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당 진짜 위기는 '이것'

장슬기 기자 2021. 1. 29. 1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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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정의당 1] 진보정당다웠던 '심블리' 정의당…조국사태 이후, 메시지 타이밍 놓치며 정치적 득실 따지는 모습 반복

[미디어오늘 장슬기 기자]

정의당이 위기다.

표면적으로는 김종철 전 정의당 대표의 성추행 때문이다. 그래도 진보매체들이 이번 사태에서 정의당의 대처가 거대양당의 대응보다 좋았다고 평가하는 분위기라 '진짜 위기'를 말하는 곳은 없다. 사실 정의당의 총선결과는 그 자체로 위기였고, 민주당이 거대 1당이 되기 전에도 정의당은 위기였다. 당의 얼굴이 계속 바뀌지만 비슷한 실책을 반복하는 걸 보면 문화와 체질의 문제로 볼 수 있다.

미디어오늘은 두번에 걸쳐 지난 2017년 대선 이후 정의당의 주요 의사결정에서 왜 이들이 대중정서와 동떨어졌는지 돌아볼 예정이다. 또한 4월 재보궐선거를 앞두고 '정의당의 브레인들'의 논의내용을 들여다보면서 현실에 대한 진단과 해법이 적절했는지도 살펴보려고 한다.

잠시 지난 대선으로 거슬러 가보자.

심상정 후보의 키워드 '당당함'이었다. 진보정당 정치인이라면 불리하더라도 가치와 소신을 가지고 약자들 곁에 있을 필요가 있는데 당시 심상정은 그랬다. “정의당원들이 문재인 후보를 지지한다”는 '민주당 2중대'류의 불편한 질문에도 심상정은 “그만큼 정의당이 건강하다는 증거”라며 여유있는 자세를 보였다. 대선 당일 출구조사를 지켜보며 문재인 대통령을 만든 이들은 '지못미'의 심정으로 하룻밤 새 3억원 가까운 후원금을 정의당에 보냈다.

▲ 심상정 전 정의당 대표. 사진=정의당

정치는 결과로 말한다지만 질 때 잘 져야 다음 결과가 좋다. 그런 의미에서 지난 대선은 정의당에게 실패한 결과라기 보단 감동을 주는 과정이었다. '심블리'라는 별명은 당시 대중의 호감을 보여준다. 문재인 정권이 집권 2년차에 들어서자 인사문제로 곤혹을 겪기 시작했지만 정의당은 다수 시민 눈높이에서 할 말을 했다. 정의당의 '데스노트'는 곧 국민의 거절이었다.

2019년 8월, '조국사태'가 벌어졌다. 당시 언론보도를 보면 정의당 '데스노트'에 조국 법무부장관 후보자가 오르는지가 관심사였다. 풀이하면 정의당은 정략적 이해관계가 아닌 평범한 국민의 눈높이에서 판단해왔고 조국사태에서도 이를 기대했다는 뜻이다. 국민들이 공분한 지점은 불법여부와 무관했다. 평범한 집에선 상상하기 힘든 '부모찬스'가 드러났다.

정의당은 8월내내 입장을 유보했다. 그 순간 정의당은 신뢰를 잃었다. 심상정 당시 대표는 '조국사태'가 다 끝난 10월 말에서야 국회 비교섭단체 연설에서 선거제 개혁 때문에 조국 전 장관을 데스노트에 올리지 않았다며 사과했다. 유권자들이 '정의당은 정략적인 이유로 민주당 눈치를 본다'는 판단을 마친 뒤였다. 진보정당답지 않은 모습이었다.

정의당은 적어도 청문회 전에 조국 후보자에 대한 입장을 정리했어야 한다. 과감하게 그를 데스노트에 올리든, '심블리'와 '데스노트'로 대변되는 정의당의 신뢰를 자산 삼아 '이번엔 선거제 개혁과 검찰개혁이란 대의를 위해 현 정부와 협조하는 모습을 보이겠다'고 밝혔어야 한다. 조국 찬반 자체보다 중요한 건 결정 이후에 생각이 다른 지지층을 설득해 나가는 과정이다. 선거제개혁과 검찰개혁 역시 진보정치의 과제인 만큼 이를 설득할 자신감을 보이지 못한 게 더 큰 문제다.

