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역치료 효과 없는 암 환자, 이 당단백질이 문제였다
미국 미시간 의대 연구진, 저널 '캔서 셀'에 논문
(서울=연합뉴스) 한기천 기자 = 암 치료법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은 처음 '면역 관문 억제제'가 나왔을 때 머지않아 '게임 체인저'가 될 거로 기대했다.
원래 '면역 관문'(immune checkpoint)은 면역세포 기능을 활성화하면서 면역세포가 자기 세포를 공격하지 않도록 면역 강도를 적절히 조절한다.
그런데 암세포가 면역세포의 공격을 회피하는 데 면역 관문을 이용한다는 게 밝혀져, 역으로 이를 무력화하는 면역 관문 억제 치료가 개발됐다.
하지만 면역 관문 억제제도 중대한 결함을 안고 있다.
약을 쓰는 환자마다 반응의 편차가 너무 크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 치료로 효과를 보는 환자는 일부에 그친다.
면역 관문 억제제의 이런 약점을 보완하는 데 중요한 실마리가 될 수 있는 당단백질(glycoprotein)과 관련 신호 차단 메커니즘을 미국 미시간대 연구진이 발견했다.
스탄니오칼신-1(STC1)으로 불리는 이 단백질이 암 종양이나 면역 기능과 관련해 어떤 역할을 하는지는 거의 알려진 게 없다.
스탄니오칼신은 장(腸)과 신장에서 칼슘, 인 등의 조절에 관여하는 폴리펩타이드(다중 결합 아미노산) 호르몬이다.
미시간 의대 로걸 암센터의 저우 웨이 핑 병리학 면역학 교수팀이 수행한 이 연구 결과는 최근 저널 '캔서 셀'(Cancer Cell)에 논문으로 실렸다.
29일 미국 과학진흥협회(AAAS) 사이트(www.eurekalert.org)에 공개된 논문 개요 등에 따르면 면역계가 T세포를 만들어 암 종양을 공격하려면 암세포의 어떤 신호가 필요한데 이 신호의 전달을 차단하는 게 STC1이다.
논문의 수석 저자인 저우 교수는 "STC1 단백질이 세포 내부의 면역 관문이라고 믿는다"라면서 "STC1은 '나를 먹어 치워'(eat me)라는 의미를 가진 세포 신호를 차단함으로써 대식세포나 수지상세포가 죽어가거나 이미 죽은 암세포를 포식하는 걸 막는다"라고 설명했다.
이 말은 STC1이 관여하는 경로를 치료 표적으로 삼을 수 있다면 암세포의 '나를 먹어 치워' 신호를 다시 내보낼 수 있다는 뜻이다.
저우 교수와 동료 과학자들은 무슨 역할을 하는지 깜깜했던 STC1이 T세포의 활성도 저하, 흑색종 환자의 낮은 생존율 등과 연관돼 있다는 걸 확인하고 본격적인 연구를 시작했다.
연구팀은 암 유전체 지도(Cancer Genome Atlas)의 데이터베이스를 샅샅이 뒤져, STC1 수위가 높을 때 환자의 생존율이 낮아지는 10개 유형의 암을 추려냈다.
그런 다음 암 종양 내에 SRC1이 있으면 T세포의 항암 반응이 약해진다는 걸 생쥐 실험에서 확인했다.
STC1은 T세포를 자극하는 데 꼭 필요한 항원 제시 세포를 손상했다.
암 종양의 STC1은, 항원 제시 세포이기도 한 대식세포가 죽어가는 암세포를 포식하는 걸 막았다. 대식세포의 암세포 포식은 T세포에 항원을 제시하는 데 꼭 필요한 과정이다.
종양의 STC1이 차단하는 건, 소포체 내강에 존재하는 칼슘 결합 단백질로서 '나를 먹어 치워' 신호의 핵심인 칼레티쿨린(CRT)이었다.
암세포 표면에 CRT가 충분하지 않으면 대식세포가 죽은 암세포를 효과적으로 포식하지 못했다.
이는 곧 차단된 CRT 신호를 풀면 대식세포의 암세포 포식도 원활히 이뤄질 수 있다는 걸 시사한다.
STC1-CRT 상호작용을 조준하는 게 면역 관문 억제 치료의 효과를 배가하는 경로가 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대부분의 면역 관문 억제 치료가 T세포와 암세포 표면의 직접적인 상호작용을 기반으로 한다는 점에는 이는 매우 특이한 메커니즘이라고 과학자들은 강조한다.
저우 교수는 "T세포 활성화 이전에 회피 전략을 구사하는 암 종양은 T세포에 포착될 수 없다"라면서 "면역치료에 저항하는 암 환자의 종양에선 과도한 STC1이 발현한다"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암세포 안에서 STC1-CRT 경로를 치료 표적으로 하는 건 세포 표면보다 훨씬 더 까다롭다. 보통의 경우처럼 항체가 접근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그렇다.
저우 교수팀은 암세포 안으로 뚫고 들어가 STC1과 CRT의 상호작용을 방해하는 저분자 화합물을 개발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cheo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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