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영웅이 필요한 나라는 불행하다"

김태언 기자 2021. 1. 30.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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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를 대표하는 기호학자이자 베스트셀러 소설가인 움베르토 에코가 2016년 2월 세상을 떠나기 전 남긴 마지막 유작이다.

2000년부터 타계 전까지 쓴 55편의 에세이는 촌철살인 그 자체다.

한 챕터로 들어간 '영웅이 필요한 나라는 불행하다'는 에세이가 특히 그렇다.

언론은 구조 작전을 지휘한 뒤 마지막으로 배에서 내린 선장을 집중 조명하며 영웅이라는 찬사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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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 세상을 이해하는 척하는 방법/움베르토 에코 지음·박종대 옮김/320쪽·1만4800원·열린책들
20세기를 대표하는 기호학자이자 베스트셀러 소설가인 움베르토 에코가 2016년 2월 세상을 떠나기 전 남긴 마지막 유작이다. 2000년부터 타계 전까지 쓴 55편의 에세이는 촌철살인 그 자체다. 에코는 이탈리아인이지만 책에서 몇 단어만 바꾸면 지금의 한국 사회에도 적용되는 이야기가 된다.

한 챕터로 들어간 ‘영웅이 필요한 나라는 불행하다’는 에세이가 특히 그렇다. 2014년 12월 그리스에서 출발해 이탈리아로 향하던 선박 노먼 애틀랜틱호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사망자가 나온 가운데 400명이 넘는 승객 대부분은 구조됐다. 언론은 구조 작전을 지휘한 뒤 마지막으로 배에서 내린 선장을 집중 조명하며 영웅이라는 찬사를 보냈다.

저자는 이 대목에서 의문을 제기한다. 사람들은 왜 자신의 의무를 다했을 뿐인 선장을 영웅이라고 부르는가. 영웅적인 인물을 찾아내는 데 급급한 나라는 불행하다. 뒤집어 생각하면 묵묵히 자신의 의무를 다하는 사람들이 적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쯤에서 많은 국내 독자들은 같은 해 벌어진 세월호 참사를 떠올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에코의 날카로운 시선은 사건 사고에만 머물지 않는다. 일상에서 사생활을 사수하려는 일반인들에게 또 하나의 의문을 던진다. 우리는 자신이 언제 무엇을 샀는지, 어떤 호텔에 묵었는지 타인이 아는 걸 원치 않는다. 이에 따라 사회 곳곳에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보장하는 장치들이 마련돼 있다. 그러나 사람들은 종종 TV 프로그램에 나와 자신의 내밀한 가정사를 털어놓는다. 심지어 범죄자들은 시골에 숨기보다 사람들 앞에 나타나길 좋아한다.

이에 대해 저자는 오늘날에는 사회적 인정을 받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 됐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무시당하는 성실한 사람보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알아보는 도둑이 되고 싶은 것이다.

복잡한 세상 구석구석을 향한 저자의 일침은 냉철하지만 따뜻하다. 국가나 신, 이데올로기 같은 외부로부터의 구원에 대한 믿음이 사라진 현대 사회에서 개인들은 불안해한다. 저자는 그럴수록 현실로부터 도피하지 말고 무지에서 깨어나라고 말한다. 세상에는 여전히 희망이 있고, 위대한 책과 예술이 힘이 되어 줄 것이다.

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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