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연 PD의 방송 이야기] 반려동물은 소품이 아니다

이수연 TV조선 시사제작부 PD 2021. 1. 30.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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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연 TV조선 시사제작부 PD

최근 한 배우가 반려동물 때문에 구설에 올랐다. 키우던 강아지와 함께 예능 프로에 출연했는데, 그 다정한 모습과 달리 과거 수차례 반려동물을 ‘파양(罷養)’했다는 의혹에 휩싸인 것이다. 당사자가 인정하며 상황은 정리됐지만, 강아지를 안고만 있어도 시청률이 보장되는 ‘동물 전성시대’에 뜻밖의 반려동물 논란이었다.

방송엔 ‘3B의 법칙’이란 게 있다. 아기(Baby), 동물(Beast), 미인(Beauty)이 등장하면 시청률이 높다는 것이다. 특히 카메라를 의식하지 않고 귀여움을 발산하는 동물은 제작진도 좋아하는 시청률 보증수표다.

그러나 동물의 순수한 모습을 카메라에 담으려면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그나마 관찰 예능에 등장하는 동물은 연예인이 어느 정도 다룰 줄도 알고, 좌충우돌하는 모습이 재밌으니 사정이 나은 편이다. 걱정은 드라마와 같이 ‘연기’가 필요한 경우인데, 아무리 당찬 동물도 조명이 쏟아지는 촬영장에선 집중력이 흩어진다. 그래서 동물을 캐스팅할 땐 외모보단 성격을 우선시한다. 활발한 강아지가 소심한 강아지보다 촬영장에선 더 좋은 실력을 발휘한다.

또 사납거나 낯가림이 심해도 곤란하다. 과거 한 연속극에 출연하던 강아지는 연기자만 보면 너무 짖어대서 대사가 안 들릴 정도였다고 한다. 할 수 없이 배우들이 NG를 안 내려고 필사의 연기를 펼쳤다는 후일담이 있다.

그렇다면 동물의 ‘표정 연기’가 필요할 땐 어떻게 할까? 동물이 진짜 표정을 짓기는 어려우니, ‘표정을 짓는구나’ 싶게 상황을 만든다. 가령 강아지가 ‘맛있다’는 표정을 짓게 하려면, 코에 살짝 먹이를 발라 놓고 그걸 핥아먹게 해 ‘맛있어 보이는 느낌’을 주는 식이다.

동물에 대한 이해가 없다면, 아무리 귀여운 동물을 등장시켜도 시청자의 사랑을 받기 어렵다. 한때 고양이를 내세웠던 한 예능 프로도 유기묘 입양에 배려가 부족했다는 이유로 외면받은 일이 있다. 촬영에 동원되는 동물을 소품으로 대했다간, ‘동물 학대’ 논란을 피할 수 없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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