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사 술접대 수사기록③ "라임 수사 검사 4명 중 3명이 비리 은폐"
김봉현 전 스타모빌리티 회장이 지난해 10월 낸 세 번의 옥중 입장문에서 밝힌 주장은 대략 두 가지로 요약된다. 하나는 라임 사건을 수사한 검찰이 검찰 및 야당 인사 관련 비리 의혹에는 눈을 감은 채 오로지 현 집권여당 관련 인사들에 대한 수사에만 총력을 집중했다는 것, 두번째는 김 회장 자신이 직접, 혹은 대리인을 통해 금품과 향응을 제공한 전현직 검찰 관계자들이 검찰 수사에 개입했고, 또 각종 수사 정보를 빼내 김 회장 측에 제공했다는 것이다. 김봉현 회장은 특히 이 부분에서 전현직 검찰 수사관들에게만 3억 원 가까운 금품과 향응을 제공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뉴스타파는 1500쪽에 달하는 ‘검사 술접대 사건’ 수사기록을 분석하면서, 김 회장이 변호사 수임료 외에 검찰 수사 무마를 목적으로 뿌렸다고 주장하는 로비 자금과 관련된 부분을 따로 정리해 살펴봤다. 김봉현 회장과 이종필 라임 부사장 등의 진술조서와 자필 진술서 등에서 의미있는 내용을 다수 발견할 수 있었다. 김봉현 회장 측의 일방적인 주장으로만 치부하기엔 너무 구체적이고, 검찰 내부자의 조력 없이는 알기 힘든 내용들이다.
금품 수수 의혹 현직 검찰 수사관, '라임 수사 참여' 확인
지난해 10월 16일 첫번째 폭로 직후부터 법무부의 조사를 받았던 김봉현 스타모빌리티 회장은 전현직 검찰 수사관 4명에게 수사 정보 유출 등을 대가로 총 2억8000만 원을 건넸고 그들 중 일부에게는 룸살롱에서 술접대도 했다고 증언했다.
김봉현 회장은 돈을 전달한 장소와 방법까지 상세히 진술했다.
삼성동 코엑스 인터콘티넨탈 호텔 커피숍 안쪽에 있는 바에서 5만원권 현금 8000만원이 들어 있는 쇼핑백을 조OO (전 검찰 수사관)에게 전달하였습니다.
- 김봉현 스타모빌리티 회장 진술조서 (2020.10.28)
김 회장은 조사 초반에는 돈을 받은 것으로 의심되는 전현직 수사관 4명 중 서울남부지검 라임 수사팀 수사관 2명의 이름이 정확히 기억나지 않다고 말했다. 하지만 검찰은 김 회장의 진술을 토대로 서울남부지검 수사관 명단에서 곧바로 두 명의 검찰 수사관을 금품 수수 의혹의 대상자로 특정한다. 이 모 수사관과 고 모 수사관이었다. 이로써 김봉현 회장으로부터 금품 로비를 받았다고 의심되는 전현직 검찰 수사관 4명의 신원이 모두 확인됐다.
그런데 이 4명 중 현직 검찰 수사관인 고 모 씨는 라임 사건 수사 과정에서 서울 여의도에 위치한 라임자산운용 사무실 압수수색, 이종필 라임 부사장에 대한 피의자 신문 과정에 직접 참여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종필 부사장은 검찰 조사 과정에서 “김 전 회장이 금품을 건넸다는 해당 수사관들을 모른다”고 주장했지만, 검찰이 수사관들의 사진을 제시하자 자신을 수사한 사람으로 고 모 씨를 정확히 지목했다.
그럼 전현직 검찰 수사관들에게 억대의 돈을 뿌린 뒤 김봉현 회장은 어떤 도움을 받았을까.
김봉현 회장이 주장한 첫번째 대가는 라임 관련 수사 상황을 낱낱이 보고 받는 것이었다. 다음은 지난해 10월 28일 김 회장의 검찰 진술 조서 중 일부.
OOO 검사실에서 조사하고 있던 내용들을 전달받았습니다. 조OO(전 검찰 수사관)이 직접 저에게 와서 얘기하기도 하였고, 조OO이 수사관들과 같이 있는 자리에서 전화로 저에게 알려줘서, 스피커폰으로 이종필(라임 부사장), 김OO(라임 사건 관련자)와 함께 듣기도 하였습니다.
