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석주의인문정원] 나쁜 날씨란 없다

남상훈 2021. 1. 29. 2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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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무쌍한 날씨는 우리 인생에 대한 은유로 빛난다.

땅을 덮은 늦가을 아침의 서리와 노인 천 명이 일제히 지팡이로 땅을 두드리듯 우박이 쏟아지던 여름 한낮의 날씨는 우리를 스산함과 불안에 감싸이게 한다.

소설가 마르셀 프루스트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날씨의 변화는 세상과 우리 자신을 충분히 새롭게 재창조한다"고 쓴 것도 그런 이유에서일 테다.

우리는 날씨와 함께 변화하며 인생의 새로운 국면들을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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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의 변화, 사람들 새롭게 빚어
인생사도 예측 못할 경험 축적된 것

변화무쌍한 날씨는 우리 인생에 대한 은유로 빛난다. 땅을 덮은 늦가을 아침의 서리와 노인 천 명이 일제히 지팡이로 땅을 두드리듯 우박이 쏟아지던 여름 한낮의 날씨는 우리를 스산함과 불안에 감싸이게 한다. 냉기를 품은 대기에서 만들어진 눈과 진눈깨비가 휘몰아치는 겨울의 날씨는 우리를 침울하게 한다. 안개는 세상을 비밀의 베일로 가리고, 바람은 맹수처럼 포효하며, 천둥과 번개는 신의 분노를 전달하고, 폭풍은 파도를 채찍질하고 바다를 뒤집어놓는다.

겨울엔 한파와 눈과 얼음이 잦다. 짐승같이 내달리는 추위는 잿빛 대지의 모든 것을 정지시키고 속박한다. 이 감옥에서 초목을 풀어주는 것은 남풍과 온화한 날씨다. 언 강이 녹고 언 땅이 풀린다. 땅속 씨앗들은 지상으로 초록 싹을 밀어올리고, 월동한 나뭇가지들은 꽃눈을 터뜨린다. 박새나 곤줄박이 같은 텃새의 움직임이 활발해진다. 자주 깃털을 활짝 펼치고 기지개를 켠다. 찬란하게 빛나는 봄날의 날씨가 우리를 낙관적인 관조에 젖게 했다면, 험악한 겨울의 날씨는 인생의 고난과 시련에 대한 불길한 암시를 던진다.
장석주 시인
나를 만든 것은 어머니, 저녁들, 음악과 시, 다양한 날씨들이다. 날씨는 태양과 달의 배열과 변화를 반영하고, 대륙과 해양의 기류가 결합해 생긴 복잡한 기상 현상이다. 오, 날씨여, 삶이 그렇듯이 너는 변화무쌍하구나! 사는 동안 좋은 날씨와 나쁜 날씨들이 있었지만 나는 용케도 살아남았다. 당신도 알다시피, 날씨는 윤곽과 형태가 없다. 구름의 윤곽은 불분명하고, 안개는 형체가 없으며, 바람은 나뭇가지를 꺾지만 보이지 않는다. 날씨들은 예측할 수 없는 변화 속에서 움직일 뿐. 그래서 사람들은 날씨에 빗대어 우리 생각과 기분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날씨는 세계와 사람들을 새롭게 빚는다. 날씨는 사람의 감각과 감정을 자극하고, 마음에 그 무늬를 새긴다. 날씨들은 우리의 기분과 감정을 빚는 생태적 요인이다. 우리의 기분과 운명은 하루하루의 날씨들이 모여서 만든 기상학과의 상호연관 속에서 빚어진다. 사람은 날씨의 영향에 따라 영혼의 지형도가 바뀌는 존재라는 뜻이다. 그런 까닭에 날씨의 영향을 벗어나서 제 삶을 꾸릴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소설가 마르셀 프루스트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날씨의 변화는 세상과 우리 자신을 충분히 새롭게 재창조한다”고 쓴 것도 그런 이유에서일 테다.

나쁜 날씨란 없다. 다른 날씨가 있을 뿐이다. 우리는 날마다 변하는 날씨를 겪으며 산다. 날씨는 사랑의 매개이고, 추억을 환기하며, 운명의 끄나풀이고, 시와 음악에 영감을 주는 뮤즈다. 날씨의 영향 아래 우리의 기분은 바뀐다. 은유로 말하자면, 우리 인생은 무수한 날씨들로 엮어서 짠 거대한 옷감이다. 시인 필립 라킨은 “하루하루가 없다면 우린 어디서 살겠니?”라고 썼다. 우리는 날씨와 함께 변화하며 인생의 새로운 국면들을 맞는다. 날씨들은 우리가 개인적으로 겪은 슬픔과 모욕과 상처를 환기시킨다. 우리의 경험들을 일구는 하루하루는 우리의 것이기도 하지만 날씨의 몫이기도 할 것이다.

오늘날 날씨 변화가 심상치 않다. 지구촌 곳곳에서 인간의 예측 범위를 넘는 태풍, 홍수, 가뭄, 폭설이 잦아졌다. 극지방의 빙산이 녹고, 해수 온도가 해마다 올라간다. 대기 중 탄소량이 늘고, 지구 온난화로 생긴 기후 변화라고 한다. 인간이 지구 자원을 낭비하고 자연을 훼손한 결과다. 누군가는 이 기후 재난을 지구생물계의 대멸종 신호라고 경고한다. 돌이켜보면, 그동안 지구의 날씨는 평온했다. 우리는 좋은 날씨의 혜택을 고루 누렸다. 내가 열 살 때도 그랬고, 스무 살 때도 그랬고, 서른 살 때도 그랬다. 그런데 우리가 날씨의 생태 조건을 망가뜨렸다. 큰일이다!

장석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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