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적 시선으로 세상사 이해하기

김서정 2021. 1. 30. 0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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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이 사건'으로 나라가 떠들썩하다.

현실적으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세상사와 인간관계를 들여다보는 좋은 도구 중 하나로 신화적 시선이 있다.

하지만 그 신화적인 모티프와 사건들은 정말 매혹적이었다.

이 이야기를 복잡한 엄마를 보내고 우울증에 빠진 자기도 보낸 뒤 비로소 다시 태어나 자신의 신화를 완성하는 딸의 여정으로 본다면, 여전히 전모를 알 수는 없지만 인생의 어느 한 면은 가까스로 이해한 셈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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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의 호수〉
키티 크라우더 지음, 김영미 옮김
논장 펴냄

‘정인이 사건’으로 나라가 떠들썩하다. 양모를 살인죄로 기소해야 한다, 입양 절차를 보강해야 한다, 입양 기관을 감사해야 한다…. 해당 입양 기관의 이름이 전철역에 붙어 있어서 늘 의아하기는 했다. 이런 광고 행위는 기업과 상품의 이미지 제고, 이윤 확대가 목표 아닌가. 뭐, 내가 모르는 깊은 뜻이 있겠지. 그보다 마음 쓰이는 것은, 양부모를 포함해 부모가 아이에게 가하는 폭력을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 아이는 거기에 어떻게 붙잡히는가,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하는 점이다. 친부의 성폭력과 친모의 방관, 훈육과 교육을 표방한 엄마의 억압과 아빠의 무능력…. 보통 가정이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인데, 이런 일이 드물지만은 않은 세상이다. 어느 전 대통령이 강조한 대로 비정상이 정상이 되어가는 현실인가, 아니면 전부터 그래왔는데 미디어의 발달로 많이 알려져서 그러는 걸까.  

엄마의 지나친 아이 보호

현실적으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세상사와 인간관계를 들여다보는 좋은 도구 중 하나로 신화적 시선이 있다. 뭔지 모르겠는 것은 여전하지만 거기에는 어쩐지 깊은 건드림과 함께 마음에 드는 면이 있다. 이 문제로 골몰하다가 만난 〈아니의 호수〉도 그랬다. 아니는 어른 여자인데, 세 개의 섬이 있는 호숫가에서 엄마가 죽은 뒤 한없이 우울해진다. 견디다 못한 어느 밤 돌을 매달고 호수로 뛰어든 아니. 세 섬은 거인 남자로 변해 아니를 살려주고, 자신들을 저주에서 풀어줄 여자 거인들이 있는 바다로 데려다줄 것을 청한다. 결말은? 짐작이 어렵지 않은 해피엔딩이다. 많은 양의 글, “아주 예쁘지도 않지만 너무 못생기지도 않”은 아니의 모습, 어쩐지 몸속 장기를 연상시키는(이 작가의 〈내 안에 내가 있다〉를 최근 읽은 때문일지도 모른다) 벽지그림 등이 처음부터 이 책에 호감을 갖게 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 신화적인 모티프와 사건들은 정말 매혹적이었다. 물은 탄생, 죽음, 부활 등 여러 상징이 있는 이미지라 호수, 강, 바다로 이어지는 배경은 광활하고 복합적인 감각을 일깨운다. “줄곧 혼자”인 데다 “작은 고양이들이 행복해하는 그림이 맘에 안 들어서 한 번도 달력을 산 적이 없”을 정도로 어떤 존재와의 교류도 거부하던 아니가 거인 남자를 받아들여 “아름다운 이야기”를 펼쳐가는 과정은 그야말로 다이내믹하게 풍요롭고 의미 깊다.

하지만 “다른 것들 이야기는 나중에 하기로” 하고 모녀에게 초점을 맞춰보자. 아니가 고립된 데는 엄마 역할이 큰 듯하다. 자신이 죽은 뒤 “아무도 찾아오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딸에게 공동체의 환경을 조성해주지 않았다. “고약하게 이야기하던 엄마”이지만 그리워할 정도로 의존도를 높여놓았다. 엄마의 아이 사랑과 보호가 지나쳐 무기력하게 만들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을 것이다. 이 이야기는 그 가능성에서 시작한다. 하지만 엄마가 “가끔은 애정을 듬뿍 담아서 말할 때도 있”다. “네 눈은 세 개의 섬이 있는 호수처럼 깊고 아름답구나.” 호수에 세 남자가 있다는 것을 상기하자. 프랑스어나 독일어에서 호수는 남성명사다. 엄마는 딸의 의식 깊은 곳에 어떤 남성상을 심어주고, 깊고 아름다운 눈으로 들여다보다가 잠겨 들어갈 여지를 마련해준다. 이 이야기를 복잡한 엄마를 보내고 우울증에 빠진 자기도 보낸 뒤 비로소 다시 태어나 자신의 신화를 완성하는 딸의 여정으로 본다면, 여전히 전모를 알 수는 없지만 인생의 어느 한 면은 가까스로 이해한 셈일까. 할 말이 더 많은데, 짧은 지면이 아쉽다.

김서정 (동화작가·평론가)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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