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역전'이라는 나쁜 투자 습관

김문재 2021. 1. 30. 0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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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주가는 더 올라 4000포인트를 넘을 수도 있고 폭락해 2020년 전으로 돌아갈 수도 있다. 분명한 것은 2020년의 주식시장이 표준적인 이유로 상승한 시장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연합뉴스1월7일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에서 증권 관계자들이 종합주가지수 3000 돌파를 축하하고 있다.

금융·투자업계에서 한국의 유가증권시장을 일컫는 가장 대표적인 단어가 있다면 아마도 ‘박스권’일 터이다. ‘박스권’은 지난 10여 년 동안 1800~2100포인트 사이에서 좀처럼 움직이지 않는 한국 증시를 상자에 비유한 단어다. 그러나 삼성전자를 제외하면 그동안 대개 실적 면에서 변변찮던 한국 증시를 자조하는 용어이기도 했다.

그러나 지난해의 경우, 코로나19 대유행에도 불구하고 한국 주식시장은 박스권이란 오명을 벗는 데 성공했다. 코스피지수는 2020년 마지막 거래일을 2017년 반도체 호황 당시를 훌쩍 넘어선 2873.47로 마감했다. 2021년 첫 거래일이 시작되자마자 기념비적 지수인 3000포인트를 돌파하는 데 성공했다. 종합주가지수의 산출 이래 사상 최고치다. 그렇다면, 내수 실물경기가 코로나로 인해 상당히 얼어붙었는데도 불구하고 한국 증시가 상승을 거듭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증시의 상승은 과연 모두에게 행복만을 안겨주는 것인가. 최근 금융시장을 보며 우리가 유념해야 할 점은 무엇일까.

지난해 한국 주식시장을 일으켜 세운 일등공신은 단연 개인투자자라고 할 수 있다. 2020년 한 해 동안 개인투자자는 총액 47조원이라는 어마어마한 순매수세를 기록했다. 더 놀라운 사실은 시장의 고객 예탁금(고객이 주식을 매수하기 위해 계좌에 입금해둔 금전을 의미. 대기 자금의 성격을 띤다)이 줄어들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2020년 말 기준 주식시장의 고객 예탁금은 약 64조원 수준이었다. 즉 한 해 전체 순매수 금액의 약 1.5배 이상의 대기 자금이 아직도 증시에서 눈을 번득이고 있다는 뜻이다.

실물경기와 주식시장 간의 괴리

결국 지난해에는 전통적으로 주식가격을 지배했던 기업들의 실적이 아닌, 시중에서 갈 곳을 찾던 길 잃은 자금들이 주식시장으로 몰려들어 주가를 상승시키는 전형적인 유동성 장세의 모습이 나타났다고 판단할 수 있다. 이런 특수성 덕분에 관성적으로 한국 시장에 낮은 ‘밸류’를 주어왔던 외국인 투자자들보다 ‘모멘텀’에 올라탄 국내 개인투자자들이 한참 더 나은 성과를 거두게 된 것이다.

실제로 지난해 3월 대구·경북 지역을 중심으로 코로나19 1차 유행이 발생했을 당시 외국인 투자자들은 한국의 주식을 대거 매도하며 종합주가지수를 2100포인트 근방에서 1400포인트까지 하락시키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종합주가지수 1400포인트는 글로벌 금융위기의 여파가 한창이던 2009년 7월 이후 11년 만의 최저치였다. 그러나 2020년 3월 1400포인트를 기록했던 증시는 같은 해 말 2800포인트를 넘기며 9개월 만에 2배로 상승했다. 하락세도 전례가 없었지만 상승세도 전례가 없었던, 유동성 장세에서만 관측될 수 있는 풍경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전례 없는 유동성 장세는 왜 찾아오게 되었는가. 다양한 원인이 있겠지만 가장 결정적으로는 2018년도부터 이어진 문재인 정부의 강도 높은 부동산 대출 규제를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의 가계저축률은 매년 하락해왔는데, 특히 2020년에는 약 10% 수준에 머무르는 것으로 보인다. 유휴자금의 대부분이 언제나 투자처를 찾고 있는 것으로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서울 부동산 가격의 상승과 이에 뒤따른 각종 대출 규제는 사실상 시중의 유휴자금이 부동산으로 흘러 들어갈 기회를 차단한 것과 마찬가지였다. 가진 현금만으로는 주택을 구매할 수 없게 되었으며, 그렇다고 가진 현금에 대출을 더해서 주택을 구매하기도 어렵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인터넷 플랫폼이 주식시장에 대한 접근 난도를 낮추는 역할을 담당했다. 상당수의 증권 전문가들이 몸담고 있던 직장을 떠나 개인 유튜브 채널을 개설했으며, 기관투자자와 개인투자자 간의 정보 격차가 지속적으로 축소되었다. 비단 국내 주식시장에서만 발생한 일은 아니다. 소셜미디어와 유튜브는 해외 주식시장에 대한 접근성 역시 크게 높였고, 결국 개인투자자의 급부상은 ‘유튜브로 인해 낮아진 투자 장벽’ ‘부동산 규제로 인해 갈 곳을 잃은 시중 유동성이 증시로 쏠림’ 등이 한꺼번에 겹쳐 일어난 현상으로 파악할 수 있다.

