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농단 재판' 1심 4건 이어 첫 2심도 무죄
법원 "영장처리 상부 보고 위법아냐.. 공무상 비밀누설도 아니다"
여당이 재판에 개입해 사법행정권을 남용했다고 주장하며 임성근 부산고법 부장판사 탄핵을 추진하고 있는 상황에서, 법원이 이른바 ‘사법 농단’ 관련 사건에서 기소된 현직 판사 3명의 2심 재판에서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 이날 선고는 사법행정권 남용 사건과 관련한 첫 2심 판결이다.
서울고법 형사 8부(재판장 이균용)는 29일 양승태 대법원의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사건에서 구속영장에 담긴 정보를 법원행정처에 전달해 ‘공무상 비밀 누설' 혐의로 기소된 신광렬 사법정책연구원 부장판사, 성창호 서울동부지법 부장판사, 조의연 서울북부지법 부장판사에게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 법원은 이들의 정보 전달 행위에 대해 “국가기관 내부 행위에 불과하고 공무상 비밀 누설이 아니다”라고 했다. 행위 자체가 죄가 되지 않는다고 법원이 확인한 것이다.
이들은 2016년 이른바 ‘정운호 게이트’ 수사 당시 서울중앙지법에 접수된 영장 청구서나 검찰 수사 보고서에 현직 판사가 연루돼 있는 내용을 보고 이를 대법원 등 상부에 보고한 혐의로 재판을 받아왔다.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지시를 받은 신광렬 수석부장판사가 두 영장 전담 부장판사에게 판사 관련 내용을 파악해 보고하도록 했다는 것이다. 검찰은 이를 사법부에 대한 수사를 저지하기 위한 조직적 기밀 유출로 판단했다.
작년 2월 1심 재판부는 이들의 조직적 공모가 인정되지 않고, 유출된 내용도 공무상 비밀이 아니라며 무죄를 선고했다.
2심 재판부 판단도 같았다. 재판부는 “조의연·성창호는 영장 전담 판사로서 영장 처리 보고의 일환으로 수석부장인 신광렬에게 보고한 것으로, (비밀 누설의 ) 공모가 인정되지 않는다”고 했다. 재판부는 이들의 보고가 공무상 비밀 누설이 아니라고 봤다. “보고 목적이 신속한 조치를 위한 것이고 정보 내용도 그에 한정됐으며 통상적인 경로와 절차에 따라 보고됐다”는 것이다.
2심 재판부는 특히 “신 부장판사와 임 전 차장 모두 해당 정보를 외부로 유출한 적이 없어 공무상 비밀 누설이 아니다”라고 했다. ‘공무상 비밀 누설’은 비밀이 외부로 유출돼 국가 기능이 위협받는 것을 막자는 취지여서, 비밀 엄수 의무가 있는 공직자들 사이의 내부 보고는 민감한 내용이 있어도 범죄가 아니라는 법리를 세운 것이다. 한 고위 법관은 “이번과 같이 공직 사회 내부 보고를 마구잡이로 공무상 비밀 누설로 기소하는 것을 막자는 차원으로 보인다”고 했다.
신광렬 부장판사는 판결 후 “이 사건 수사와 기소가 부당하다는 게 다시 한번 확인됐고, 왜곡된 실체적 진실이 밝혀져 다행”이라고 했다. 그는 최근 여권에서 임성근 부장판사 등 사법행정권 남용 연루 판사들에 대한 탄핵을 추진하는 데 대해 “무죄 판결을 받았는데 탄핵은 곤란하지 않겠느냐”고 했다. 임성근 부장판사는 재판 개입 혐의로 기소됐지만 1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그러나 여당은 2월 퇴직 예정인 그에 대한 탄핵을 추진하고 있다.
지금까지 사법행정권 남용 혐의로 14명의 전·현직 법관이 기소됐고, 7건의 재판이 진행 중이다. 현재까지 4건이 1심에서 무죄가 났고 이날 첫 2심 판결도 무죄였다. 이 때문에 ‘사법행정권 남용' 수사 자체가 무리하게 진행됐다는 비판이 적지 않다. 재판 정보를 유출한 혐의로 기소된 유해용 전 대법원 재판연구관, 법원 내부 비리 수사를 막기 위해 수사 기밀을 외부로 빼돌린 혐의로 기소된 이태종 전 서울서부지법원장도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구 통합진보당 관련 재판 개입 혐의로 기소된 이민걸 전 행정처 기조실장과 이규진 전 양형위원 등은 1심 선고를 앞두고 있으며, 강제징용 재판 개입 및 법관 인사권 남용 등의 혐의로 기소된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임종헌 전 차장 등에 대해서는 1심 재판이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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