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없어요. 저도 이사했어요"..현직 경찰관도 두손든 층간소음
층간소음위 의무설치안 추진
◆ 집콕시대 층간소음 갈등 ◆
서울에 거주하는 공인중개사 이승준 씨(가명)가 최근 이웃 주민과 층간소음 갈등을 겪고 관할 경찰서를 찾자 담당 경찰관이 한 말이다. 해당 경찰관은 "저도 층간소음 문제로 이웃과 심한 갈등을 겪었다"며 이씨에게 조언을 해줬다고 한다. 핵심은 바로 '층간소음은 무서워서가 아니라 더러워서 피한다'였다. 해당 경찰관은 심지어 강력계 형사라는 신분을 밝혔음에도 층간소음 해결이 쉽지 않아 이사를 갈 수밖에 없었다. 이씨는 경찰관에게 조언을 들은 뒤 결국 같은 아파트 1층으로 주거지를 옮겼다. 이미 층간소음 방지를 위한 쿠션비 250만원, 리모델링비 4000만원을 소요한 뒤에 생긴 일이었다.
사적 영역인 주거지에서 불거지는 층간소음 갈등은 이제 민감한 사회적 문제로 떠올랐다. 층간소음 스트레스는 개개인의 정체성, 생존 본능을 자극하는 심각한 사회적 문제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특히 코로나19로 '집콕족'이 늘면서 층간소음 갈등이 더욱 심해져 폭행, 살인 등 강력 범죄로도 이어지는 모습을 띠고 있다. 상황이 심각하지만 이씨 사례처럼 층간소음 문제는 경찰, 행정당국이 해결해 주기 힘든 부분이다. 경찰 관계자는 "사적 영역이므로 소음 발생 당시 증거 확보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경찰은 층간소음 신고가 들어오면 현장에 출동해 양측을 중재하는 역할에 치중하고 있다.
중재가 쉽지 않으면 극단적인 사례로 치달을 공산이 크다는 점이 층간소음 갈등의 심각성을 여실히 보여준다. 경기에 거주하는 김 모씨는 "매일 밤 위층 집에서 나는 '쿵쿵' 발 망치 소리가 너무 시끄러워 다수 항의했다"며 "하루는 만나서 대화했는데 감정이 격해지자 욕을 하면서 '칼질하고 싶다'는 협박을 했다"고 전했다.
층간소음에 대한 보복이 벌금형으로 돌아온 사례도 있다. 최근 인천지법은 아파트 위층에서 층간소음이 난다며 고의로 '역층간소음'을 유발한 아래층 거주자에게 위자료 1000만원과 위층 거주자의 월세 비용 등 약 3000만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법원은 피고인이 지난 2년 동안 원고 부부가 사는 위층 집이 층간소음을 낸다며 경비실에 수차례 신고하고 스피커 등을 사용해 고의로 소음을 일으켰다고 판단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외부 활동을 줄이고 집 안에 머무는 시간이 늘면서 층간소음 갈등이 더욱 커지기도 했다. 30일 한국환경공단 층간소음 이웃사이센터에 따르면 지난해 층간소음 관련 전화 상담 접수 건수는 4만2250건으로 2019년(2만6257건) 대비 60% 늘었다. 특히 코로나19에 따라 정부의 사회적 거리 두기 조치로 집 안에 머무는 시간이 늘어나자 이 같은 층간소음 갈등이 대폭 늘었다는 지적이다.
층간소음 갈등이 심각해지자 정치권에서도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최근 양경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층간소음 관리위원회를 구성해 운영토록 하는 공동주택관리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이 법이 통과되면 공동주택 입주민들은 관리위원회를 필수적으로 구성하고 층간소음 갈등 중재를 위해 운영해야 한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계속된 층간소음 문제는 분노 감정으로 발달하기 때문에 초반에 잘 관리해 주는 것이 중요하다"며 "미국에서 입주민 간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캠페인을 통해 갈등이 줄어든 사례가 있다. 분쟁 조정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아주 좋은 방안"이라고 말했다.
[차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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