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양가 묶어놓곤 층간소음 답 없다

김동은,이윤식,김형주 2021. 1. 29.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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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콕시대 층간소음 끝내자
신기술 적용한 기둥식 아파트
기존 벽식보다 소음 확 줄어
건축비용 많이 드는게 단점
결국 분양가 탄력적용이 해법

◆ 집콕시대 층간소음 갈등 ◆

29일 세종시에 위치한 한국토지주택공사 (LH) 블루시티 가온마을 9단지.

2년 전 입주한 임대아파트인 이곳은 건축기법에 따른 '층간소음' 차이를 여실히 느낄 수 있다. 일부 입주민은 "사는 내내 층간소음을 겪은 적이 없다"고 입을 모으지만, 다른 동 주민들은 "이전에 살던 아파트와 별반 다르지 않다"고 토로한다. 상반된 반응의 이유는 간단하다. 시행사인 LH는 총 14개 동 가운데 2개 동에 층간소음을 막기 위한 특별한 건축기법을 도입했다. 한 개 동은 기둥과 보(수평으로 하중을 지탱하는 부재)로 구성된 '라멘 방식'으로, 다른 한 개 동은 보 없이 기둥과 슬래브(평판)로 이뤄진 '무량판 구조'로 지어졌다. 나머지 12개 동은 국내에서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벽식 구조'를 적용했다. 벽식 구조는 벽 자체가 하중을 지탱하는 방식이다.

소음 저감을 위한 또 다른 특별 기법은 '층상 배관'이다. 2개 동은 화장실 배관이 벽에 붙어 있어 화장실에서 물을 내리는 소리가 아랫집으로 거의 전달되지 않는다. 국내 대부분 아파트는 배관을 아랫집 천장에 배치한 '층하 배관' 구조가 보편적이다. 이 구조에선 윗집 변기에서 물을 내리면 그 소음이 아랫집에 직접적으로 전달된다.

아파트 거주 비율이 50%를 넘어서면서 층간소음은 전 국민을 괴롭히는 사회문제로 떠올랐다. 대단지와 고층화로 변모한 삶의 터전에 드리워진 그림자다. 과거에는 층간소음이 윗집·아랫집 당사자 간 풀어야 할 '이웃 간' 문제로 여겨졌다. 하지만 분쟁 해결은커녕 깊어지는 갈등의 골로 인해 욕설과 폭력, 심지어 칼부림으로까지 번지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특히 코로나19 장기화로 재택근무와 원격수업이 늘면서 지난해 층간소음 피해를 호소하는 민원 신고 건수는 전년 대비 61% 급증했다.

이 때문에 근본적인 해결책에 대한 사회적 요구도 커지고 있다. 가온마을 9단지 내 특별한 2개 동도 이런 의미로 시범적으로 지어졌다. 국토교통부도 뒤늦게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지난해 감사원은 국토부가 산하기관들의 층간소음 차단 구조 인정 업무를 제대로 관리감독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국토부는 아파트 시공 전 건설사들이 갖고 온 바닥 구조를 시험 제작해 층간소음을 측정하던 기존 검사 방식을 앞으로는 아파트가 실제로 지어진 다음 측정하는 방식으로 바꾸겠다고 발표했다. 올 한 해 층간소음 관련 실태조사를 진행한 뒤 내년 상반기 평가 기준 등을 확정하고 하반기부터 사후 측정 방식을 현장에 적용하겠다는 방침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층간소음 평가 방법과 기술 개발에 대해 건설사 및 학계와 지속적으로 의견을 나누고 있다"고 말했다.

[김동은 기자 / 세종 = 이윤식 기자]


"기둥식 아파트 시공비 5% 더 들지만…소음 줄어 맘 편해요"

세종시 가온마을 아파트서 층간소음 측정해보니

벽타고 생활소음 내려오는
현 시공방식 갈등 키워
기둥식 구조로만 바꿔도 효과

작년 층간소음 민원 61% 늘어
사회적 해법찾기 골몰

"1년 가까이 살면서 층간소음을 겪은 적이 없어요."

"여느 아파트처럼 '층간소음 주의' 방송은 종종 나와요."

세종시 가온마을 9단지 블루시티가 같은 아파트 단지임에도 층간소음 문제에서 사뭇 다른 모습을 보이는 것은 건축 기법 때문이다.

시행사인 한국토지주택공사(LH)는 100년 사는 주택 '장수명 아파트'를 목표로 두 동에 '라멘 방식'과 '무량판 구조'를 도입했다. 라멘 방식은 기둥과 보(수평으로 하중을 지탱하는 부재)로 구성된 구조다. 무량판 구조는 보 없이 기둥과 슬래브(평판)로 이뤄졌다.

