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평등 연공제의 뿌리는 벼농사 체제
벼농사 앵글로 불평등 기원 추적
코로나 방역 대처에는 효과적
연공제, 임금피크제로 개선해야
이철승 지음
문학과지성사
지난번에는 ‘세대’, 이번에는 ‘쌀’이다. 한국사회의 불평등 문제가 구조적이고, 그러니까 심각한데도 쉽게 고칠 수 없는 문제이고, 이렇게 된 데는 세대와 쌀의 작용이 있었다는 얘기다. 서강대 사회학과 이철승 교수의 시각이다. 무슨 내용일까.
세대 문제 먼저 살피자. 2019년 책 『불평등의 세대』에서 건드렸다. 이념으로 뭉친 386 민주화 세대, 그 이전의 산업화 세대가 합작해 각종 자원을 장기 독점한 결과 1990년대 출생한 지금의 청년 세대가 고통받는다는 얘기였다. 한때 기득권을 성토했던 386이 기득권화됐다는 지적이다.
쌀 문제는 당연히 이번 책 『쌀, 재난, 국가』에서다. 병렬식 제목에서 내용에 대한 단서를 얻기는 힘들다. 여기서 쌀은 정확하게 벼농사 체제를 가리킨다. 벼농사 전통이 우리 사회 구조적 불평등의 근원이라는 얘기다. 이런 시나리오다.
벼농사 전통의 문제는 이뿐이 아니다. 이웃사촌 간에 경쟁을 유발한다. 남의 농사를 내가 도와줬는데 나보다 소출이 많다면 배가 아플 수밖에 없다. ‘공동생산-개별 소유’의 함정이다. 그 결과 겉으로는 협력하면서 물밑에서 치열하게 경쟁하는 이중 구조, ‘공동체의 유대감’과 ‘비교와 질시의 문화’가 함께 싹트게 됐다는 것이다.
연공제도 마찬가지. 절대악은 아니다. 경제 성장 시절에는 위력을 발휘했다. 협업·협력의 발판이었다. 하지만 구성원들이 연공 원리에 동의하지 않을 경우 공정성 시비가 벌어질 수 있다. 50대 장년층 세대, 그러니까 386 세대가 가장 큰 덕을 보고 있다. (이런 대목에서 『쌀…』은 『불평등의…』와 만난다) 우리 사회의 세대 내 불평등, 세대 간 불평등이 모두 연공제에 응축돼 있다는 게 저자의 진단이다.
저자는 해결책이 의외로 간단하다고 본다. 연공제를 손보는 것이다. 임금 피크제를 도입하고, 임금 테이블의 기울기를 평탄화해 입사 시점 대비 30년 차의 임금 수준이 평균 3.3배인 현실을 2배 이하로 제한하자고 한다. 30년 차의 임금 상한을 가령 1억원에서 6000만원 정도로 정지시키자는 얘기다. 그렇게 해서 남는 인건비는 정규직 충원이나 신입사원 채용에 사용한다.
하지만 우리의 거대 강성 노조를 떠올리면 결코 쉽지 않아 보이는 해결책이다. 연공제 개혁을 떠올리지 못해서 시행 못 하고 있는 건 아닐 것이다.
저자가 책 말미에 소개한 에피소드가 가슴을 친다. “선생님, 저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요.” 대여섯 번 직장을 옮긴 서른 전후 비정규직 청년이 울먹이며 묻는 질문에 숙연해져 끝내 답을 할 수 없었다고 한다.
신준봉 전문기자/중앙컬처&라이프스타일랩 infor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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