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준생 창업 두달, 중견기업 월급 벌었다 [코로나는 처음이라]
〈3〉-② 생애 첫 코로나, 내 사업을 시작했다
온통 주식 얘기였다. 엘리베이터에 타면 미국 주식에 투자한 직장인이 열변을 토했다. 은행에 가면 옆 창구에서 또래로 보이는 20대가 주식 계좌를 개설했다. 수입이 0에 가까웠지만 돌진하는 개미떼의 행렬에 합류할 것만 같았다. 소액으로 주식 투자를 시작했지만 큰 소득이 없었다. 온종일 오르락내리락하는 주가를 보며 침침해진 눈을 껌뻑였다. 시류에 따라가야 한다는 초조함이 돈에 대한 열망을 불 지폈다.
정작 중요한 것은 취업이었다. 지난해 대학교 4학년에 올라가면서 도장깨기를 하듯 각종 자격증 시험에 응시했다. 코로나 영향으로 모든 수업이 비대면으로 전환돼 비는 시간을 활용할 수 있었다. 토익·한국사·유통관리사·경영지도사 등에 도전했다. 주전공이 경영학과, 복수전공이 소프트웨어공학과인 덕에 그나마 채용문이 열려있는 IT 직군 인턴에 지원서를 냈지만 모두 떨어졌다. ‘고(高)스펙’ 친구들은 코로나로 취업이 어려워지자 중소기업으로 하향 지원했다. 무리해서 공기업이나 9급 공무원을 준비하는 친구들도 있었다.
그 무렵 30대 직장이었던 친형도 새로운 일을 벌였다. 한동안 부동산 유튜브에 빠져 있더니, ‘N잡(여러 직업)’만이 내 집 마련의 지름길이란 결론을 내린 것이다. 형은 위챗으로 중국인 판매자를 찾아내 공장 매입가로 상품을 대량 주문했다. 2주 후 스마트폰 강화유리 필름 수백 장이 담긴 택배 박스가 집에 도착했다. 디자이너였던 형은 상품 박스를 직접 디자인해 주문했고, ‘풀착장’으로 재탄생한 스마트폰 필름은 제법 근사했다. 야심차게 네이버 스마트스토어로 판매를 시작했다. 2020년 3월이었다.
그러나 한 달간 팔린 필름은 단 8장. 광고 없이 올리자 검색에서 밀려났고, 형은 곧 판매에 손을 놓고 충실한 월급쟁이로 돌아갔다. 제 몫을 주장하듯 방구석을 차지하고 있는 택배 박스가 아니었으면 필름은 진작 기억의 저편으로 밀려났을 것이다. 보다 못해 형에게 “내가 팔게 해달라”고 했다. 검색 순위부터 올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품 상세 페이지의 사진과 설명을 블로그와 연동해 프로그래밍언어로 태그를 걸자 연관 검색 노출이 증가했다. 이는 자연스레 방문자와 판매량 증가로 이어졌다. 그럼에도 상품 품질과 가격 경쟁력이 부족했다. 직접 사업을 시작하는 것이 빠를 것 같았다.
창업금 만원을 들고 은행으로 향했다. 사업자통장을 개설하고 비밀번호 생성기(OTP)를 발급하니 6000원이 남았다. 초기 자금이 거의 필요없는 해외구매대행업을 할 생각이었으니 상관없었다. 스마트스토어를 만들고 ‘아이템 스카우트’라는 홈페이지를 통해 팔릴 만한 해외 상품을 발굴했다. 신용카드로 해외 판매자의 상품을 300만원어치 주문해 국내 판매가보다 싸게 올렸다. 행거·보드복·달력 등 ‘하나만 걸려라’는 생각으로 37여종의 상품을 등록했다. 지난해 11월이었다.
첫 매출을 정산하니 370만원. 상품 매입 가격·스마트스토어 수수료·카드 수수료·배송대행지 수수료 등을 빼니 매출의 10%가량이 순이익으로 남았다. 37여종의 상품 중 하나만 터져도 검색 상위에 노출돼 매출을 순식간에 끌어올렸다. 11월엔 캐릭터 달력이 먹여 살렸다. 해외 거래처가 발송한 상품은 배송대행지를 통해 최종적으로 소비자에게 도착하는 구조여서 재고를 쌓아둘 공간이 필요 없었다. 집에서 학교 수업과 스펙 쌓기, 사업을 병행했다. 하루에 적게는 5시간 많게는 8시간을 사업에 투자했다.
12월 매출은 2700만원으로 뛰었다. 중견기업 평균 월급에 맞먹는 돈을 처음으로 손에 쥐었다. 미국 거래처로부터 태블릿PC를 매입해 국내가보다 최대 10만원 저렴하게 판매했다. 연말 선물 수요를 공략해 키워드를 배치하는 등 마케팅에 공을 들이자 태블릿 PC로만 하루 최대 400만원의 매출을 올렸다. 취급하는 상품 수가 100여종으로 늘었고, 고객응대를 도울 친구 한 명을 고용했다. 처음으로 취준생 신분에서 벗어나 사업가로서 자부심을 가질 수 있었다.
자랑할 만한 대단한 성공은 아니다. 코로나가 터지지 않았더라면 사업을 시작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비대면 수업이 아니었다면 학교 수업과 병행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해외로 나갈 돈이 국내에 머물면서 해외 상품이 인기를 끈 것도 순전한 운이었다. 그저 ‘비빌 언덕’을 하나 찾은 것 같아 감사하다. 올해 ‘코스피 3000 시대’가 왔다고 하지만 장사가 잘되던 집 앞 카페는 폐업했다. 그만큼 현실 경제는 여전히 냉혹하다.
올해 1월부터 중견기업의 인턴을 시작했다. 인턴과 대학생 사업가로서 ‘쓰리잡’을 뛰며 살아간다. 오후 6시에 퇴근해 집에 도착해 밥을 먹고, 7시부터 다시 일을 시작하면 새벽에 끝난다. 예전보다 시간 여유는 없지만 숨통이 트인 것 같다. 항상 언제 취직해 월급을 모으고 내 집을 마련할지 막막하기만 했다. 그동안 집값이 몇억 오르면 ‘그땐 어쩌지?’ 싶었다. 이젠 조금이라도 내 집 마련에 가까워진 것 같다.
〈인터뷰를 마치고〉 임주형(26) 씨는 올해 졸업까지 한 학기를 앞두고 있다. 경영지도사 시험에 재도전해 협동조합에 취직하는 것이 목표다. 장기적으로는 협동조합 전문가로써 경력을 쌓을 계획이다. 스마트스토어 사업도 병행해 매출 1억원을 달성하는 것을 꿈꾼다.
박로명 기자/dod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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