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中日과 좌충우돌..老외교인이 묻는 '대한민국 외교'

오수현 입력 2021. 1. 29.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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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외교가 있는가 / 한승주 지음 / 올림 펴냄 / 2만5000원
2012년 8월 이명박 대통령이 독도를 전격 방문했다. 여러 정치적 배경이 있었지만, 일본을 자극한 건 분명한 사실이다. 이후 일본은 독도 정책을 강경 노선으로 전환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한일 관계가 악화 일로로 치닫던 2019년 느닷없이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종료를 발표하며 한일 갈등은 물론 한미 갈등까지 초래했다.

대한민국 외교 역사의 산증인 한승주 전 외무부 장관이 저서 '한국에 외교가 있는가'를 냈다. 이 책은 전략 부재의 대한민국 외교를 향한 50년 외교인의 질문이다.

문재인정부 들어 한미동맹은 느슨해지고, 속이 뻔히 들여다보이는 미·중 사이 줄다리기 외교는 계속되고, 미우나 고우나 국익을 위해 협력 관계를 이어가야 할 일본과는 반상회에서 사이가 틀어진 이웃처럼 저열한 감정싸움이 계속됐다. 30년 가까이 강단에서 외교학을 가르쳤고, 문민정부에선 외무부 장관을, 참여정부에선 주미대사를 지낸 한 전 장관의 질문은 그래서 무겁게 다가온다. 과연 한국에 외교란 정말 있는 것인가.

이 책에서 한 전 장관은 대한민국을 둘러싼 열강인 미국, 중국, 일본과 한국 간 관계를 차근차근 짚어낸다.

한미 관계에 대해선 '동맹인가, 형제국인가', 한·중 관계에는 '종주국인가, 친구인가', 한일 관계를 놓고선 '이웃인가, 앙숙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이 같은 질문에는 현 한국 외교가 처한 현실이 고스란히 녹아들어 있다.

"한국은 정말 미국의 친구인가. 실상은 중국의 친구가 아닌가."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미 워싱턴 외교가에는 이 같은 의구심이 팽배하다. 한 전 장관은 한미 외교 핵심을 '의지(意志)'라고 말한다. 국제 환경은 변화하고 미국의 정책과 방침에도 허점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양국이 동맹을 유지하고 강화하겠다는 의지를 갖고 있는지가 향후 한미동맹의 향배를 가를 것이라는 얘기다. 결혼 이후 서로의 허물과 단점을 발견하면서도 상대를 신뢰하고 함께하겠다는 마음에는 변함이 없는 부부의 모습이 떠오른다.

한일 관계를 놓고선 특히 지도층 역할이 무척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러면서 양국 지도자가 '무엇을 하지 않느냐' 하는 것이 '무엇을 어떻게 하느냐'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중요하다고 말한다. 상대를 자극하는 소모적인 발언이나 정책은 자제하라는 것이다. 과거사 문제로 끊임없이 한국을 자극한 일본을 겨냥한 지적이지만, 지소미아 파기 선언·한일위안부합의 재검토 등으로 소모적인 논쟁을 일으킨 문재인정부도 귀담아 들어야 할 조언이다.

한국 외교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무거운 내용만 담고 있는 것은 아니다. 정상 외교의 숨은 에피소드를 읽다 보면 외교 현장의 공기와 분위기가 실감나게 다가온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 조지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이 한미정상회담에서 나눈 대화가 흥미롭다. 부시 대통령이 좋아하는 스포츠를 묻자, 잠시 생각하던 노 대통령은 요팅과 골프라고 답했다. 노 대통령이 서민대통령을 자처한 것을 잘 알고 있던 부시 대통령은 축구, 야구, 조깅과 같은 답을 기대했던 것 같았다. 의외라는 표정을 짓던 부시 대통령은 이내 표정을 바꾸며 좋은 취미라고 말했다. 약간 핀트가 안 맞으면서도 이어나가는 정상들의 힘겨운 대화가 재미있다. 알찬 내용 가운데 연도 표기 등에서 오타가 눈에 띄는 것은 아쉬운 부분이다.

[오수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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