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원전 건설 문건.. 野 "이적행위" 靑 "북풍공작"
2018년 4월 남북회담 직후 작성, 탈원전 외치며 北원전 추진 의혹
산업통상자원부 공무원들이 감사원의 월성 원전(原電) 1호기 감사 직전(2019년 12월) 무더기로 삭제한 파일 중에 ‘북한 지역 원전 건설 추진'과 관련된 문건 17개가 포함된 사실을 놓고 29일 야당과 청와대가 정면충돌했다.
국민의힘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은 이날 입장문을 내고, “문재인 정부가 대한민국 원전은 폐쇄하고, 극비리에 북한에 원전을 지어주려 한 것은 원전 게이트 수준을 넘어 충격적 이적 행위”라며 “일방적으로 밀어붙인 탈원전 정책이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이었는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라고 했다. 삭제된 문건의 작성 시기가 2018년 4·27 판문점 남북 정상회담 직후인 5월 2~15일로, 월성 1호기 조기 폐쇄를 결정한 한국수력원자력 이사회를 앞둔 시점이었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공세를 편 것이다.
이에 대해 강민석 청와대 대변인은 “야당 대표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고는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 혹세무민하는 발언”이라고 했다. 이어 “북풍 공작과도 다를 바 없는 무책임한 발언이며 묵과할 수 없다”며 “법적 조치를 포함해 강력히 대응할 것”이라고 했다. 4·27 판문점 회담 당시 청와대 국정기획상황실장을 지낸 더불어민주당 윤건영 의원은 “세 차례 남북 정상회담과 교류 협력 사업 어디서도 북한의 원전 건설을 추진한 적이 없다”고 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가 북한엔 원전을 지어주려 한 것 아니냐’는 의혹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이와 관련, 4·27 판문점 회담 당일 문재인 대통령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한반도 신경제 구상'에 관한 USB를 건넸던 일화가 다시 조명되기도 했다.
전직 통일부 관리는 “북한이 1994년 제네바 합의 때부터 비핵화의 대가로 요구한 게 전력 공급을 위한 경수로 건설과 에너지 지원”이라며 “북한 비핵화 시나리오 중에는 북에 원전을 제공하는 방안도 포함돼 있기 때문에 2018년 남북 대화 국면에서 정부가 이를 구체화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文-金 도보다리 회담 17일뒤, 산업부 ‘北원전 문건’ 만들었다
산업부 공무원들이 2019년 12월 감사원 감사 전날 밤 급하게 삭제한 북한 원전 건설 관련 파일은 모두 17개다. 이 파일들의 작성 시기는 2018년 5월 2일부터 15일까지로, 판문점 1차 남북 정상회담(4월 27일)과 2차 정상회담(5월 26일) 사이였다. 1차 남북 정상회담에서 북한 원전 건설 문제가 다뤄졌고, 회담 직후 산업부가 이를 구체화했을 가능성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문재인 정부가 북한에 원전을 지어주려 했다는 의혹을 야당이 제기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청와대는 “혹세무민” “북풍 공작”이라며 즉각 반발했지만 의혹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17건 모두 4·27 회담 직후 작성
검찰 공소장에 따르면, 삭제된 파일은 ’180514_북한지역 원전건설 추진방안_v1.1.hwp’ ‘북한 전력 인프라 구축을 위한 단계적 협력 과제.PDF’ 등이다. 파일 복원 결과 이들 파일이 담긴 폴더는 핀란드어로 ‘북쪽’을 뜻하는 ‘pohjois’(뽀요이스), ‘북한 원전 추진’의 약자인 ‘북원추’ 등이었다. 작성 시기가 가장 이른 것은 2018년 5월 2일로 4·27 판문점 회담 닷새 뒤였다.
전문가들은 “당시 정부가 북한 원전 건설을 추진했을 개연성이 있다”고 했다. 남북, 미·북 간 연쇄 정상회담을 추진하던 정부가 북측에 비핵화를 설득하는 인센티브로 원전 건설을 검토했을 수 있다는 것이다. 만성적 전력난에 시달리는 북한은 1994년 제네바 합의, 2000년대 6자회담 등 주요 비핵화 담판 때마다 비핵화의 대가로 경수로 원전 건설과 에너지 지원 등을 요구했다.
삭제된 파일 가운데 ‘KEDO 관련 업무경험자 명단’ ‘경수로 백서’ 등이 포함된 것도 이 같은 분석을 뒷받침한다. KEDO(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는 제네바 합의에 따라 함경남도 신포에 경수로 원전을 건설하기 위해 꾸렸던 국제기구다. 북한 경수로 원전 건설 프로젝트를 부활시키거나 유사 계획을 추진하는 방안이 검토됐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전직 정부 관리는 “실제 한·미의 북한 비핵화 시나리오 중에 남한에서 생산한 전기를 북한에 송전해주거나 경수로 원전을 건설해주는 방안이 들어있다”며 “우리 측이 4·27 회담에서 이 계획을 북측에 설명하고, 회담 직후 실무 부서인 산업부에 구체적 방안을 만들어 보라고 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정부 “단순 검토” 野 “떳떳하면 왜 지웠나”
삭제된 북한 원전 건설 관련 파일 17개가 작성된 2018년 5월은 월성 1호기 조기 폐쇄를 결정한 한국수력원자력 이사회를 한 달 앞둔 시점이었다. 야당이 “문재인 정부가 밀어붙인 탈원전 정책이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이었는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라며 “이중적 행태” “이적행위”라고 공세를 펴는 것은 이 때문이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국내 탈원전을 통해 발생한 잉여 장비와 인력을 북한에 투입하려 했던 것 아니냐”고 했다.
과거 신포 경수로 건설 때와 달리 지금은 북한에 원전을 지어주는 방안의 실현 가능성이 극히 희박하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북한의 ‘핵·미사일 폭주’로 2중, 3중의 고강도 대북 제재가 가동되고 있기 때문이다. 외교 소식통은 “북한에 삽 한 자루 반입하는 것도 엄격한 심사를 거쳐야 하는데 민감한 전략물자로 점철된 원전을 북에 지어주려 했다면 너무 앞서 나간 것”이라고 했다.
산업부 관계자는 삭제된 북한 원전 건설 관련 파일들과 관련, “향후 남북경협이 활성화될 경우에 대비하여 단순하게 아이디어 차원에서 검토한 내부 자료”라고 했다. 남북 대화 국면에서 단순 검토 차원이었단 취지다. 4·27 판문점 회담 당시 청와대 국정기획상황실장을 지낸 더불어민주당 윤건영 의원도 이날 페이스북에 “그들(공무원)의 컴퓨터에 있는 문서가 모두 남북 정상회담의 의제이고, 정부 정책이냐”고 했다.
하지만 야당은 “그렇게 떳떳하다면 월성 원전 1호기 조기 폐쇄 감사 전날 밤 월성 원전과 직접적 관련도 없는 북한 원전 건설 관련 파일들을 급하게 지운 이유가 뭐냐”고 따졌다. 김종인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은 이날 “공무원들이 삭제한 관련 문건은 집권 세력이 그토록 숨기려 한 원전 조기 폐쇄의 모든 것이 담긴 일종의 ‘블랙박스’”라며 “검찰은 추가 수사를 통해 실체적 진실을 반드시 밝혀내야 한다”고 했다. 강민석 청와대 대변인은 “법적 조치를 포함해 강력히 대응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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