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이 사람을 창조했나, 사람이 신을 만들었나
아홉 살 즈음 이런 생각이 그를 덮쳤다. 그리스도교 영국 학교에 다니던 때였다.
만일 내가 바이킹 부모에게서 태어났다면 오딘과 토르를 믿었을 것이라고. 고대 그리스에서 태어났다면 제우스와 아프로디테를 숭배했을 테고, 현대로 와서 파키스탄이나 이집트에서 태어났다면 예수가 신의 아들이 아니라 단지 예언자일 뿐이라고 믿었을 거라고. 유대인 부모에게서 태어났다면 예수를 메시아라고 믿는 대신 오래전에 약속된 구세주 메시아를 여전히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고. 각기 다른 나라에서 자란 사람들은 그 부모를 따라 그 나라의 신을 믿는다. 이런 신앙은 서로 모순되고, 모두 옳을 수는 없다고 꼬마는 생각했다.
열세 살 때 영국 국교회에서 견진성사를 받았던 그는 마침내 열다섯 살 때 그리스도교 신앙을 포기했다. 그러고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무신론자가 되었다. '이기적 유전자' 저자이자 '밈(meme)' 개념을 만들어 낸 세계적 석학 리처드 도킨스(80)다.
왜 신은 존재하지 않는지, 신은 단지 인간이 만들어낸 하나의 이념 혹은 신화에 불과한지 신랄하게 꼬집은 책이 나왔다. '신, 만들어진 위험'으로 2006년 '만들어진 신' 이후 도킨스가 쓴 두 번째 종교에 관한 책이다. 청소년도 읽기 쉬울 만큼 흡입력이 뛰어나다. 2019년 영미권에서 출간된 이 책의 원제는 'Outgrowing God'으로 '아웃그로(outgrow)'는 성장하고 성숙해지면서 어떤 생각이나 습관을 넘어선다는 뜻이다. 유년기 세뇌의 힘, 즉 신이 있다는 허황된 생각에서 벗어나 스스로 '이성적 판단'을 하자는 얘기다.
수천 년 동안 신들이 흥망성쇠를 거듭하는 것도 무신론의 배경이 되지만 도킨스가 가장 먼저 공격하는 대상은 그리스도인이 하느님의 말씀이라고 신봉하는 성경이다. 구약은 아브라함과 요셉의 이야기를 다룬 히브리 전설이라고 잘라 말한다. 사건이 일어난 때로부터 수세기 뒤인 기원전 600~500년에 쓰였기에 얼마든지 왜곡되고 각색됐을 개연성이 충분하다.
저자는 복음서들이 서로 모순되고 '도마의 유년기 복음서' '유다의 복음서' 등이 정경(正經)에서 빠지며 배격받은 점도 지적한다. 나아가 마태오 복음서는 마리아가 예수를 잉태했을 때 처녀였다는 전설을 지어냈다고 주장한다. 마태오가 인용한 '동정녀'라는 단어는 이사야가 사용한 히브리어로는 '알마'였다. 알마에는 동정녀라는 뜻이 있지만 '젊은 여인'이라는 뜻도 있다. 그리스어로 번역된 '구약' 번역본, 즉 마태오가 읽고 참고했을 '70인역'에선 알마는 '파르테노스', 즉 '동정녀'로 번역된다. 단순한 번역 오류가 세계적인 '성모 마리아' 신화를 낳고, 로마가톨릭교도들이 마리아를 천상의 여왕으로 숭배하게 만들었다는 주장이다.
그가 보기에 '나사렛' 출신인 예수를 돌연 베들레헴에서 태어나게 한 것도 복음서 저자인 마태오와 루가의 구약 신화 집착에서 비롯됐다. 예수가 실존했다는 것도 역사적으로 큰 의미가 없다. '예수'는 여호수아라는 히브리어 이름의 라틴어 어형으로 당시 흔한 이름이었고 여호수아라는 설교자가 많았을 가능성도 있다.
'인간은 죄를 가지고 태어난다'는 원죄 의식도 통렬하게 깨부순다. 그리스도교에선 뱀의 유혹에 넘어간 이브의 꾐에 빠져 하느님이 금지한 선악과를 먹은 아담의 죄를 인류가 물려받았다고 믿는다. 하지만 도킨스가 보기에 아담은 실존하지 않았다. 최초의 부부 따위는 없었기에 아담도 이브도 없었다. 굳이 예수가 인류의 죗값을 위해 십자가의 고통을 받으며 죽을 이유가 없다는 얘기다.
신을 둘러싼 여러 가지 모순과 비이성적 부분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들은 '그럼에도 이 세상의 설계자가 분명히 있을 거야'라는 생각을 떨쳐버리기 어렵다.
너무나 정밀하고 완벽한, 무수히 많은 복잡한 생명체를 보노라면 말이다. 하지만 도킨스는 다윈의 진화론을 바탕으로 작은 돌연변이 유전자가 살아남아 후대에 전달되는 자연선택 과정의 결과물로 복잡한 생명체들이 존재하고 있다고 조목조목 예를 들어 설명한다.
이토록 확신에 차서, 중간중간 영국식 위트를 섞어가며 모든 신은 '가짜'라고 설파한 석학이 있었나 싶다. 도킨스이기에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책장을 덮고 나면 이제 '만들어진 신'과 작별을 고하고 '이성'이란 백신을 시급히 맞아야 할 것만 같다.
[이향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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