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아리] 한국 외교, 웬디 셔먼과 김여정 사이

2021. 1. 29.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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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는 '문재인 보유국'이라 칭송하지만 
어설픈 외교로 북미 사이에 끼인 한국 
남북·한미 갈등 불똥, 국민에 튈까 우려
편집자주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
웬디 셔먼(왼쪽) 미 국무부 부장관 내정자와 김여정 북한 노동당 중앙위 부부장. 한국일보 자료사진

곧 서울에 미국 대사가 새로 부임한다. 누가 올지 모르지만, 확실한 건 부임 전 '두 개의 한국(The Two Koreas)'을 읽을 것이라는 점이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의 대사였던 마크 리퍼트 등 전임자 대부분이 이 책을 읽었다. 2015년 작고한 돈 오버도퍼 전 존스홉킨스대 교수가 1997년 처음 펴냈고, 2014년 로버트 칼린 스탠퍼드대 연구원이 공저자로 참여한 책이다. 남북 분단의 역사적 배경, 냉전시대 체제 경쟁, 이후에도 남북 화해가 이뤄지지 않는 상황 등을 한미 고위 관계자의 증언을 토대로 상세히 기술했다.

기자가 2015년 인터뷰했던 칼린 연구원의 역작을 언급한 건, ‘두 개의 한국’을 구분할 새 수식어가 생겼기 때문이다. ‘보유국’이란 말을 배경으로 북한은 ‘핵 보유국’, 한국은 ‘문재인 보유국’이 됐다. 북한은 2005년부터 핵 보유국을 자처했다. 그 동안 내세울 게 없던 한국이 보유국 대열에 동참한 건 여당 서울시장 후보 때문이다. 박영선 전 중기부 장관이 문 대통령 지지자들이나 입에 올리던 말을 최근 일반에 퍼뜨리면서 단숨에 유행어가 됐다.

연관 검색어가 ‘외교 천재’ ‘성군’일 정도로 문 대통령 지지자들은 ‘문재인 보유국’이 ‘핵 보유국’을 압도한다고 믿지만, 북한은 그렇게 여기지 않는다. 이 정권 전에도 북한은 한국을 우습게 여겼다. 남북 장관급 회담에 차관급 인사를 내보내는 방식으로 하대한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북한 사람들을 직접 만난 인사들은 “우리를 벼락부자가 된 ‘작은 집’ 정도로 여긴다”고 전한다. 2002년 장성택이 서울에 왔을 때 일행을 영접했던 한 인사는 “북이 미제로부터 지켜줄 테니 남쪽 사람들은 돈이나 벌면 된다”는 흰소리를 여러 차례 들었다. 사흘간 평양을 다녀온 한 지인도 “체류 마지막 날 북측 안내원이 느닷없이 ‘돈 좀 내놓으라’고 해서 100달러를 쥐여줬다”고 말했다. “미안한 기색이 없었고, 당연히 받을 걸 받는다는 태도였다”고 덧붙였다.

우리를 깔보는 정도는 문재인 정부 이후 심해졌다. ‘백두 혈통’이라는 점 빼곤 차관급(노동당 부부장)에 불과한 김여정이 수시로 담화를 내고, 대통령을 비하하고 장관을 혼낸다. 문 대통령은 ‘하늘 보고 웃는 소’에 비유됐고, 주변 참모들은 ‘특등 머저리’가 된 지 오래다.

문제는 바이든 행정부가 들어서면서 우리 정부의 운신 폭이 크게 줄었다는 점이다. 북한은 갈수록 사나워지고, 대북 강경파가 포진한 미국은 확실한 노선 변경을 요구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빅터 차 한국석좌는 워싱턴포스트 기고에서 “외화가 바닥난 김정은이 일반 주민들의 달러, 유로화까지 털어내고 있다. 이에 분노한 민중 폭동이 일어날 수 있으며, 내부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군사 도발에 나설 수 있다”고 우려했다.

또 다른 전문가는 ‘4월 위기설’을 걱정할 정도로 한미 관계가 심각하다고 말했다. ‘대북 전단금지법’이 예정대로 올 3월 시행되면, 미국이 힘을 행사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이 인권 감시국 명단에 오르고, 한미 정상회담은 기약 없이 멀어질 수 있다”고 예상했다. “정부는 미국이 한국 사정을 몰라서 그런다지만, 미국이 우리 사정을 너무 잘 알아 문제”라며 “미국은 우려 사항을 확실히 전달했는데도, 청와대와 통일부 고위층이 깔아 뭉갰다는 불만을 갖고 있다”고 덧붙였다. “(한일 역사문제에서) 정치 지도자가 과거의 적을 비난해 값싼 박수를 받으면, 마비를 초래한다”고 발언, 2015년 한국 여론을 들끓게 했던 웬디 셔먼이 국무부 2인자로 복귀했음을 냉랭한 한미관계로 실감하게 될 것이라는 얘기다.

웬디 셔먼과 김여정 사이, '문재인 보유국'의 외교 비용을 물정 모르는 국민들이 떠안는 한 해가 될 것 같아 걱정된다.

조철환 에디터 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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