- 김봉현 검찰 진술조서 (2020.10.28)
“검찰 수사관이 ‘일도이부삼빽’ 조언했다”
김봉현 회장은 전현직 검찰 수사관들의 ‘보답’이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검찰수사관들을 통해 스마트폰으로 유심칩 없이 인터넷을 사용하면서도 무선 인터넷 망을 통해 쉽게 추적 당하지 않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배웠고, 택시를 타고 추적을 피하며 이동하는 방법도 전달받았다는 것이다. 앞서 김 회장은 3번의 입장문에서 검찰 관계자들이 도주를 권하며 ‘일도이부삼빽(도망가고, 부인하고, 빽쓰고)’의 조언을 받았다고 언급한 바 있다.
이종필 부사장의 검찰 진술 내용도 비슷했다. “김 전 회장이 검찰 관계자들로부터 배웠다는 도피 수법을 그대로 적용해 수개월간 수사망을 피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김봉현 회장과 이종필 부사장이 검찰 수사관 관련 구체적인 진술을 내놨음에도 불구하고, 검찰은 문제의 전현직 검찰 수사관 4명에 대해 사건 시작 3개월이 넘도록 이렇다 할 수사결과를 내놓지 못하고 있다.
“검사님이 검찰과 야당 비리엔 관심이 없어 하셔서...”
김봉현 회장이 입장문을 통해 강조했던 또 하나의 주장은 “라임 사건 수사팀에 검찰과 야당, 그리고 언론인 관련 비리 사실을 수차례 알렸지만 수사 검사들이 하나같이 묵살했다”는 것이다. 특히 김봉현 회장측은 ‘술접대 검사’로 지목돼 재판에 넘겨진 나 모 검사와 같은 팀에서 일한 검사들의 수사 행태를 문제 삼았다.
김봉현 회장이 ‘검사 술접대’ 의혹 외에 검찰에 알렸다고 주장하는 비리 의혹은 총 4가지다. 고검장 출신인 윤갑근 전 국민의힘 국회의원 후보 금품 수수 의혹, 김장겸 전 MBC 사장 인사청탁 의혹, 서울 남부지검 간부 검사 의혹, 그리고 김 회장이 로비스트로 활용했던 조 모 전 검찰 수사관 관련 의혹.
김봉현 회장은 이들 비리 의혹을 검사들에게 전달한 경위를 이렇게 설명했다.
최OO 검사가 “회장님, 검사들 얘기도 좀 있던데… 좀 들어봅시다.”라고 하여, 저는 검사들 비위를 말해 달라는 의미로 생각하고 “복도에서 만나는 검사님 중에 술자리도 했던 검사님이 있습니다. 그 때 이주형 변호사도 함께 했습니다.”라고 답변했습니다. 최OO 검사는 ‘아… 술 한 잔 하신 건데 어때요? 다른 건 없죠’라고 하면서 그냥 넘어 갔습니다.
- 김봉현 스타모빌리티 회장 법무부 진술조서 (2020.10.17)
이OO씨한테 돈을 준 적 있냐고 최OO 검사가 물었을 때, 제가 MBC 김장겸 사장한테 이 OO 씨 인사 관련으로 돈을 준 적이 있다고 얘기 했었는데, 관심 없어 하셔서 더 이상 얘기 안했습니다.
- 김봉현 스타모빌리티 회장 법무부 진술조서 (2020. 11.11)
이종필 라임 부사장 역시 지난해 11월 진행된 검찰 조사에서 김봉현 회장이 폭로한 각종 의혹들을 검사들이 이미 알고 있었다고 진술했다.
종합하면, 술접대 의혹 당사자인 나 모 검사와 함께 라임 사건 수사에 참여한 검사 4명 중 3명이 김봉현 회장과 이종필 라임 부사장 등에게서 검찰과 야당 인사 비리 의혹을 듣고도 묵살했다는 것이다.
뉴스타파는 전현직 검찰 수사관들의 비리 의혹, 검찰과 야당 정치인 관련 의혹을 라임 수사팀이 묵살했다는 김봉현 회장의 주장에 대한 입장을 묻기 위해 라임 수사를 맡았던 서울남부지검에 연락했다. 남부지검은 서면으로 입장을 전했다.
“전현직 검찰 수사관에 대한 수사는 현재 진행중이고, 라임 사건 수사팀이 검찰과 야당 관련 의혹 수사를 외면했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입장문 발표 전까지 김봉현 회장 측이 이 문제를 제기한 사실이 전혀 없다”는 주장이었다.
남부지검은 또 김 회장의 입장문 발표 이후 진행된 수사과정에서 김봉현 회장이 로비스트로 활용한 전 검찰 수사관 조 모 씨가 스타모빌리티로부터 허위 급여를 받은 의혹, 김장겸 전 MBC 사장 인사청탁 의혹은 증거가 없는 것으로 확인됐으며, 신 모 차장검사의 수사 무마 의혹에 대해서는 확인해 줄 수 없다는 입장을 전했다.
뉴스타파 조원일 callme11@newstap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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