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 암투병 속 재계 이끈 부친처럼 '사업보국' 대망

2021. 1. 30. 0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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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 그룹 총수 첫 상의 회장 시대 개막
18만 중소·중견사 아우르는 단체
재계 맏형 책임감, 가교 역할 기대
ESG 경영 주도, 정부와 호흡 맞아
'사회적 가치 창출' 어젠다도 실천
2018년 8월 14일 서울 종로구 SK 서린사옥에서 고 최종현 회장 20주기 추모 사진전이 열렸다. 이날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개막식에 참석해 “선대 회장의 유지를 받들어 더 나은 글로벌 SK, 사회에 공헌하는 SK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사진 SK]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와 더불어 국내 재계를 대표하는 경제 5단체 중 하나인 대한상공회의소(대한상의)가 내달 초 박용만 현 회장의 후임을 정한다. 최태원 SK그룹 회장 단독 추대가 확실시된다. 대한상의 관계자는 “박 회장과 최 회장이 따로 만나 많은 얘기를 나누면서 교감한 걸로 안다”며 “오는 1일 서울상의 회장단 회의에서 최종 결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관례상 서울상의 회장이 대한상의 회장을 맡아왔다. 박 회장은 전임자인 손경식 CJ그룹 회장이 2012년 중도 퇴임한 후 7년 8개월간 대한상의 회장직을 맡아왔다. 오는 3월 임기가 끝난다.

2000년대 이후 주요 기업 총수들은 전경련과 대한상의 등의 회장직을 꺼리는 분위기가 강했다. 정부와 재계가 긴밀했던 과거 고도성장기에는 나라와 기업의 발전에 동시에 기여할 수 있는 명예로운 자리로 여겼지만, 세계 시장에서 민간의 각개전투가 중요해지면서 ‘바쁘기만 하고 실속은 없는 자리’란 인식이 강해졌다. 특히 재계의 입장을 대변하면서 종종 정부 정책 기조와 다른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것도 부담스러운 대목이었다. 진보 성향이 강한 정권 아래에선 이익단체로 치부되곤 했다. 더구나 대한상의는 회원사 대부분이 소수 대기업인 전경련과 달리 전국 18만 중소·중견기업까지 아우르는 단체다. 회원사 간 이해관계가 더욱 복잡하기 마련이다.

SK그룹 반도체 날개 달아 순항

4대 그룹 총수로는 최초로 대한상의 회장을 맡게 되는 최 회장은 왜 ‘독이 든 성배’일 수 있는 자리에 앉으려는 걸까. 복수의 관계자 전언을 종합해보면, 최 회장의 결심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은 박용만 회장 등 주변의 강력한 권유였다. 익명을 원한 재계 고위 관계자는 “최 회장과 평소 친분이 두터운 박 회장을 비롯해 지인들이 ‘4대 그룹 총수 중 최고 연장자로서 차제에 재계 맏형 역할을 해달라’는 취지로 계속 설득했다고 들었다”고 전했다. 만 60세인 최 회장은 50대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40대인 구광모 LG그룹 회장보다 연륜에서 앞선다. 창업 1~2세대의 타계·은퇴로 세대교체가 진행 중인 재계에서 2세대와 3~4세대 경영인을 잇는 가교 역할을 할 수 있는 연배다.

최 회장으로선 사업에서 한 발 떨어져서 바라볼 여유도 생겼다. 자신이 주도한 하이닉스 인수로 SK는 반도체라는 날개를 달았다. SK하이닉스는 29일 실적 발표에서 2020년 매출 31조9004억원, 영업이익 5조126억원을 기록했다. 코로나19 사태에도 전년 대비 각각 18%, 84% 늘어난 수치다. 10조원 규모의 인텔 낸드플래시 사업부 인수도 추진하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은 기존 석유화학 사업뿐만 아니라 배터리 사업에서 순항하고 있다.

이런 여유와 더불어 최 회장 본인도 재계 리더 역할을 더 이상 고사할 수 없다는 사명감을 강하게 느꼈기에 대한상의 회장직을 수락했다는 후문이다. 특히 부친인 고(故) 최종현 선경그룹(현 SK그룹) 회장의 영향을 받아 사업보국(事業報國)에 관심이 깊던 최 회장이 재계를 대표하는 자리에서 이를 실천할 수 있는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로 봤다는 해석이 나온다. 통상 대한상의 회장은 임기가 기본 3년에다 연임으로 수년을 더 맡는 자리라는 점을 고려하면, 최 회장은 모든 임기를 마쳤을 때 70대에 가까워진다.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고 최종현 회장의 사업보국 정신은 지금도 세간에 회자된다. 외환위기가 한창이던 1997년 9월, 그는 자신이 회장을 맡은 전경련 회장단 회의를 주재했다. 폐암으로 3개월 전 수술을 받은 그는 코에 산소호흡기 줄을 매단 채 회의석상에 나타나 재계를 독려하는 투혼을 보였다. 당시 30대의 유공(현 SK이노베이션) 임원으로 경영수업을 받으면서 이 모습을 생생히 지켜봤던 최태원 회장은 부친 사후 그룹을 이끈 20여 년간 부친의 사업보국 정신을 잇고자 노력해왔다.