박지영 LH 토지주택연구원 수석연구원은 "일반 아파트의 벽식 구조는 벽으로 하중을 지탱하기 때문에 내력벽에 의해 윗집과 옆집 소음이 잘 전달된다"며 "반면 라멘 방식과 무량판 구조는 내력벽이 없어 소음 차단 효과가 좋은 편이다. 특히 라멘 방식은 보가 소음을 잡아주는 역할까지 한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기자가 라멘 방식으로 된 아파트 동 2개 층에서 소음 측정기로 소음 정도를 측정한 결과, 윗집에서 무게가 5㎏가량인 가방을 0.5m 높이에서 떨어뜨렸을 때 윗집은 순간 소음도가 48㏈에서 81㏈까지 올라갔지만, 아랫집 소음도는 최고 53㏈에 그쳤다. 윗집 화장실에서 변기 물을 내렸을 때 윗집 화장실은 소음도가 71㏈까지 올라갔지만, 아랫집은 48㏈ 수준을 유지했다. 내력벽이 없는 기둥식 아파트는 벽식 아파트에 비해 층간소음 측정치가 5㏈ 이상 낮다고 한다.

철근 콘크리트 슬래브 두께 기준을 강화하는 것도 소음 저감 방식 중 하나다. 정부는 2013년 중량 충격음 대책으로 슬래브 두께를 210㎜로 할 것을 의무화했다. 다만 국토교통부는 최근 "현재 층간소음 저감을 위한 방안을 다각적으로 검토하고 있으나, 슬래브 두께를 확대하는 방안에 대해 결정된 바는 없다"고 밝혔다. 문제는 비용이다. 박 수석연구원은 "기둥식 아파트는 벽식 아파트보다 면적당 시공비가 5%가량 비싸고, 무량판 구조는 3%가량 비싸다"고 말했다. 분양가 인상 요인이 될 수 있는 점을 감안하면 건설사가 자발적으로 시공비가 비싼 방식을 적용할 것을 기대하긴 어렵다. 층간소음이 아파트 내 고질적인 문제로 자리매김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서울시내에서 비교적 최근에 입주가 완료가 된 신축 아파트 역시 층간소음에 따른 주민 간 불편 호소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층간소음 분쟁 해결의 첫 번째 단계는 아파트 관리사무소 등을 통한 중재다. 공동주택관리법에 따라 관리사무소는 층간소음 발생 중단과 차음 조치를 권고할 수 있고, 입주자는 이에 협조할 의무가 있다. 서울 양천구 A아파트 관리사무소 관계자는 "대부분 주민이 직접 항의하기보다는 관리실로 민원을 넣고, 관리실은 해당 이웃에게 피해 사실을 전달해 중재하는 방식으로 해결하고 있다"고 밝혔다.

관리사무소 중재가 실패하면 주민들로 구성된 층간소음 관리위원회에서 조정을 받을 수 있다. 서울 서초구 B아파트 층간소음 관리위는 관리 규약에 따라 분쟁 접수 일주일 이내에 피해 가구와 면담하고, 그 결과를 토대로 가해 가구와 면담한다. 층간소음 당사자 의견을 경청하고 위로하기 위해서다. 또 면담 전에 사실관계를 객관화하기 위해 소음 측정 결과, 가해 가구의 층간소음 방지 노력 등을 상세하게 기술하도록 한다. 관리위 관계자는 "당사자가 직접 사실관계를 기술하게 하면 상황을 객관적으로 파악하게 돼 분쟁이 쉽게 종결되기도 한다"고 말했다

층간소음을 중재하는 관계자들은 조정 과정에서 상대방을 존중하는 태도를 유지할 것을 강조한다. 특히 섣불리 경찰에 신고하는 것을 자제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최왕택 서울시 환경전문관은 "집주인이 거부하면 경찰은 영장 없이 집에 들어가 소음 문제를 확인할 수 없고, 집 안에서 소음 발생은 경범죄 처벌 대상도 아니다"며 "관계 악화만 초래할 뿐 경찰관이 민원이 들어왔다는 것을 고지해 경각심을 주는 것 외에 효과가 없다"고 조언했다.

공동주택 내부에서 자체적으로 해결하지 못하면 층간소음 당사자는 외부 기관에 상담과 조정을 요청할 수 있다. 한국환경공단 층간소음 이웃사이센터는 층간소음 상담을 받고 현장에 나가 소음을 진단해 준다. 지방 분쟁조정위원회는 법적 효력을 갖는 조정을 진행한다. 당사자가 해당 조정에 승복하지 않으면 중앙 분쟁조정위원회에 재정신 청을 하거나 법원에 민사소송을 제기하게 된다.

분쟁조정위 관계자들은 층간소음 분쟁이 환경 분쟁 중에서 가장 어렵다고 토로한다. 최 환경전문관은 "분쟁 과정에서 감정이 상할 대로 상하게 되고 정신적 피해를 이유로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사례가 많지만 조정 결과가 배상으로 연결되는 일은 서울에서 최근 5년간 3건에 그칠 만큼 드물다"며 "조정이 완료되기까지 4~6개월이 걸리는데, 끝내 분쟁이 해결되지 않으면 한쪽이 이사를 가야 상황이 끝난다"고 말했다.

[세종 = 이윤식 기자 / 서울 = 김형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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