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월의쉼표] 문 앞에 놓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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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통을 여니 바닥이 보였다.
쌀과 함께 이것저것 주문했다.
'문 앞에 놓고 갑니다.' 택배 기사의 문자 메시지를 받은 것은 정각 6시였다.
혹시나 했지만 그 집 앞에 내가 주문한 식료품이 있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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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앞에 놓고 갑니다.’ 택배 기사의 문자 메시지를 받은 것은 정각 6시였다. 과연 현관 앞에 마트의 로고가 새겨진 커다란 종이봉투가 놓여 있었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봉투 안에 주문하지도 않은 콩나물이 있었다. 게다가 정작 쌀 포대는 없었다. 봉투에 부착된 배송지를 확인했다. 거기 적힌 것은 이웃 아파트의 주소였다.
바로 택배 기사에게 전화했다. 수차례 전화했지만 연결이 되지 않았다. 메시지로 오배송 사실을 알렸지만 답이 없었다. 할 수 없이 마트 고객센터로 전화했다. 근무 시간이 종료되었으니 익일 아침에 다시 전화해 달라는 멘트가 흘러나왔다. 이러나저러나 저녁밥 짓기는 그른 셈이었다. 나는 일단 잘못 배달된 식료품을 집에 들여놓았다. 봉투째 냉장고에 넣다가 달리 보관해야 할 품목이 있나 하고 주문서를 일별했다. 콩나물, 두부, 계란, 시금치, 고등어…… 누군가의 저녁밥상이 눈앞에 그려졌다. 이것을 주문한 이는 지금 얼마나 당혹스러울까 싶었다. 그리고 주문서에서 이유식용 다짐육과 베이비 요구르트를 보는 순간 나는 결국 점퍼를 입었다.
이웃 아파트는 우리 집에서 도보로 오 분 거리에 있었다. 나는 오 분 만에 식료품 봉투를 애초의 배송지에 정확히 배달했다. 혹시나 했지만 그 집 앞에 내가 주문한 식료품이 있지는 않았다. 사정을 설명하려고 초인종을 눌렀다. 집 안에서는 아무 반응이 없었다. 다시 걸어서 오 분 만에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현관 앞에 예의 그 마트의 로고가 새겨진 종이봉투가 놓여 있었다. 봉투 위로 삐져나온 쌀 포대 모서리가 보였다.
누가 가져다 놓았을까. 혹 이웃 아파트 주민도 나처럼 누군가의 저녁밥상이 걱정되어서 오 분 거리를 걸어 손수 배달한 것일까. 그러느라 집을 비웠을 때 공교롭게도 내가 그 집을 방문했던 것일까. 그렇다면 우리는 서로를 스쳐 지나갔을까. 전래동화 ‘의좋은 형제’가 떠오르는 추리였다. 그 추리가 맞는지는 내일 오전에 고객센터를 통해 알아볼 참이다. 멀리 돌아오긴 했지만 어쨌든 당일 배송은 당일 배송이었다.
김미월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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