그는 지난해 4월 부친의 형이자 그룹 창업주인 고 최종건 회장과 부친을 추모하는 ‘메모리얼 데이’ 행사에서도 “두 분은 6·25 전쟁의 폐허를 창업으로 돌파했고 두 차례의 석유파동과 외환위기 등에도 나라를 먼저 생각하면서 극복했다”며 “선대에서 물려준 저력으로 새 역사를 쓰자”고 임직원들에게 강조했다. 그런 그가 부친처럼 재계를 대표하는 자리에서 나라에 기여하고 싶다는 대망(大望)을 품은 것도 무리는 아니며, 아버지를 존경하고 같은 길을 따라가면서도 그것을 능가하고 싶은 것은 누구나 품을 만한 욕망이라는 해석이다. 최 회장은 2년 전 다보스포럼에서 포브스코리아와 만나 “20년 동안 산전수전 다 겪어 이제는 경영을 잘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다만 SK그룹이 2017년 전경련에서 공식 탈퇴했기에 최 회장은 부친이 이끌던 전경련이 아닌 대한상의를 맡기로 한 것으로 보인다. 전경련은 이른바 국정농단 사건과 맞물려 2017년부터 급속도로 위축됐다. 이와 달리 대한상의는 이 무렵부터 대통령의 해외 순방 때 경제사절단의 주축으로 자리매김하고 정·재계 소통 허브로 떠올랐다. 현재 재계의 목소리를 아우르면서 사업보국의 뜻을 펼치기에 대한상의만한 단체가 없다.

최 회장이 연일 강조하는 ‘사회적 가치 창출’도 대한상의 회장직을 수락한 배경과 맞닿아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는 올 초 “사회와 공감하면서 각종 사회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는 새로운 기업가 정신이 필요한 시점”이라며 주요 그룹 총수로서는 이례적인 신년사를 전해 화제를 모았다.

평소 “대기업이 중소기업 도와야” 강조

대기업과 중소·중견기업의 동반성장 도모는 물론, 소상공인 보호에도 나서야 하는 대한상의 회장직은 그런 측면에서 최 회장이 더욱 도전해볼 만한 자리일 수 있다. 과거 SK그룹의 중국 진출을 계기로 최 회장과 친분을 쌓은 쑨즈창 전 SK차이나(2010년 설립된 중국 내 SK그룹 지주사) 대표는 “최 회장은 오래 전부터 임원들에게 ‘한국 중소기업은 해외 진출에 어려움을 많이 겪고 있어 대기업인 우리가 도와야 한다’고 입버릇처럼 강조했다”고 전했다.

대한상의 회장으로서 최 회장 앞에 놓인 과제는 어떤 비전을 제시하고 실행에 옮기느냐다. 김연학 서강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초빙교수는 “최 회장은 최근 정·재계의 화두인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경영도 주도하고 있어 대한상의에서 정부와 호흡을 잘 맞출 수 있을 것”이라며 “영향력이 큰 4대 그룹 총수인 만큼 기여하는 바도 클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기존의 대기업 총수 관점에서 친 대기업 일변도의 목소리만 낸다면 소상공인 등의 지지를 못 받는 반쪽짜리 단체 회장으로 전락할 수도 있다. 사회적 가치 창출을 그룹의 어젠다로 내세운 최 회장이 대한상의에서 이를 전체 회원사와 공유하고, 세부 방안을 함께 모색해보는 식으로 차별화하면서 폭넓은 소통에 힘써야 한다는 지적이다.

■ SK, 올해 첫 ‘SOVAC’ 행사서 플라스틱과 공존 방법 모색

「 SK그룹은 최태원 회장의 제안으로 2019년 출범한 사회적 가치 플랫폼 ‘소셜밸류커넥트(SOVAC)’ 관련 행사를 올해 매월 한 번씩 유튜브 등 비대면 채널로 열기로 했다. 올해 첫 행사는 ‘유 퀴즈 온 더 플라스틱, 지속가능한 플라스틱 생태계를 위해’라는 주제로 27일 오전 10~11시 유튜브 등에서 방송됐다.

이날 행사는 프리랜서 신아영 아나운서와 홍수열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장이 환경 전문가와 기업인을 초대해 플라스틱 과다 사용 문제의 해결책을 모색하는 내용으로 진행됐다. 하지원 에코맘코리아 대표가 폐플라스틱 증가에 따른 환경오염의 심각성을, 유수연 테코플러스 대표와 서강희 플리츠마마 이사가 지속가능한 플라스틱 사용을 위한 방안 등을 설명했다. SK종합화학 측은 플라스틱 사용량 저감과 재활용을 돕기 위한 기술 개발 노력을 소개했다. SOVAC 사무국 관계자는 “최근 배달 음식 주문과 택배 물량이 늘면서 국내에서 폐플라스틱이 급증하고 있다”며 “기후위기 등 환경 문제 해결을 위해 플라스틱과 공존할 방법을 찾자는 의미에서 이번 행사를 기획했다”고 말했다. 2019년 서울에서 열린 첫 SOVAC 행사엔 5000여 명의 인파가 몰려 화제를 모았다. 지난해는 코로나19 확산으로 본행사와 사전·사후 행사 모두 비대면으로 진행됐다.

이창균 기자 smi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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