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는 왜 천황의 훈장을 거부했을까

허연 2021. 1. 30. 0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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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에 겐자부로 (1935~)
"세심하게 보지 않으면 아무것도 안 보는 것과 같다"
아키히토 전 일왕의 훈장을 거부한 日대표 작가
오에 겐자부로는 훌륭한 작가다. 하지만 쉽게 다가가기는 힘들다.

일본인들 사이에서는 "누구나 오에의 책을 한 권씩 가지고 있지만 정작 읽은 사람은 드물다"는 우스개가 통한다.

중년 이후 발표된 그의 소설은 묵직하고 진지하고 폐쇄적이다. 여기에 첨단 문학이론을 소설에서 실험한 듯한 느낌까지 있어 만만히 읽을 수가 없다. 시종일관 견지하고 있는 '진보 평화주의'라는 신념도 그의 작품에 무거운 추를 달아준다.

굳게 다문 입술에 굵은 뿔테 안경, 이름까지 '큰 강의 굳센 남자'라는 뜻이니 독자에게 그는 함락되지 않는 성처럼 느껴지는 작가다. 80대 중반인 지금도 새벽 6시에 일어나 냉수를 한 모금 마시고 오후 2시까지 꼬박 8시간 동안 읽고 쓴다는 꼬장꼬장한 이 노작가를 보다 쉽게 만날 수 있는 길이 있기는 하다.

그의 대담집을 읽는 것이다. 인터뷰집을 읽으면 그의 문학이 왜 그처럼 높은 좌표를 설정했는지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기 때문에 오에에 대한 두려움을 없앨 수 있다.

'오에 겐자부로, 작가 자신을 말하다'라는 인터뷰집에는 이런 고백이 나온다. "세심히 보지 않으면 아무것도 보지 않는 것과 같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지요. 그 후로 '오에와 같이 길을 가다 보면 자꾸 멈춰서 뭔가를 물끄러미 바라보거나 어떤 소리에 집중하거든. 참 별난 녀석이야'라는 소리를 듣게 되었습니다."

그렇다. 그의 소설에는 고배율 현미경 같은 시선이 존재한다. 차곡차곡 쌓아 올린 정교한 벽돌집 같다는 생각도 든다.

이것이 오에의 작가 윤리다. 같은 책에는 이런 구절도 있다.

"소설가로서 살기 위한 조건은 두 가지가 있다고 봅니다. 하나는 자신의 문체를 만드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드는 재능이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오에에게 소설가로서 첫 번째 덕목은 고유성이다. 자신만의 성채를 짓는 자. 그것이 작가다. 그의 소설이 고고하고 외로울 수밖에 없는 또 하나의 이유가 있다. 그 단서를 찾아봤다.

"고향을 잃은 망명자는 언제까지나 안주하지 않고 중심을 비판하는 힘을 갖게 됩니다. 나는 망명자로서 중심을 비판하는 장소에서 일을 하고 싶다는 태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오에는 진공상태를 선택한 작가다. 그의 소설에서는 일본적인 냄새나 아시아적 지역성이 별로 안 느껴진다. 오에는 1994년 노벨 문학상을 받았을 때 아키히토 일왕이 국가 차원에서 직접 문화훈장과 공로상을 수여하려고 하자 이를 거부했다. 그에게 일본은 더 이상 문학적 중심이 아니었던 것이다. 오에에게 가는 길은 하나다. 불편을 감수하고 독자 스스로 사다리 하나씩을 만들어 그가 설정한 좌표에 올라가는 수밖에 없다.

작가가 작품 속에서 독자에게 반드시 친절할 필요는 없다. 작가는 여행 가이드도 아니고 해설가도 아니며 재담꾼도 아니다. 작가는 하나의 성이어야 한다.

[허연 문화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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