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 남은 빈칸마저 보물로 채우려는 수집가..끝없는 욕망의 섬뜩한 결말 [그림 책]
[경향신문]
빈칸
홍지혜 글·그림
고래뱃속 | 52쪽 | 1만5000원
욕망은 결핍에서 태어난다. 소유한 것이 얼마나 많은지, 소유로부터 얼마나 큰 만족을 얻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온갖 진귀한 보물들로 가득한 자신만의 박물관을 갖고서도 수집가가 여전히 욕망에 들끓는 것 역시 빈칸 때문이다. 박물관의 빈칸을 채우는 일이 꼭 마음의 결핍을 해소하는 제의라도 되는 듯, 그는 광적으로 수집에 매달린다. 이제 단 하나 남은 빈칸. 유일해 보이는 이 결핍을 채우기 위해 “정말정말 엄청난 물건”을 찾아나선 주인공의 얼굴은 맹목적인 욕망으로 번뜩인다.
<빈칸>은 기묘하고 괴기스러운 삽화와 이야기를 통해 우리가 발붙인 현실의 비틀린 모양을 드러내는 그림책이다. “그 물건 얘기 들었어?” “영혼을 홀리는 보물 말이야?” “아무나 가질 수 있으면 그게 보물인가?” 언론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을 매체 삼아 끊임없이 쑥덕이는 사람들의 목소리는 주인공 마음속에 확신을 심어준다. 소문들에 담긴 정보라고는 ‘그 보물’이 누구도 쉽게 범접할 수 없는 희소한 물건이라는 것뿐이지만, 마치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듯 말이다. “그 정도라면 내 박물관에 어울릴 수도 있겠어.”
주인공은 소문 속 ‘보물’을 가졌다는 다른 수집가를 찾아간다. 트렁크 가득 돈을 담아온 그는 “값은 충분히 드리리다”라며 협상을 시도하지만 쉽지 않다. 두 수집가에게 ‘보물’의 가치는 돈이 아닌 누구도 갖지 못했다는 희소성을 통해 매겨지기 때문이다. 조바심이 난 주인공은 결국 돈과 함께 회사와 집, 가족들도 모두 넘기겠다고 소리친다. 그제서야 보물을 주겠다는 약속이 돌아온다. 이 정도면 괜찮은 협상이었다고 안도하는 찰나, 주인공은 곧 다른 수집가의 마지막 빈칸을 채울 물건이 된다. 결핍을 채우기 위해 시작된 그의 여정은, 자신의 몸과 영혼을 완전히 잃어버리는 결말로 끝맺고 만다.
괴상한 이야기다. 하지만 모두가 갖고 싶어 하는 어떤 물건 때문에 욕망에 달뜬 밤을 보내봤던 이들에게는 현실과 아주 동떨어진 이야기로 읽히지 않을 것이다. 자신의 결핍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들여다보기도 전에, 끝내 채울 수 없는 허망한 빈칸에 집착해 온 이들의 황폐한 마음이 담긴 책이다.
믹서기에 든 사람의 머리, 주전자에서 솟아난 나무, 오토바이가 된 고양이 등 온통 기괴한 수집품 속에서 멀뚱히 박제된 주인공의 모습이 쉽게 잊히지 않는 섬뜩한 경고로 다가온다.
김지혜 기자 kim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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