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역·통합·환경 정책 쏟아내 '미국 제자리 찾기' 속도전
첫날 17건 행정명령 긴급 대응
"소외된 공동체 지원 위한 것"
지지율 56%, 트럼프 때보다 높아
중·러와 갈등 해결 등 과제 많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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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든 취임 후 열흘 행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취임한 지 열흘이 지났다. 그새 바이든 대통령은 ‘미국의 제자리 찾기’를 모토로 삼고 발 빠른 행보를 보였다. 코로나19 방역을 강화하고, 국제 조약에 복귀하며, 사회 통합을 위한 각종 정책을 쏟아냈다. 환경 보호와 건강보험 확대, 이민 정책 등도 손봤다. 긴급한 사안들은 의회 입법 없이도 추진할 수 있는 대통령 행정명령으로 곧장 지시를 내렸다. 열흘 새 유례 없는 ‘속도전’에 나선 모양새다.
여론은 호의적이다. 지난 22~24일(이하 현지시간) 모닝컨설트 조사에서 바이든 대통령 지지율은 56%로 집계됐다. 4년 전 트럼프 전 대통령 때보다 10%포인트 높은 수치다. 취임 직후 허니문 기간임을 감안해도 성공적이라는 게 안팎의 평가다. 하지만 당장 직면하게 된 난제도 작지 않다. 코로나 사태의 조속한 극복과 경제 회복은 물론 중국·러시아와의 갈등도 쉽지 않은 과제다. 하나하나가 바이든호의 4년 향배를 좌우할 주요 변수들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취임 당일인 지난 20일 모두 17건의 서류에 서명했다. 트럼프 시대를 종식하고 바이든 행정부의 출범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가장 먼저 서명한 건 코로나 사태 극복과 인종차별 금지에 대한 행정명령이었다. 향후 100일간 마스크 착용을 강화하고 정부기관 내에서 마스크 착용을 의무화하는 게 골자였다. 또 멕시코 국경 장벽 건설을 중단하고 시리아·이란 등 이슬람 7개국 국민의 입국 금지를 해제했다.
국경 장벽 건설 중단 등 트럼프 지우기
바이든 대통령은 이어 파리기후변화협약에 복귀하고 세계보건기구(WHO) 탈퇴 절차를 중단하라고 지시하며 트럼프 시대의 상징적 구호였던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의 폐지를 공식화했다. 평소 환경 문제에 관심이 많은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캐나다산 원유를 미국으로 수송하기 위한 1800㎞ 길이의 키스톤 송유관 공사 허가도 전격 취소했다. 오바마 행정부가 환경 오염을 이유로 불허한 뒤 트럼프 전 대통령이 2017년 행정명령으로 재개한 공사였다.
이와 관련, 바이든 대통령은 “취임 첫날 취한 일련의 조치들은 무엇보다 코로나19 위기 극복과 이민 정책 개편 등을 통해 소외된 공동체를 지원하기 위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AP통신은 “바이든 대통령의 신속한 행보는 취임 초부터 강력한 정책 드라이브를 걸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며 “트럼프 지우기도 보다 과감하게 추진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취임 둘째 날 바이든 대통령은 해외로 눈을 돌렸다. 첫 상대는 러시아였다. 다음달 5일 종료되는 ‘신전략무기감축협정(New START)’ 연장을 제안했다. 2010년 체결된 이 조약은 양국의 핵탄두 수를 각각 1550기로 제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후 바이든 대통령은 26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의 전화 통화에서 5년 연장에 합의했다.
하지만 이날 푸틴과의 대화에서는 팽팽한 기싸움도 펼쳐졌다. 바이든 대통령은 푸틴의 정적인 알렉세이 나발니의 석방을 촉구하고 러시아의 크림반도 병합을 비판했고, 이에 푸틴 대통령도 미국의 일방적인 국제 조약 탈퇴를 비판하고 나서면서 향후 양국 관계가 순탄치 않을 것임을 예고했다. CNN도 “바이든 대통령이 통화 전 정부 고위관료에게 러시아 정책에 대한 브리핑까지 받았다”며 바이든 행정부 내 강경 기류를 전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코로나 극복을 위한 청사진도 이틀 연속 내놨다. 그는 “3주 내 하루 100만 명씩 백신을 접종하고 조만간 150만 명씩으로 늘려 나갈 것”이라며 “여름까지는 집단 면역의 길에 있을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했다. 미 언론들은 “‘코로나 급한 불 끄기’를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음을 보여주는 행보”라고 평가했다.
기후 변화 정책은 전임 정부와 확연히 차별화되는 분야로 꼽힌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27일 행정명령을 통해 국유지 자원 채굴 사업에 석유·가스 회사가 입찰하지 못하게 했다. 그러면서 전기차 등 환경 보호에 기여하는 산업을 적극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정치 전문 매체 폴리티코는 “바이든 정부가 대규모 경기 부양책과 기후 변화 정책을 묶어 미국 기업들의 불만을 누그러뜨리려 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바이 아메리칸’ 강화에 동맹국 우려
하지만 취임과 동시에 맞닥뜨린 과제들도 만만찮다. 당장 1조9000억 달러(약 2126조원) 규모의 경기 부양책에 공화당이 난색을 표하면서 상원 통과가 불투명해졌다. 워싱턴포스트도 지난 23일 “추가 부양책이 상원에 도착하자마자 사망 선고를 받을 처지에 놓였다”고 전했다. 지난 25일엔 ‘바이 아메리칸(미국산 제품 구매)’ 정책을 내놓자 당장 동맹국들 사이에서 “보호주의 강화로 미국 우선주의가 부활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지난 21일 코로나 확산 방지를 위해 내놓은 미국 입국자 7일 격리 의무화 조치도 질병통제예방센터(CDC) 등 주무 부처가 모든 입국자 격리의 현실적 어려움을 토로하면서 실행 가능성이 불투명해졌다. ‘트럼프 흔적 지우기’의 또 다른 상징으로 꼽히는 오바마케어 유지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28일 저소득층 건강보험 가입 확대를 위한 행정명령에 서명하며 오바마케어 강화에 시동을 걸었다. 하지만 오바마케어가 현재 보수 인사가 다수인 연방대법원의 위헌 심판대에 올라 있는 만큼 보다 가시적인 조치를 취하긴 쉽지 않은 상황이다.
미·중 갈등도 더욱 첨예해졌다. 지난 23일 미 항모 루스벨트함이 남중국해에 진입해 훈련을 실시하자 곧바로 중국 전투기들이 출동하면서 군사적 긴장이 고조됐다. 로이터 통신은 “트럼프에 이어 바이든 정부도 중국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긴 쉽지 않을 것”이라며 “바이든 정부가 대만 등을 앞세워 중국의 팽창을 억제하면서 긴장이 더욱 고조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최익재 기자 ijcho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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