민주주의는 정해진 답이 있다고 믿는 시스템이 아니다. 결과보다는 어떻게 과정을 만들었는지가 중요하다. 조국 찬성이라는 '결과'를 잘못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 진짜 실책은 정의당이 기존 정당처럼 정략적 유불리에 억눌려 입장을 회피한 것이다. 아쉽게도, 잘못된 원인진단은 총선 전에도 이어졌다. 지난해 3월 '다시 정의당답게'를 내건 정의당 청년선거대책본부장은 조국 후보자를 찬성한 것에 대해 사과했다. 세대교체를 말한 총선이었지만 메시지는 심상정과 같았다.

▲ 김종철 전 정의당 대표. 사진=노컷뉴스

김종철 전 대표 성추행 사건으로 돌아오자. 지난 25일 오전, 1시간 사이에 당의 사건설명, 가해자의 입장문, 피해자의 입장문이 나왔다. 당원·지지층은 민주당이나 국민의힘에 비해 잘 대처했다는 언론의 평가를 받는다고 안심하고 만족하지 않는다. 당 지도부가 당의 결정에 대해 충분히 설명하고 설득하길 기대한다.

정의당은 이날 사건을 알리면서 가해자에 대한 '무관용'을 강조했지만 가해자 형사처벌을 외면한 이유는 설명하지 않았다. 여론에선 이미 첫 메시지에서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판단이 내려졌다. 언론에서 이를 거론하자 피해자 입장에 따른 것이라는 간략한 설명을 덧붙였다.

미디어오늘은 다음날인 26일 김윤기 당대표 직무대행의 '보수단체 형사고발 비판' 발언에 대해 두 가지 실책을 지적했다. 첫째, 피해자는 원하는 수준의 목소리를 낼 권리가 있지만 당 지도부는 이 사건을 공론화할 때 형사고발을 예상하고 대응논리를 함께 내놨어야 했다는 지적이다. 둘째, 성범죄에서 친고죄 폐지가 여성운동의 결과지만 이번 사건처럼 피해자가 원치 않는 수사가 가능하다는 부작용이 있으니 이에 대한 정의당의 입장과 향후 입법계획을 밝혀야 한다는 주장이다.

'피해자가 원치 않는데 보수단체가 가해자를 형사고발한 건 잘못이다'라는 비판을 여성단체나 피해자는 할 수 있다. 그러나 국회의원이 6명이나 있는 원내정당의 지도부도 이런 당위만을 말하는 건 차원이 다르다. 형사고발이 있을 거란 걸 몰랐다면 무능했고, 알았다면 무책임했다.

[관련기사 : 정의당, 김종철 성추행 사건 수사 '손절' 대응 맞나]

정의당은 2차가해의 유형을 공지하고 이를 제보받는 등 일사불란 움직이고 있다. 사흘만에 김 전 대표를 당에서 제명했다.

▲ 김윤기 정의당 당대표 직무대행 사진=노컷뉴스

이에 반해 4월 선거에 후보를 낼 것인지를 두고는 TF까지 꾸려 시간을 끌고 있다. 조국사태 때와 비슷한 상황이다. 당 지도부가 정치적 유불리를 놓고 주판알을 튕기는 소리가 대중에게 전달되고 있다. 공천 여부를 놓고 당내 갈등이 있다는 기사의 댓글은 대다수가 존재감 없는 당에 대한 비아냥인 가운데 몇몇 댓글은 당 지도부가 새겨들을 만하다.

“민주당 성비위로 치루는 선거에 민주당은 당당히 후보내고 그에 대해 정의당도 큰 불만 없었던 것으로 아는데 당내 성추행 문제가 있다고 선거에 나서지 않겠다는 건 당선 가능성의 차이인가? 민주당이건 정의당이건 뒤죽박죽”

“정의당 정당 맞나요? 명색이 국회의원을 보유한 정당인데 후보를 낼지 말지 고민한다면 정당을 포기하고 사회운동단체로 바꾸는 게 좋지 않을까요”

이는 후보공천 여부에 대한 비판이 아니다. 시민들 입장에선 정의당이 유불리를 계산 중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에 나오는 비판이다. 결정이 늦을수록 불필요한 비호감은 올라간다. '보궐선거에서 정의당도 후보를 내 심판을 받겠다'고 선언하든, '반성하는 뜻으로 후보를 내지 않겠다'며 무릎을 꿇든 진보정당다운 원칙과 소신에 따라 판단해야 한다. 이쯤 되면 당이 어떤 사안을 결정하고 이에 반대하는 지지층에게 대안을 제시하며 설득할 자신이 없는 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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