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서 '라이카 어워드' 사진전 최종 후보 등 18인 작품 한자리에 냉동창고 재생공간 '공백'과 조화
미국의 유명 사진가 필립 퍼키스는 저서 『사진강의 노트』에서 이렇게 말했다. “사진은 시간의 밖에서 온 ‘아이디어’다. 사진은 눈으로 보여진 통찰이다.”
2월 17일까지 제주시의 복합문화공간 ‘공백’에서 열리는 ‘오! 라이카 2020:LOBA-애프터 더 레인보우’ 사진전은 퍼키스의 말처럼 전 세계 다큐멘터리 사진가들이 세상 곳곳에서 길어 올린 묵직한 아이디어와 메시지를 목도할 수 있는 자리다.
이번 전시에는 국제적인 사진상 ‘라이카 오스카 바르낙 어워드(이하 LOBA) 2020’ 최종 우승후보자 12명과 신인상 후보 6명의 사진이 소개됐다. LOBA는 최초의 35㎜ 필름 카메라 ‘우르-라이카(Ur-Leica)’를 개발한 오스카 바르낙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1979년 시작됐다.
LOBA의 주제는 매년 동일하다. 바로 ‘인간과 환경의 관계’다. 인간의 이기심과 욕망, 혹은 단지 생존을 위해 행해지는 수많은 일이 지구의 환경과 인간의 삶을 어떻게 바꾸어 놓는가에 대한 이야기다. 전시장에서 만난 사진작가 윤광준은 “라이카 카메라는 그들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 인간의 삶을 비추는 도구로서의 역할을 잊은 적이 없다. LOBA의 진가는 이 점에서 탁월하다. 전 세계에서 출품된, 사실보다 명징한 사진들은 우리에게 어떻게, 어디로 가고 있는지 끊임없이 되묻는다”고 말했다.
해안가의 낡은 냉동창고를 재생한 복합문화공간 공백은 제주의 척박한 자연과 인간의 오래된 역사를 그대로 보여주는 공간으로, 사진전의 주제와도 잘 맞아 떨어졌다(위 사진). 전시장을 찾은 사진작가 김용호는 “누군가와 대화를 나눌 때도 공간 분위기가 중요하듯, 사진전도 작품의 주제에 더 몰입하고 공감할 수 있는 공간 기획이 필요하다”며 “그런 점에서 시간이 과거에 멈춘 듯한 냉동창고와 ‘물멍(바다나 어항을 바라보며 멍때리기)’하기 좋은 바다가 어우러진 풍경은 인간과 자연이라는 주제에 더 깊이 몰두하게 만든다”고 했다. 무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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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뱅상 푸르니에 ‘우주 프로젝트’
어린 시절 천문대를 보고 자란 작가는 초기 우주 탐사부터 미 항공우주국(NASA)의 미래 프로젝트까지 꾸준하게 우주와 우주인 시리즈를 사진의 주제로 다뤄왔다. 점처럼 작고 미미한 존재로서의 인간은 지구라는 이 광대하고 아름다운 우주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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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마이무나 구에레지 ‘경계를 넘어 - 투바로의 여행’
1951년 이탈리아에서 출생한 작가는 가족들이 살고 있는 세네갈의 수도 다카와 제 2의 도시 투바를 오가며 이 시리즈를 찍었다. 다소 기괴한 모습으로 나무와 한 몸처럼 보이는 사진은 인간과 자연이 영적으로 연결됐음을 표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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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성남훈 ‘붉은 섬’
최종 후보자 12인에 한국인 최초로 오른 작가는 ‘제주 4·3사건’과 관련한 이미지를 통해 자신만의 ‘진혼굿’을 벌였다. 4×5 폴라로이드 흑백 사진을 찍고 이미지를 일부러 거칠게 손상시킨 후, 그것을 다시 스캔하는 과정을 통해 여전히 남아있는 기억과 상처를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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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매튜 애봇 ‘검은 여름’
2019년 6월 발생해 2020년 3월까지 계속된 호주 산불 현장을 기록했다. 이 산불로 2500만 헥타르의 지역이 화염에 휩싸였고, 수많은 인명 피해가 났으며, 생태계 역시 심각하게 파괴됐다. 타오르는 불길 속에서 방향을 잃고 뛰어가는 캥거루의 모습에 인류의 혼란이 투영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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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루카 로카텔리 ‘미래 연구’
지난해 10월 발표된 LOBA 2020 최종 우승자의 작품으로 원자력 발전소 컨트롤 룸을 찍었다. 에너지 변환과 식량 생산 등 인류의 미래와 직결된 다양한 장소를 탐구해온 작가는 기술적 진보와 자연의 공존에 대해 인류는 어떤 선택을 하는 게 옳은지 묻는다. [사진 라이카 카메라 코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