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 자존심 '이재난고' 온전히 고향 품으로 돌아올까

전북CBS 최명국 기자 2021. 1. 29. 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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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실학자 이재 황윤석(1729~1791)이 평생에 걸쳐 보고 들은 모든 지식을 기록한 백과전서 '이재난고' 일부가 황윤석의 고향인 전북 고창군으로 돌아왔다.

고창군 관계자는 "황병관 씨는 현재 투병 중으로 의식이 또렷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며 "부인이 이재난고 일부를 전북대박물관에 맡겼고, 이를 다시 고창으로 가져온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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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전라도 대표 실학자 황윤석, 일기 형태 백과전서
후손간 소유권 다툼, 고창→전주→일부 다시 고창
고창군 "보물 지정 추진, 전부 환수 방안 모색"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111호 이재난고. 전라북도 제공
조선 후기 실학자 이재 황윤석(1729~1791)이 평생에 걸쳐 보고 들은 모든 지식을 기록한 백과전서 '이재난고' 일부가 황윤석의 고향인 전북 고창군으로 돌아왔다.

이재난고(頤齋亂藁)는 황윤석이 10세 때부터 죽기 이틀 전까지 일기형식으로 저술한 서책으로 글자 수로는 대략 400만 자, 묶인 책으로 50권에 달한다.

시문·언어·산학·도학·의학 등 인류생활에 이용되는 온갖 다양한 정보들이 망라돼 조선 후기 사회상을 그대로 비춰주는 백과사전으로 불린다.

지난 1984년 전라북도 유형문화제 제111호 지정된 이재난고 원본은 지난 2016년 황윤석의 직계 후손인 황병관 씨가 전주 자택으로 가져가면서 고창을 벗어났다.

이후 황윤석의 종손이며 황병관 씨의 형인 황병무 씨가 이재난고 소유권을 주장하면서 형제간의 법적 분쟁이 벌어졌다.

이재난고 소유권 다툼은 지난 8월, 대법원이 형인 황병무 씨의 손을 들어주며 마무리됐다.

이후 같은 해 11월 이재난고 50권 중 3권이 전북대학교박물관을 거쳐 지난 25일 고창군 고인돌박물관으로 옮겨졌다.

이재난고 소유권을 가진 황병무 씨가 이재난고를 고창군에 기탁해서다.

하지만 나머지 47권의 이재난고는 여전히 황병관 씨가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재난고의 국가지정문화재(보물) 지정을 추진하는 고창군은 황병무 씨와 협의해 이재난고 전부를 고창군으로 가져온다는 계획이다.

고창군은 조만간 특별전시 형태로 이재난고를 공개할 방침이다.

고창군 관계자는 "황병관 씨는 현재 투병 중으로 의식이 또렷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며 "부인이 이재난고 일부를 전북대박물관에 맡겼고, 이를 다시 고창으로 가져온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재난고는 일기 형태의 기록물로서 난중일기 못지않은 가치를 지닌다"며 "이재난고 전부를 고창으로 이관하는 방안을 모색하겠다"고 말했다.

전북 고창 출신의 이재 황윤석은 18세기 후반 조선에서 신경준(1712~1781)과 함께 전라도를 대표하는 학자로 거론되던 인물이다.

일찍이 영조 임금은 황윤석에 대해 "황윤석만은 나를 만나지 못했으니 다른 날에 그 누군가 쓰는 자 있을 것"이라며 황윤석이 과거에 합격하지 못한 것을 애석해했다는 일화가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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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CBS 최명국 기자] psy140722@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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