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만든 청바지, 50년만에 원조 미국과 맞짱 뜨기까지
아메토라
W. 데이비드 막스 지음|박세진 옮김|워크룸프레스|384쪽|2만원
일본서 청바지는 2차 대전 직후 소개됐다. 기지촌 여성들은 미군에게 현금 대신 받은 헌옷을 암시장에 내다 팔았다. ‘지팡(G.I. 팬츠)’이라 불린 이 빛 바랜 푸른 바지는 매입가의 열 배 가까운 값에도 매장에 들어오자마자 불티나게 팔렸다. 면 소재라 당시 대부분의 남성들이 입던 모직 바지보다 일본 기후에 더 맞았다. 카키색 ‘국민복’ 물결 속에서 푸른색은 단연 돋보였다.
최초의 일본산 청바지는 1965년 마루오 클로싱이 출시한 ‘칸톤’이다. 그러나 빳빳한 ‘새 청바지’는 인기가 없었다. 800엔짜리 칸톤보다 1400엔짜리 미제 중고 청바지가 열 배쯤 많이 팔렸다. 그 후로 50년, 이제 패션 전문가들은 “최고의 ‘진짜’ 청바지는 일본서 만들어진다”고 말한다. “일본 브랜드들이 미국보다 아메리칸 스타일 패션을 더 잘 만든다”고도 주장하기도 한다. 실제로 요즘 뉴욕의 실용적인 멋쟁이들은 갭보다 유니클로를 더 좋아한다.
‘아메토라’는 ‘아메리칸 트래디셔널’의 준말. 책은 미국 패션이 일본에 수입돼 각종 우여곡절을 겪으며 버티다가 역수출돼 ‘원조’와 맞서기까지의 과정을 추적한다.
1960년대 일본 젊은이들에게 ‘아메리칸 스타일’은 ‘자유’의 상징이었지만 기성세대는 이를 ‘개혁’의 대상으로 봤다. 올림픽 개막이 한 달도 남지 않은 1964년 9월 12일 밤 도쿄, 사복 차림 경찰 10여 명이 긴자 거리에서 미국 아이비리그 대학생처럼 버튼다운 셔츠와 치노 팬츠의 ‘아이비 룩’을 차려입고 7:3 비율로 빗어 넘긴 ‘케네디 헤어스타일’을 한 10대 200여 명을 체포한다. 이들은 방과 후 금색 단추가 달린 검정 교복 ‘가쿠란’을 벗어던지고 미국식 옷을 입으며 해방감을 만끽했지만 당국은 요상한 옷차림의 이 ‘반항아’들을 외국 손님들에게 보여주기 싫었던 것.
패션에 대해 잘 모르더라도 문화사적 측면에서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일본 문화 연구자인 저자는 하버드대에서 동아시아학을 공부하고 게이오 대학에서 마케팅 및 소비자행동학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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