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 때리는 언니들? 가정폭력 그 불편한 진실에 맞선 '세자매' [김나라의 별나라]
[마이데일리 = 김나라 기자] 그저 골 때리는 '세 자매'인 줄 알았는데, 지금 이 시대에 꼭 필요한 메시지를 갖췄다. 가정폭력을 단순한 영화적 소재로 소비하지 않고 문제의식을 깊숙이 들추며 가족중심적인 한국 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세 자매'(감독 이승원)는 겉으로는 전혀 문제없어 보이는 가식덩어리, 소심덩어리, 골칫덩어리인 세 자매가 말할 수 없었던 기억의 매듭을 풀며 폭발하는 내용을 그린 작품이다.
신선한 충격을 선사하는 '세 자매'다. 제목이 풍기는 이미지로 인해 유쾌한 자매애라든가 단란한 가족의 아웅다웅 이야기로 흘러갈 것이라는 예측은 보기 좋게 빗나간다. '세 자매'는 전형적인 가족 영화에서 강조하는 혈육으로 이어진 끈끈한 정, 무조건적인 사랑에 대해 말하는 작품이 아니다. 가족이라고 해서 마냥 따뜻한 순간만 있었던 건 아니니까.
그릇된 가족애마저 정당화되는 가족의 울타리 속에서 대수롭지 않게 짓밟혔던 영혼을 어루만지며 '세 자매'만의 색깔을 갖는다. 기존의 가족 영화와 결을 달리하고, 보다 현실에 발 닿아있다.
가정폭력, 아동학대 등을 두고 뉴스에나 나올 법한 무시무시한 사건이라고 하지만, 사실은 우리 가정에서, 혹은 나의 옆집에서 벌어지는 비극임에도 무심하게 지나쳤던 현실의 잔혹함을 몸소 체감하게 만든다. 그만큼 '가족'이라면 신체적, 정신적 폭력에 대한 감수성이 떨어진 상태로 익숙한 채 살아온 모습들을 꼬집는다. "아빠가 술 마시고 언니랑 동생을 때린다. 아저씨가 대신 경찰에 신고 좀 해주세요"라는 어린 미연의 말에 "큰일 날 소리 한다"라며 되려 미연을 꾸짖는 이웃 주민에게 선뜻 손가락질할 수 없는 이유다. 이제서야 인식이 변화하고 있지만, "애들은 맞으면서 크는 거다"라고 가정폭력에 관대하게 반응했던 사회 분위기를 지적하며 대단히 나쁜 사람만이 아닌, 방관자에서 우리 모두가 자유롭지 못하다는 걸 새기게 한다.
특히나 '세 자매'는 가학적인 폭력 장면으로 관객들의 충격을 자극하는 대신, 엄마가 된 '세 자매'에게로 시선을 돌려 보편성을 띠고 가슴을 후벼파는 공감을 이끈다. 희숙(김선영)은 매일 괜찮다, 미안하다는 말을 달고 살고 둘째 미연(문소리)은 티끌 하나 없는 인생처럼 보이지만 이중적인 민낯을 지니고 있고 미옥(장윤주)은 365일 취해있다. 서로 너무 다른 이들이지만, 그 속을 비집고 들여다보면 어린 날의 '세 자매'가 늘 마음 한켠에 자리 잡고 있는 것 만큼은 똑같다.
아빠에게 손찌검을 당한 언니 희숙의 상처는 아물지 못하고 세 배 그 이상으로 불어나 '세 자매'를 따라다니지만 아픔을 속으로 삼킬 뿐이다. "피를 보면 잠깐은 마음이 편해지더라고요"라며 상처를 상처로 덮는 희숙의 자해 행위로 사회 분위기와 달리 가정폭력이 얼마나 한 인간을 처참히 망가뜨리는지 보여준다.
하지만 가정폭력을 포함한 가정 내 문제는 가족 관계의 특수성 때문에 가해자도 피해자도 (엄연히 있지만) 없다. 한순간의 실수라 포장해버리면 그만이고 세월 흐름에 따라 지나간 일로 치부해버리면 되니까. 나 하나만 참고 살면 모두가 편하니까. 게다가 불편한 진실을 입 밖으로 꺼내는 순간, 가해자가 되는 건 '나'이니까 희숙처럼 상처가 곪아 속이 문드러지도록 내버려 두는 게 현주소다.
이렇게 가족 문제라면 쉬쉬했던 지독한 현실을 끄집어내며 영화는 우리를 불편하게 만들지만, "목사님한테 말고 우리한테 사과하세요!"라고 내 부모에게 진정한 사과를 요구하는 '세 자매'의 외침으로 또 달래준다. 지금도 속앓이 하고 있을, 입안에서 맴돌기만 했던 그 말을 우리를 대신해 '세 자매'가 시원하게 일러주니, 어쩐지 묵은 체증이 내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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