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미군단 vs 공매도 '전쟁'.. 게임스톱, 개장 직후 또 113% 폭등
“주식을 사들이자! 시장의 악당인 공매도 세력을 박살 내자!”
미국 온라인 커뮤니티에 지난 29일 올라온 글이다. 인터넷으로 집결한 ‘로빈후드 개미’의 집단행동에 미 증시가 요동치고 있다. 개인투자자들이 쓰는 주식 거래 앱 ‘로빈후드’의 이름을 따서 로빈후드 개미라 불리는 미 개인 투자자들은 월가(街)의 공매도 세력과 전쟁을 선포하고 조직적 매수로 주가를 끌어올리고 있다. 이들이 ‘좌표’로 찍은 종목은 하루 몇 배씩으로도 올라간다. 공매도는 주가가 하락해야 돈을 버는 투자법이다. 처음엔 일회성 장난처럼 여겨진 ‘개미와 공매도의 전쟁’이 과열되자 논란은 정치권으로도 확산하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이들의 정서는 금융 위기 직후 대형 금융회사에 대한 반감으로 번졌던 ‘월가를 점령하라’ 시위를 연상케 한다”고 전했다.
◇미 개미 “공매도 세력 박살 내자”
미국 개미와 공매도 세력의 ‘최대 격전지’는 ‘게임스톱’이라는 게임 소매 업체 주식이다. 쇼핑몰 매장을 주로 운영하는 이 회사는 온라인 쇼핑이 대세가 되고 나서 고전해 왔다. 지난 3년여 동안 주가가 20달러를 넘은 적 없는 이 힘 빠진 주식은 성공한 애완동물 온라인 쇼핑몰 창업자 출신 라이언 코언이 이달 초 이사로 합류하기로 했다는 발표가 나오자 가격이 30달러 선을 넘어서는 수준으로, 약간 상승했다. 그러자 바로 공매도 세력의 공격이 시작됐다.
유명한 공매도 투자자인 앤드루 레프트(시트론리서치 대표)도 게임스톱을 먹잇감으로 겨냥했다. 레프트가 지난 19일 트위터에 “게임스톱 주식을 공매도했다. 곧 폭락할 테니까”란 내용의 동영상을 올리자, 그즈음부터 로빈후드 개미들은 집결하기 시작했다. 한국의 디시인사이드와 비슷한 ‘레딧(Reddit)’이란 온라인 커뮤니티가 이들의 집결지였다. 개인 투자자 동호회 격인 ‘월스트리트베츠(WallStreetBets·’월가에 베팅하기'란 뜻)’란 이름의 게시판에 ‘공매도 세력에 본때를 보여주자. 게임스톱 주식을 왕창 사들이자’라는 내용의 글과 ‘짤’(재밌게 편집한 사진)이 대거 올라왔다.
공매도 세력에 시달렸던 경험이 있는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가 ‘게임스톤크(게임스톱에 ‘맹폭’을 뜻하는 스톤크를 합성한 말)!’ ‘공매도는 사기’ 같은 트위터 게시물로 이들을 더 자극했다. 인해전술(人海戰術)로 공매도에 맞선 개미들의 힘으로 게임스톱 주가는 22일부터 5일간 780% 폭등했다.
◇780% 오른 주가, 28일엔 폭락 ‘롤러코스터’
미국 개미들의 새 무기는 크게 셋이다. 간편한 온라인 거래 시스템, 정부가 연일 코로나 지원금으로 뿌려주는 현금, 그리고 코로나 록다운으로 얻은 여윳시간이다.
이런 미국의 개미들은 게임스톱으로 만족하지 않았다. 전선(戰線)을 확대했다. 최근 공매도 세력이 공격한 주식을 골라 집중 매수에 들어갔다. 지난해 부도 위기까지 몰렸던 극장 체인 AMC엔터테인먼트가 대표적이다. ‘개미 군단’의 집중 매수로 27일 하루에만 301%가 올랐다. 휴대폰 회사였다가 소프트웨어 회사로 변신한 블랙베리, 생활용품 업체 베드배스앤드비욘드 등의 주가 역시 오로지 로빈후드 개미의 힘으로 폭등했다. 블랙베리는 “우리 회사 주식이 오르는 이유를 우리는 모른다”는 보도자료까지 냈다.
1차전은 일단 개미들이 이겼다. 유명 공매도 투자자 여럿이 백기를 들고 나가떨어졌다. 문제는 이들 주가가 가격을 유지할 수 있는지다. 최근의 폭등은 기업의 가치나 전망과는 무관하고 게시판 작전만으로 달성됐기 때문이다. 백악관 젠 사키 대변인은 27일 “게임스톱 등 최근 급등한 주식을 주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아니나 다를까 28일 이들 주식은 대부분 폭락했다. 게임스톱 주가가 44%, AMC엔터테인먼트는 57% 하락했다. 주가가 오르자 주식을 파는 이들이 늘었고, 로빈후드가 “거래량이 너무 늘어 감당하기 어렵다”며 게임스톱 등 몇 개 주식을 찍어 매수량을 제한한 결과였다. 레딧에 모인 개미들은 로빈후드에 격렬히 항의하며 반격할 채비를 하고 있다.
로빈후드가 정상 거래를 재개하자 발표하자 29일 뉴욕 증시가 개장 직후 게임스톱 주식은 다시 폭등했다. 이날 오전 게임스톱 주가는 전일 대비 113% 올라 400달러 넘는 가격에 거래됐다. 전일 종가는 194달러였다.
◇‘게임스톱 대첩’ 정치 논란으로 확산
개미와 공매도가 격돌한 ‘게임스톱 대첩(大捷)’은 정치권 논란으로 번지고 있다. 그간 증시를 지배해온 헤지펀드 같은 대형 금융사들은 빈번한 공매도 등 기업 사냥에도 거의 규제를 받지 않은 반면, 개인 투자자에 대한 공포와 제약만 심하다는 공정성·형평성의 문제가 제기된 것이다.
하원 금융서비스위원회와 상원 은행위원회는 각각 게임스톱 사태와 관련, 긴급 청문회를 열기로 했다. 의원들은 대부분이 개미 편이다. 하원 금융위를 이끄는 민주당 맥신 워터스 의원은 “공매도 같은 비윤리적 행위로 시장 변동성을 초래한 헤지펀드들에 대응할 것”이라고 했다. 상원 은행위원장인 셰러드 브라운 의원은 “미 증권거래위원회(SEC)와 의회가 월가만이 아닌 모든 사람을 위한 경제를 작동시켜야 한다”고 했다.
‘월가 저승사자’로 불리는 대표적 규제론자 엘리자베스 워런 민주당 상원의원은 게임스톱 주가가 급등한 27일 “그간 월가 금융권력들이 개미들을 유린한 죄로 보복당한 것”이라고 한 데 이어, 28일 “헤지펀드와 사모펀드, 부자 투자자들은 그동안 증시를 개인 카지노처럼 갖고 놀면서 다른 이들만 비용을 치르게 했다”고 연일 맹비난했다. 이날 게임스톱 매수 제한에 뉴욕증권거래소 앞에는 투자자 수십 명이 모여 “부끄러운 줄 알라” “부자들을 먹어버리자”며 항의 시위를 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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