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성 원전 조기 폐쇄, 산업부서 개입 정황

강광우.정유진.성지원 2021. 1. 30. 0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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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공소장, 청와대 보고 의혹도

산업통상자원부가 월성 원전 1호기 폐쇄와 관련해 한국수력원자력 이사회의 결정에 개입한 정황이 드러났다.

29일 중앙일보가 입수한 검찰의 공소장 범죄일람표에는 산업부 공무원 3명이 월성 1호기 감사 직전 삭제한 530개 파일 목록이 담겨 있다. 복구 파일 중에 한수원 이사회가 월성 1호기 폐쇄를 의결(2018년 6월 15일)하기 3주 전 작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180524_한수원 사장에게 요청할 사항’ 문건에는 월성 1호기 영구 중단 결정, 지역 주민에 대한 설명회 등을 한수원에 요청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검찰은 ‘180530_한수원 사장 면담 참고자료’, ‘4234’ 문건 등도 산업부와 한수원이 협의한 자료로 판단했다.

산업부가 월성 1호기 조기 폐쇄를 미리 청와대에 보고한 정황도 드러났다. ‘4234’ 문건에는 ‘BH(청와대·Blue House) 기보고 사항이므로 조기폐쇄 결정 이후 즉시 가동중단이 필요하며, 6·13 지방선거 직후 이사회 의결이 필요하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180523_에너지 전환 보완대책 추진현황 및 향후 추진일정(BH송부)’ 문건에는 “2018년 6월 15일 한수원 이사회가 월성 1호기 조기 폐쇄 및 즉시 가동중단을 결정할 예정”이라는 내용이 들어있다. 이때는 월성 1호기 경제성에 대한 외부 용역 평가 결과가 나오기 전이었다. 청와대와 산업부가 미리 원전 폐쇄를 결정해 놓고 한수원에 압박을 가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검찰이 보는 이유다.

이 같은 수사 결과는 산업부의 해명과 배치된다. 성윤모 산업부 장관과 백운규 전 산업부 장관은 “정부의 정책 결정과 별개로 한수원이 자율적으로 결정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야 “윗선 모두 찾아내 엄벌하라” 여 “검찰 주장, 사실관계 확인 안돼”

한수원 이사회가 임박한 2018년 6월에는 대통령 보고용 문서가 청와대의 수정 요청으로 다시 작성한 흔적도 나타났다. ‘180610_대통령 에너지전환(원전) 보고_원전국_v(BH 수정요청 반영 재제출)’ 문건이다. 또 한수원 이사회의 조기 폐쇄 의결 관련 보도자료에 월성 1호기 근로자 고용보장 사항 등을 포함하는 계획 등을 채희봉 당시 청와대 산업비서관과 협의하는 ‘180611_산업비서관 요청사항’ 문건도 나왔다. 검찰은 삭제 파일 중에 북한 원전 건설 추진 방안과 원전 찬·반 시민단체, 한수원 노조 동향을 담은 문건도 있었다고 적시했다.

문건 삭제를 실행해 구속기소된 A서기관은 감사원 조사에서 “2019년 12월 1일 오후 10시가 넘어서 산업부 사무실에 들어가 월성 1호기 감사 관련 폴더를 비롯한 각종 업무용 폴더를 삭제한 사유는 다음 날 오전 감사원 감사관과 면담이 약속돼 있었기 때문”이라며 “감사관에게 감사 자료를 제출하지 않기 위해, 그리고 관련 자료가 없다고 이야기하기 위해 삭제한 것”이라고 진술했다. 그는 “파일을 복구했을 때 파일명으로는 어떤 문서인지 확인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 ‘파일 작성일자_한수원 사장에게 요청할 사항’ 파일명을 ‘4234’로 수정해 삭제했다”고 밝혔다.

산업부에서 삭제한 파일 목록이 공개되면서 파문이 정치권으로 확대되고 있다. 국민의힘은 이날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이 직접 1800자가 넘는 장문의 입장문을 내는 등 총공세에 나섰다. 김 위원장은 “정권과 결탁한 공무원들이 삭제한 관련 문건은 집권세력이 그토록 숨기려한, 원전 조기 폐쇄의 모든 것이 담긴 블랙박스”라고 규정했다. 특히 정부의 탈원전 정책에 반대하는 시민단체와 노조의 동향을 파악한 문건을 놓고 “현 정부는 사찰 DNA가 없다고 줄기차게 주장해왔지만 이번에 고스란히 드러났다”며 “윗선 등 관련자를 모두 찾아내 엄벌하라”고 요구했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야당 측 간사인 이철규 의원은 “정부 부처는 국정감사에서 기관에 보낸 문서의 접수대장을 다 공개하도록 돼있는데, 이번에 삭제된 목록들은 앞선 국감에서도 한 번도 확인된 적이 없다”며 “단순히 감사를 앞두고 두려워서 급히 삭제한 게 아니라 처음부터 조직적으로 은폐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국민의힘은 이와 관련해 당 차원의 진상규명위원회를 새로 구성할 방침이다. 특히 최근 출범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로 원전 관련 수사가 이첩될 가능성이 제기되는 만큼, 검찰 수사가 완전히 끝날 때까지 청와대와 여당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높이겠다는 취지다.

이에 대해 “정치 감사”라며 최재형 감사원장을 강도높게 비판해 온 더불어민주당의 입장이 난처해졌다. 민주당은 이날 별다른 공식 대응을 하지 않았다. 민주당 지도부의 한 의원은 이날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공소장은 검찰의 주장일 뿐 사실관계가 확인된 게 아니다”고 말했다. 산업부가 청와대와 논의를 주고받은 정황이 나온 데 대해서는 “우리도 전혀 알지 못하는 내용”이라고 덧붙였다. 신영대 대변인은 “지난해 감사원이 국회에 감사보고서를 제출했을 때는 삭제 파일 목록이 전혀 없었는데, 이제 이를 복구했다며 슬금슬금 흘리고 있다”고 비판했다. 삭제 목록 중 산업부의 원전 폐쇄 반대 시민단체 동향 파악 보고서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렸다. 대체로 “제목만 보고는 안에 무슨 내용이 있는지 알 수 없다”는 반응이었지만, “다른 건 몰라도 시민단체가 경찰에 낸 집회신고서를 산업부가 갖고 있었던 건 문제가 있는 것 같다”(호남 재선의원)는 의견도 나왔다.

강광우·정유진·성지원 기자 kang.kwangw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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