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부시하던 '이혼' 끄집어낸 방송..이 시대 '대안 가족' 가능성 열까

한겨레 2021. 1. 29.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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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진미의 TV 새로고침][황진미의 TV새로고침] '우리 이혼했어요'

<우리 이혼했어요>(티브이조선)는 이혼한 부부의 재회를 담은 관찰 예능프로그램으로, 종합편성채널에서 보기 드문 시청률과 화제성을 보인다. 신동엽·김원희의 관록과 조화가 돋보이고 화면 구성, 편집, 자막의 세련됨이 눈에 띈다. 하지만 가장 뛰어난 점은 과감한 기획이다.

오늘날 이혼은 예외적인 것이 아니다. 매년 약 12만쌍이 이혼한다. 이는 결혼 건수의 절반에 해당한다. 하지만 이혼을 말하긴 여전히 쉽지 않다. 당사자와 가족에게 큰 상처인데다, 정상 가족의 압력이 강한 탓이다. 그런데 이혼한 부부가 남보다 못한 사이가 돼버리는 지금의 문화는 가족의 내상을 더욱 깊게 만들며, 정상 가족 이데올로기 강화에 일조한다. 이혼 부부의 관계를 개선하여 심리적 치유를 꾀하고, 자녀 양육 등 이후의 삶에 도움을 주며 대안 가족으로 나아가는 길을 모색하는 일이 필요한 때다. 그런 점에서 “이혼 후 새로운 관계에 대한 가능성을 제시하는 선진국형 리얼리티 프로그램”이라는 기획 의도는 시의성을 갖는다.

<우리 이혼했어요>의 한 장면. 프로그램 갈무리

<우리 이혼했어요>는 선정성과 공익성을 동시에 지니며, 양자를 같이 살필 가치가 있다. 요컨대 리얼리티와 허구가 구분되지 않은 채 정제되지 않은 갈등을 쏟아내는 ‘매운맛 관찰 예능’의 형식을 숙고할 필요가 있다. 또한 프로그램이 필연적으로 노출하는 결혼의 본질을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우리 이혼했어요>는 관찰 예능이 드라마적 농밀함을 지닌 장르로 진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연예인과 가족의 일상을 담은 관찰 예능이 나온 지 꽤 오래됐다. 2013년에 <자기야―백년손님>(에스비에스), <아빠 어디 가>(문화방송), <슈퍼맨이 돌아왔다>(한국방송2) 등 가족 관찰 예능이 우후죽순 생겨났다. 2016년부터는 <나 혼자 산다>(문화방송), <미운 우리 새끼>(에스비에스), <전지적 참견시점>(문화방송), <온앤오프>(티브이엔) 등 혼자 사는 연예인의 취미와 친목을 비추는 일상 예능이 대세를 이뤘다. 이런 프로그램은 다소 작위적이긴 하지만, 드라마적 긴장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러나 <동상이몽―너는 내 운명>(에스비에스), <1호가 될 순 없어>(제이티비시), <아내의 맛>(티브이조선) 등은 가족 관계의 텐션을 강하게 담는다. <우리 이혼했어요>에는 이혼한 부부의 결혼과 이혼에 얽힌 갈등과 이를 궁금해하는 호기심 어린 시선이 교차한다. 최근 관찰 예능은 가족 간의 격렬한 갈등을 폭로하고 전시하는 데 거리낌이 없다. <1호가 될 순 없어>의 최양락-팽현숙 부부의 날 선 싸움, <아이 콘택트>(채널에이)의 최홍림이 의절한 형과 재회하는 장면 등이 여과 없이 방송됐다.

방송을 통해 가족의 내밀한 사정이 노출되고 격렬한 감정이 여과 없이 표출되는 것은 몇년 전만 해도 뜨악하게 여겨졌다. 그러나 관찰 예능의 제작 편수와 기법이 늘면서 거부감이 점차 옅어지고 있다. 여러 대의 카메라를 이용한 촬영과 노련한 편집은 다큐멘터리인지 극영화인지 알 수 없는 프로그램을 만들어낸다. 일반인이 출연하여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적인 예능을 만들어냈던 <하트 시그널>(채널에이)이나 <굿피플>(채널에이)을 통해 경험했듯, 이제 다큐멘터리와 극영화, 관찰 예능과 드라마, 일반인과 연예인의 구분이 없어지고 있다. 여기에 유튜브 개인방송의 시대가 열리면서 ‘사생활이 곧 콘텐츠가 되는 삶’을 출연자와 시청자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다.

<우리 이혼했어요>의 한 장면. 프로그램 갈무리

<우리 이혼했어요>는 여러 커플의 모습을 통해 우리 시대의 결혼에 대해 중요한 시사점을 남긴다. 이혼 후 13년 만에 이영하와 둘만의 시간을 가져본다는 선우은숙은 가장 열심히 재회의 기회를 활용한다. 그는 이영하에게 계속 질문하며 그간의 오해와 앙금을 풀고자 한다. 그의 욕망이 여전히 여자로서 사랑받기를 원하는 낡은 것이라 할지라도, 자신의 욕망에 솔직하고 관계 개선에 적극적인 태도는 본받을 만하다. 처음엔 그저 회피하는 것처럼 보였던 이영하도 조금씩 달라졌다. 두 사람은 이혼 후에도 정서적으로 강한 유대를 보이는데, 이는 이혼보다 졸혼에 가까워 보인다. 둘은 굳이 재결합이 필요하지 않을 만큼 편안해 보이며, 만남은 점점 달달해진다. 이들의 모습은 지금 갈등을 겪는 노년의 부부에게 따로 살면서 각자의 개별성과 존엄을 지키는 생활이 가능하다는 영감을 일깨운다. 또한 새롭게 연애를 시작하려는 노년에게도 용기와 활력을 준다.

한편 유튜브 크리에이터 최고기-유깻잎 커플은 청년 세대의 사례로 주목할 만하다. 두 사람은 임신으로 인해 서둘러 결혼하면서, 결혼의 주도권을 부모에게 빼앗겼다. 20대의 결혼 비용을 부모가 마련하면서 빚어진 갈등은 시아버지와 장모로까지 번졌고, 끝내 봉합되지 못했다.

아이돌 출신 박세혁-김유민 커플 역시 결혼의 주도권을 부모에게 빼앗긴 상황이 이혼으로 이어진 사례다. 이혼 후 최고기는 다섯살 된 딸 솔잎을 키운다. 솔잎의 존재는 재결합으로 몰고 가려는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재결합의 가장 큰 걸림돌로 보였던 시아버지에게 쏟아진 악플은, 유깻잎이 재결합을 거절하자 유깻잎에게 향했다.

그러나 젊은이들의 결합을 진정으로 방해하는 것은 부모에게 빚지지 않고 결혼하여 아이를 낳아 기를 수 없는 현실이다. 즉 분노를 쏟아야 할 곳은 청년 실업과 집값 상승을 해결하지 못하는 정부다. 솔잎의 사랑스러움과 악플 세례에도 꿋꿋하게 섣부른 재결합을 거부하는 유깻잎은 새로운 여성 주체로 보인다. 그는 모성에 짓눌리지도 않고 모성을 포기하지도 않는다. 이는 독박육아와 모성박탈 사이에서 양자택일하게 만들었던 기존 사고의 바깥을 사유하게 한다. 이혼했지만 느슨하게 함께 아이를 키우고, 새로운 만남을 거치면서 관계가 확장될 수 있다면 대안 가족의 가능성도 열릴 것이다. 이들의 미래를 응원한다.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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