함라마을은 옛 담장과 골목길로 유명하다. 직선으로 내뻗거나 곡선으로 휘어지는 골목길을 따라 토석담(흙다짐에 돌을 박아놓은 담), 전돌에 동식물을 새긴 화초담, 황토에 짚을 섞어 놓은 흙담 등 다양한 형태의 담장이 시선을 끈다.
높은 곳에 올라 마을을 내려다보면 옛 담장길 대부분이 규모가 큰 세 고택을 중심으로 형성돼 있다. 마을 중심부에 삼각형 구도로 배치된 이 고택들이 바로 만석꾼 이배원, 조해영, 김병순 3부자가 살던 터다. 그러니까 이웃한 3부잣집 담장이 곧 마을 담장이 되고 담장 사이가 골목길이 되는 셈이다.
마지막으로 제일 나중에 지은 김병순 고택(1922년)은 전북에서 제일 크다고 소문난 99칸 대가옥이다. 김병순이 백두산 소나무를 가져와 안채와 사랑채를 지었다고 하는데, 세 집 중 유일하게 국가민속문화재에 이름을 올렸다. 현재도 후손이 살고 있지만 집 내부를 잘 개방하지 않는다. 광복과 6·25전쟁을 거치면서 공산주의 계열 친인척을 두었다는 이유로 심한 박해를 받은 집안 내력도 이유일 듯하다. 이 집도 길가에 높다랗게 세운 담장이 일품이다. 대문을 중심으로 양편에 굴뚝과 어우러진 점선무늬 회벽꽃담이 인상적이다.
3부잣집 담장을 끼고 한 바퀴 돌면 얼추 동네 한 바퀴를 다 도는 셈이다. 그러는 사이 부자 터의 풍요로운 기운도 즐길 수 있다. 좋은 터에 있다 보면 굳이 기운을 느끼려 애쓰지 않더라도 기분이 상쾌해지고 마음이 편안해진다.
여행에 동행한 풍수학자 최낙기 박사는 “함라마을은 전형적인 부자 터”라고 말한다. 마을 뒷산 함라산이 명당 터를 받쳐주고 있다는 것이다. 함라마을은 동쪽 저 멀리 익산미륵사지가 있는 미륵산 줄기가 평지로 내려와 보일 듯 말 듯 서쪽 함라산까지 이어지는 지형에 자리 잡고 있다. 이에 따라 함라산을 등진 채 동향(東向·동쪽을 바라보는 향)하고 있는 함라 3부잣집은 자신의 뿌리인 미륵산 쪽을 바라보는 회룡고조형(回龍顧祖形) 형국을 이루게 된다. 최 박사는 “풍수학에서 회룡고조형 명당은 부(富)의 발복이 크다고 믿는데, 바로 경제인들이 선호하는 터”라고 평했다.
함라마을의 부는 우선 호남평야의 너른 들판이 기본이 됐다. 대지주를 배출할 만한 땅이 넘쳐나는 곳이다. 3부잣집 모두 땅에서 소출한 농산물이 부의 원천이 됐다. 이들 집안의 부가 나중에 쇠퇴하게 된 것도 8·15 광복 후 이승만 정부의 토지개혁으로 땅이 수용됐기 때문이다.
명당은 사람들을 불러 모으기 마련이다. 시골마을 인구가 갈수록 줄어가는 추세에도 이 마을만큼은 예외다. 함열현 관아 터 뒤편으로는 주로 외지인들이 지은 호화스러운 주택들이 여기저기 들어서 있다. 이 마을이 부자 명당일 뿐만 아니라 조선 24대 헌종의 계비인 효정왕후를 배출한 길지(吉地)라는 믿음 때문일 것이다. 효정왕후는 아버지 홍재룡이 함열현감으로 재직할 때인 1831년 이곳 함열현 관사에서 태어났다.
함라마을 지킴이 역할을 자처한 남궁승영 익산시의정회 이사는 “함열 남궁씨의 성지(聖地)로 여겨지는 이 마을은 명당 터 덕분인지 가뭄과 홍수의 피해가 다른 곳보다 현저히 적다”고도 말했다.
○ 곰개나루의 물길 따라
‘금강 물을 마시고 있는 곰 머리의 형상’이라 하여 웅포(熊浦)로 불리는 곰개나루는 예전엔 물산과 사람들로 흥성했으나, 지금은 금강의 노을빛이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일몰을 촬영하기 위해 전국에서 사진작가들이 즐겨 찾아온다. 역사적으로는 고려 우왕 6년(1380년) 최무선 장군이 왜구의 배 500여 척을 격침시켰던 진포대첩의 현장 터로도 알려졌다.
나바위성당 부지 내 야트막한 화산(華山)에는 ‘평화의 성모’상이 있는데, 안내 간판이 재미있다. 원래 이 터에 암자를 짓고 살던 스님이 스스로 떠나게 된 사연을 적으면서 이 터가 ‘전라북도 3대 명당자리 중 하나’라는 것이다. 아직도 화산 바위 뒤편에는 부처상을 새긴 마애삼존불상이 그대로 남아있고, 성당 측은 간판에 이를 소개하고 있다. 두 종교의 상징물이 같은 곳에 있는 것도 한국에서만 볼 수 있는 조화의 미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나바위성당의 너른 바위는 대단한 종교 명당 터라고 할 수 있다. 이곳에서 기도를 하면 응험함이 매우 빠를 수 있다.
함라마을이 속세의 기운을 받는 곳이라면 나바위성당은 성스러운 기운을 받는 곳이라고 할 수 있겠다. 성속(聖俗)의 세상을 동시에 체험하는 여행이 바로 함라산 둘레길 코스다.
사진·글 익산=안영배 기자·풍수학 박사 ojong@donga.com
Copyright © 동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韓 동학개미 - 美 로빈후드의 반격… 정치 이슈로 번진 ‘공매도’
- 개미군단 ‘공매도 대첩’… 韓美증시 판 뒤흔들다
- 당정, 공매도 협의… “금융당국 1차판단 따라야”
- 머스크 “소유 안한 주식 판다는건 헛소리”… 서정진 “공매도 세력 악성 루머에 질렸다”
- [사설]주식 공매도, ‘개미라서 피해 본다’ 불신 해소가 급선무
- [속보]EMA,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승인 권고…“고령층도 사용 가능”
- [단독]아스트라 고령층 사용제한 결정땐, 백신접종 일정 차질 우려
- 법원 “이성윤 안 거친 최강욱 기소, 문제없다”
- 조국 딸, 국립중앙의료원 인턴전형 불합격
- 美 “전작권 전환, 시기 못박는건 위험”… 서두르는 한국에 제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