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 없이 찾아오는 지주막하출혈 [의술인술]

김정은 교수 서울대 의대 신경외과 입력 2021. 1. 29. 2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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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세계적으로 고통받고 있는 코로나19(COVID-19) 대유행 상황에서 세계보건기구(WHO)의 리더십에 대해 논란이 많은 지금, 그가 있었더라면 세계가 이렇게까지 되었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 분이 있다. 강대국의 뒷받침 없이 국제 보건을 위한 헌신과 노력만으로 한국인 최초로 WHO 제6대 사무총장직을 역임한 이종욱 박사가 그분이다.

사스(SARS)가 기승을 부리던 2006년, 그는 사무총장으로 192개 회원국 총회를 준비하고 있었다. 아침부터 심한 두통이 계속되었으나 진통제로 달래던 그는 오찬 회의 후 구토를 하며 의식을 잃고 쓰러져 제네바의 한 병원에서 응급수술을 받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한창 일할 나이인 61세에 별세했다.

이종욱 사무총장의 질환은 지주막하출혈이었다. 뇌혈관의 일부가 부풀어 올라 ‘뇌혈관 꽈리’라고도 불리는 뇌동맥류의 파열에 의해 발생하는 지주막하출혈은 뇌출혈의 여러 종류 중에서도 악명이 높고 요즈음과 같은 겨울철 및 환절기에 눈에 띄게 늘어나는 뇌혈관질환 중 하나이다. 일단 발생하면 치료와 재활이 어렵지만 예방 및 빠른 시간 내 적절한 치료를 통해 완치가 가능하고 일상생활로 복귀할 수 있다.

지주막하출혈의 위험인자는 일반적인 뇌혈관질환의 위험인자와 크게 다르지 않다. 고혈압, 당뇨병, 고지혈증, 음주, 흡연 등이 대표적이다. 대부분의 위험인자들은 생활습관의 변화로 충분히 예방 가능한 것이다. 이 중에서 특히 강조하고 싶은 위험인자는 고혈압이다. 다른 인자들에 비해 혈압약으로 잘 관리되고 있다 하더라도, 신체상태에 따라 변동이 크기 때문이다.

고혈압은 체중을 줄이고 짜게 먹지 않으며 금연 및 금주를 해야 하는 일반적인 생활개선에도 불구하고 겨울철 실외활동이나 스트레스 등의 영향을 많이 받을 수 있다. 따라서 고위험군에 있는 환자들은 한밤중에 화장실에 갈 때, 추운 탈의실에서 옷을 갈아입을 때와 같은 갑작스러운 체온 변화를 만들 수 있는 경우에 특히 주의가 필요하다. 겨울에 등산 등 야외활동을 위해 외출을 할 때, 목욕을 위해 갑자기 뜨거운 물에 들어갈 때도 조심해야 한다. 또한 스트레스와 더불어 감정의 희로애락이 급격하게 변하는 것 역시 주의해야 할 사항이다. 거리 두기로 ‘코로나 우울’ 얘기가 나올 만큼 정서적으로 불안정한 시기에는 ‘일소일소 일노일로(一笑一少 一怒一老)’의 느긋한 마음가짐이 좋다.

지주막하출혈에는 전조 증상이 있는 경우가 많다. 대표적인 증상은 두통이다. 두통은 비특이적인 경우와 대비하여 첫째 갑작스러운(sudden), 둘째 이전에는 겪어보지 못한(new onset), 셋째 진통제로도 완화되지 않는 매우 심한(severe) 세 가지 특징이 있을 때 ‘지주막하출혈 또는 출혈에 앞선 경고성 두통’을 의심해야 한다. 이 경우 ‘진통제를 복용하거나 좀 쉬면 나아지겠지…’ 할 것이 아니라 응급실을 방문하여 지주막하출혈의 유무를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 지주막하출혈은 후유증이 심각한 질환이며 빠른 치료가 매우 중요하다. 또한 지주막하출혈의 원인이 되는 뇌동맥류의 특정 위치에 따라 물체가 두 개로 보이는 복시, 한쪽 눈꺼풀을 들어올릴 수 없는 안검하수 등도 기억해야 할 전조증상이다.

마지막으로 강조할 점은 지주막하출혈의 원인이 되는 뇌동맥류의 조기발견이다. 동양인에게는 뇌동맥류의 유병률이 높은 경향이 있어 성인은 40세 이상이 되었을 때, 건강검진 시 자기공명영상혈관조영검사(MRA)를 한 번 해볼 것을 권한다.

뇌동맥류의 크기, 위치, 모양, 환자의 나이에 따라 지주막하출혈의 발생 위험도를 평가하여 적절한 치료를 통하여 출혈을 미리 예방할 수 있다.

김정은 교수 서울대 의대 신경외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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