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번뇌의 귀환"..여당 지도부도 못 말린 법관 탄핵
"헌재서 각하, 입법 독주 역풍 우려"
민주당 지도부 설득했지만 실패
이낙연 대표 "탄핵 외면은 직무유기"
임 판사 "헌법 위반에 해당 안 돼"
29일 더불어민주당의 한 수도권 의원은 법관 탄핵 문제를 논의한 전날 화상 의원총회 모습을 이렇게 총평했다. ‘108번뇌’는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 소추 역풍을 타고 17대 국회에 입성한 108명의 초선 의원을 일컫는 말이다. 당시 이들이 국가보안법과 이라크 파병 등 굵직한 현안마다 당 지도부에 반기를 들면서 정국은 바람 잘 날이 없었다.
참석 의원들의 말을 종합하면 의총은 10여분에 걸친 김영진 원내수석부대표의 우려로 시작했다. 김 부대표는 “전투에 이기더라도 전쟁에서 이길 수 있겠느냐”며 “긴 터널(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 갈등)을 어렵게 뚫고 나왔는데 왜 다시 그 터널로 들어가려 하느냐”고 말했다고 한다. 탄핵안을 단독 표결하면 2월 임시국회 파행이 불가피하고 정쟁이 가열되면서 지지율 회복세도 꺾일 수 있다는 우려였다. 한 참석 의원은 “김 부대표가 지도부 의견을 대표한 셈이지만 초선들 중심의 강경론은 통제 불능이었다”고 전했다.
민주당 내 법관 탄핵 소추 움직임은 진보 성향 법관 모임인 국제인권법연구회 출신 이탄희·이수진(동작을) 의원과 박주민·김용민 의원 등 민변 출신 소장파가 주도해 왔다. 이탄희 의원은 지난 22일 기자회견에서 “법원이 1심 판결을 통해 반헌법 행위자로 공인한 판사들”이라며 임성근·이동근 판사를 탄핵 대상으로 지목했다. 이어 지난 27일 의총에서 “탄핵 발의 후 72시간 뒤면 무조건 표결해야 돼 사흘이면 끝난다”며 속전속결론을 펴자 28일엔 김용민 의원도 강경론에 가세했다.
의총에선 “탄핵 대상인 임 부장판사 임기가 다음달 28일로 종료되는 만큼 헌법재판소에 가도 각하될 것”이란 현실론과 “탄핵안을 단독 처리하면 또 ‘입법 독주’ 소리를 들을 것”이란 우려가 동시에 제기됐다. 하지만 이런 목소리는 차기 당권 주자인 송영길·홍영표 의원이 나서면서 쑥 들어갔다고 한다.
송 의원은 “법관 탄핵은 헌법이 국회에 부여한 의무”라며 “이걸 안 하면 직무유기”라고 주장했다. 홍 의원도 “고민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이걸 안 하면 지도부가 곤혹스러울 것”이란 취지로 지도부를 압박했다고 참석자들은 전했다. “기소조차 되지 않은 이 부장판사 탄핵은 결국 각하될 것”이란 우려가 반영되며 탄핵 대상이 임 부장판사 한 명으로 좁혀진 걸 빼곤 강경론이 압도한 분위기였다.
민주당은 2월 임시국회 첫 본회의가 열리는 다음달 3일 탄핵안 표결에 나설 계획이다. 하지만 파행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민주당은 임시국회 때 코로나19 손실보상제와 이익공유제와 관련한 ‘상생 연대 3법’과 ‘사회적 경제 5법’ 등 103개 법안을 처리할 계획이었다.
한 핵심 당직자는 “탄핵안만 아니었다면 선거를 앞두고 야당이 반대하기 어려운 법안들이 대부분이었는데 안타깝다”고 말했다. 전직 대통령 사면 등 연초부터 ‘통합’을 새 키워드로 내세웠던 이 대표의 대권 행보에도 빨간불이 들어올 수 있다. 이 대표 측 인사는 “통합론이 무색해질 위기”라고 우려했다.
이에 대해 임 부장판사는 이날 변호인인 윤근수 변호사를 통해 “이 사건은 항소심에서 사실 관계와 법리 공방이 치열하게 이뤄지고 있고 법률상 명확한 평가가 나오지 않은 상태”라며 민주당의 탄핵 결정을 비판했다. 그러면서 “1심 판결문에도 위헌적 행위라는 표현만 있을 뿐, 의견 제시·조언에 불과하고 재판권 행사에 영향을 미치거나 침해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무죄가 선고된 사안”이라며 “탄핵이 요청될 정도의 헌법 위반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절차적 문제도 지적했다. 윤 변호사는 “탄핵 여부를 가리려면 국회법 제130조 제1항에 규정된 대로 법사위 회부를 통한 사실 조사가 선행돼야 하지만 아직 1만여 쪽에 달하는 사건 증거와 쌍방의 주장도 검토되지 않은 상태”라고 말했다. ‘사법 농단’ 연루 의혹 항소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신광렬 부장판사도 “탄핵은 범법 행위를 저질렀을 때 수사·기소도 없이 공직을 유지하는 공직자를 파면하는 제도”라며 “무죄 판결을 받았는데 탄핵은 곤란하다”고 지적했다.
임장혁·박현주·성지원 기자 im.janghyu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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