층간소음 없는 평온한 하루가 되길
오래 전 미국에 있었을 때였다. 3층짜리 목조 건물의 꼭대기 층에 살았다. 집은 아담하고 예뻤지만, 꽤 부실했다.(여유 없는 학생이라 그나마도 감사했지만) 나무로 만든 바닥은 센 바람에도 끼익 소리를 냈다. 바닥이 먼저 무너질지, 이사 갈 날이 빠를지 궁금했을 만큼.
2층에 사는 주인은 시끄럽다며 종종 올라왔다. 저녁을 먹고 나면 TV도 틀지 않고 조용히 책만 봤다. 집의 구조적인 문제를 인정하지 않아 억울했지만, 그러는 사이 계약이 끝나 미련 없이 떠났다.
반대 상황도 겪었다. 이번엔 내가 아래층이었다. 주 특기가 점프인 잠 없는 윗집 아이들은 쉬지 않고 뛰었다. 아래층에서 들으니, 거짓말 안 보태고 머리가 쾅쾅 울렸다.(이 표현이 참 절묘하다는 걸 이때서야 깨달았다.)
많은 사람들이 층간소음으로 괴로움을 겪고 있다. 재택근무나 온라인 수업이 늘어 집에 있는 시간이 많으니 당연한 걸까. 여러모로 불안하고 신경이 곤두설 수밖에 없는 상황도 한몫 하리라 생각한다. 2020년 층간소음에 관한 전화 상담은 2015년에 비해 60% 정도 증가했다.
환경부는 지난 20일 ‘제4차 소음·진동관리종합계획’을 수립해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시행한다고 밝혔다. 소음과 진동으로 겪게 되는 국민들의 불편을 최소화하고자 하는 취지다. 학계·산업계 등과 환경보건위원회 자문을 거쳐 5년간의 계획을 수립했다.
지금까지 있었던 소음 관리체계와는 사뭇 다르다. 개개인의 건강 영향을 중심으로 관리기반을 마련하고, 사물인터넷, 인공지능 등을 활용하는 등 다양한 각도로 대책을 세웠다.
환경부가 세운 4대 전략은 다음과 같다. ① 건강영향 중심 소음·진동 관리기반 구축 ② 신기술을 활용한 소음·진동 측정 선진화 ③ 국민체감형 소음·진동 관리체계 구축 ④ 소음·진동 관리역량 강화다. 각각을 바탕으로 세부과제를 구성했다.
특히 내 관심을 끄는 건 두 가지다. 신기술을 활용해 소음·진동을 측정하고, 국민 생활유형을 반영한다는 점이다. 누구나 청각이나 민감한 정도가 다르고, 공간 내 구조적인 문제도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이야말로 사물인터넷과 인공지능 등의 기술을 활용해야 할 적기 아닐까.
물론 공사하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렇다 해도 집 앞 공사장에서 땅을 한 번 뚫을 때마다, 심장에서는 열 배로 진동을 느끼는 사람도 있다. 그래서 국민 생활유형을 반영해 차등을 둔 공사장 소음 관리제도가 더없이 반갑다.
사물인터넷으로 소음·진동을 재는 측정기기를 만들고, AI로 소음·진동 종류를 발생원부터 판별, 전송해 실시간 소음 지도를 개발하는 점은 기발해 보인다. 또한 도시의 대표적 소리는 보존하고, 소음은 자연의 소리(바람 소리, 낙수 소리) 등으로 차폐해 음풍경(soundscape)을 개선하는 점 또한 기대된다. 우리 동네는 어떤 음풍경을 지니게 될까.
지자체 소식도 들린다. 경상남도에서 25일 층간소음 입주민을 위해 환경분쟁 무료 중재 서비스를 강화한다고 했다. 층간소음 제로 꾸러미를 보급하고 층간소음 예방 안내 문자 서비스를 하는 등 세부 사항도 준비했다.
우리가 보는 동네는 겉은 평온해 보여도 안에서는 굉음을 견디고 있을지 모른다. 현재 우리 집도 다르지 않다. 앞뒤에서 공사장 소음이 가득하다. 더군다나 집에 종일 있으니, 세상에 이토록 소음이 많은 줄 새삼 깨달았다.
모쪼록 지속적이고 실용적인 이 방안들이 조속히 시행되면 좋겠다. 소음으로 인한 고통의 시간이 얼마나 길고 괴로운지 알기 때문이다. 물론 서로를 배려해 보는 마음도 중요하다. 누군가의 스스럼없는 행동이 다른 누군가에겐 끔찍한 소음으로 들릴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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