유동성 현상으로 인한 시장의 상승은 한 가지 문제점을 낳는데, 그것은 실물경기와 주식시장 간의 괴리가 발생한다는 사실이다. 한국뿐 아니라 미국을 비롯한 세계 모든 국가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기도 하다. 최근의 증시 상승에서 두드러지는 특징은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첫째로 투자자들이, 대규모 무형자산을 활용하여 영업활동을 수행하는 인터넷 플랫폼 기업들에 상당히 많은 가치를 부여하고 있다. 둘째로 대형 설비와 자본 투입을 통해 우직하게 재화를 생산해내는 전통적 업종은 반대로 심각한 저평가를 당하고 있다.

이는 시장참여자가 적고, 다종다양한 기업에 대한 분석이 많이 나오지 않을 때는 발생하기가 힘든 현상이다. 그러나 시장에 충분한 참여자가 있고 기업의 미래가치에 대한 정보가 넘쳐 흐를 때엔 얼마든지 이러한 쏠림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 기본적으로 주식시장은 미래의 꿈이 현실의 배당보다 더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2021년이 시작된 지 얼마 안 된 지금, 올해 시장이 2020년과 흡사한 움직임을 보일 것이라고 단언하기는 상당히 어렵다. 진정한 거품이 시작돼 올해 종합주가지수가 4000포인트를 달성할 수도 있겠지만, 어느 날 갑자기 주가지수가 다시 폭락하여 과거 ‘박스권’ 시대와 비슷한 수준으로 회귀할 수도 있는 것이 주식시장이다.

ⓒAFP PHOTO
ⓒ연합뉴스최근 투자자는 대규모 무형자산을 활용해 영업활동을 수행하는 인터넷 플랫폼 기업에 가치를 부여하고 있다. 반면 전통 업종은 심각한 저평가를 받고 있다.

‘인생 역전’이라는 나쁜 투자 습관

투자를 하다 보면 때론 수익을 얻고 때론 손실을 입기 마련이다. 다만 투자하는 시장의 속성만은 명확히 규명할 필요가 있다. 2020년의 주식시장은 분명히 정의하건대 표준적인 이유로 상승한 시장은 아니었다. 주식의 가격은 기업 실적의 함수에 시장심리의 총합이라는 한 가지 변수를 추가로 더한 것이기 때문에 현재의 주식가격은 무슨 이유에서든 정당화될 수 있다. 하지만 유동성을 한 축으로 삼아 조성된 시장은 부서져가는 구름다리와 같기 때문에 항상 조심해야 한다.

그렇다면 부서져가는 구름다리 위에서 떨어져 다치지 않는 방법은 과연 무엇일까. 증권시장은 마치 끓는 물과 같아서 많은 사람들이 장작을 밀어 넣으면 거세게 불타오르지만, 활활 타오르는 활황 속에서도 손을 데어 다치는 투자자가 있는가 하면 맨 마지막으로 장작을 밀어 넣고 식어만 가는 솥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는 투자자도 있다. 결국 유동성 시장에서는 다치지 않는 투자 원칙이 가장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먼저, 당일 예정된 주식 매매를 마친 뒤에는 주식 투자 프로그램을 종료하고 차라리 취미 생활을 하는 편이 낫다. 주식 예수금을 손에서 놓지 못하고 증권사 애플리케이션에서 눈을 떼지 못하며 쇼핑을 계속하는 것은 주식 예수금을 현금화하는 데에 걸리는 시간 이틀을 계속 뒤로 미루는 것과 같다. 주식은 매도하면 바로 현금이 입금되지 않고 이틀을 기다려야 한다. 많은 투자자들이 이 사실을 잊고 투자한다. 가장 안전한 투자는 금전이 시급할 때 자신의 자금줄이 막히지 않는 투자다.

ⓒ연합뉴스2020년 3월13일 코스닥에 이어 코스피에도 서킷브레이커가 발동되었다. 18년6개월 만에 처음이었다.

변동성이 심한 시장 환경에서는 자기 자신의 판단을 지나치게 믿는 것만큼 위험한 일이 없다. 하락에 하락을 거듭할수록 누군가의 눈에는 증권시장이 이른바 ‘물 반 고기 반’으로 보이겠지만 실제로 성공한 낚시꾼은 우리 주변에 거의 없다. 2020년 주식시장에서 가장 나쁜 성과를 거둔 것으로 알려진 20대 남성들이 대부분 인버스 ETF(주가지수가 하락하면 이득을 보는 상품)로 손실을 본 것 역시 결국 시장의 고점과 저점에 대한 지나친 확신을 가졌기 때문이다.

‘인생 역전’이라는 테마 역시 많은 사람들의 투자 습관을 나쁘게 만든다. 인생 역전이라는 캐치프레이즈에 눈이 멀면 어느새 경제 분석과 종목에 대한 학습은 뒤로하고 테마주나 동전주 또는 변동성이 큰 파생상품에 모든 자본을 투자하게 된다. 실제로 시장에서 한몫을 잡는 사람들은 나쁜 투자 습관을 가진 사람들의 돈으로 큰 수익을 얻는 경우라는 사실을 잊지 말자. 투자는 마라톤이다. 

김문재 (펀드매니저)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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