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생각]정부 중장기계획, 미래 비전에 공감대 형성해야
[서울=뉴시스] 신축년 새해가 밝았다. 지난 한해 전 세계를 혼란에 빠뜨린 코로나 사태는 2021년에도 현재진행형이다. 이에 새해를 맞이하며 예측불허의 미래에 대한 불안과 새로운 희망이 교차하고 있다.
해가 바뀌면, 누구든지 희망을 품고 한 해 동안 이루고자 하는 계획과 목표를 세우기 마련이다. 하지만 불확실성의 변화가 큰 시기 개인과 기업 등 많은 경제 주체들이 계획·전략 수립에 적지 않은 어려움을 토로하고 있다. 정책 환경의 급속한 변화에 따라, 정부가 기존에 추진하던 다양한 분야 정책과 중장기계획 역시도, 계획 수립 조건을 수정하거나 보완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정부는 변동성(volatility), 불확실성(uncertainty), 복잡성(complexity) 및 모호성(ambiguity) 속에서 변화가 큰 미래사회 정책 수요 분석을 바탕으로, 합리성을 확보한 중장기계획을 수립하고, 집행할 의무가 있다. 이에 5~10년 또는 20년 시계를 고려한 분야별 중장기계획을 수립하고 추진하고 있다.
수립된 중장기계획을 바탕으로 구조적이고 중장기적 관점에서 우리나라 경제사회시스템이 나아갈 가치 지향점과 비전을 제시하고, 예산 배분과 세부 과제 추진 등의 기준을 제공한다. 하지만, 분야별 많은 중장기계획이 수립되어 이행되고 있으나, 실효성은 낮다는 평이 다수이다.
부처별 백화점식 전략수립 및 추진으로 중장기계획의 개수가 많아지면서, 개별 계획의 영향력은 오히려 감소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지금까지 중장기계획을 수립하는 데 기반한 많은 전제조건 및 제도적 경로의존성이 향후 전개될 '뷰카(VUCA) 시대'에서는 통용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예측불허 미래 시대의 적응 및 발전전략은 누구도 시도해보지 않은 방법과 이전과 다른 새로운 길을 모색함으로써 구체화할 수 있다. 아무리 좋은 계획과 목표라 하더라도 실현가능성에 대한 근거가 불명확하고, 제대로 실행되지 않으면 국민의 공감을 충분히 얻는 데 한계가 있다. 계획 내 제시한 미래 모습이 장밋빛 청사진에 그칠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2020년 국회미래연구원은 20여명의 과학기술정책 전문가로 구성된 워킹그룹을 바탕으로, 우리나라 과학기술 부문 중장기계획 수립 및 추진체계 상 정책적 문제를 발굴하고, 정책과제를 제안하고자 시도하였다.
이에 세 가지 주요 정책 문제를 도출할 수 있었다. 첫 번째는 '정권 중심' 정책변동에 깊이 의존하고 있어, 중장기계획 추진의 연속성을 보장받지 못한다는 점이다. 이는 주요 중장기계획이 정치적인 이유로, 또는 정권에 따라 일회성으로 수립되는 경우가 다수임을 시사하며, '증거(근거) 기반' 정책변동의 한계를 보여준다.
합리성과 객관성이 확보되지 않은 채, 국가 중장기전략이 정권 교체기 높은 발생률과 소멸률을 보인다면, 장기적으로 정부의 중장기 미래비전과 정책에 대한 신뢰는 약화될 가능성이 높다. 이는 선호하는 미래 실현을 위한 경제사회 및 시민사회의 자발적 참여를 제한하게 된다.
두 번째 정책 문제는, 다수 부처가 상호연계되는 국가 연구개발 사업 및 중장기 과학기술 정책추진에 있어, 부처 간 연계 및 조정과정이 미흡하다는 점이다. 분야별 중장기계획이 난립하는 이유 중 하나로서, 개별 중장기계획 간 내용적 유사·중복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정책대안 수립이 체계적이지 못하며, 부처 간 장벽이 크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이에 여러 중장기계획 간 논리적 연계성이 약하고, 계획 간 정합성·상호보완성이 빈약한 문제가 고착화되어가고 있다. 논리적 연계성이 부재한 파편화된 미래 상(image) 설정은 국가 중장기 선호미래 실현을 위한 거시적 전략 및 로드맵 파악을 제약한다. 또한, 이는 다양한 주체간의 미래 모습에 대한 공통된 합의 형성을 제약할 수 있으며, 한정된 자원의 효율적 활용을 어렵게 만든다.
세 번째 정책 문제는 중장기계획의 경직성 및 낮은 자율성에 따라, 미래 적응력 강화에 한계가 있다는 점이다. 정책환경이 급변하는 경우, 종전의 전제조건과 정책환경 분석틀을 민첩하게 수정 및 보완할 필요가 있다. 최근 기술변화 주기가 매우 단축되고 환경변화가 복잡다변화됨에도, 중장기계획 수립의 근거 법령은 변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계획수립의 주요 준거기준이 선형적 모형에 바탕을 두고 있어, 과거로부터 현재까지의 변화추세가 미래에도 계속된다는 가정에 깊이 의존하고 있다. 이 같은 제도적 관성은 발견되지 않은 새로운 목표를 설정하고, 새로운 방법으로 미래환경 변화에 기민하게 대응하는 데 한계를 가진다.
VUCA 환경 속 경제사회시스템의 적응력 강화를 위한 전략 수립 방법은 현 체계 안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기존 체계와 준거기준에서 벗어나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이에 국가 중장기계획 수립에 있어 관련 정부부처 및 이해관계자들 간 합의형성 노력을 제고시킬 필요가 있다.
미래를 정의하고 대응전략을 마련하는 과정을 일부 정책결정자들에 의한 폐쇄된 구조('Speaking-truth-to-power' 접근)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이해 및 선호 충돌을 기본 전제조건으로 인식할 필요('Arena' 접근)가 있다. 수립된 중장기계획이 하위 계획과 세부 정책추진의 가이드라인으로서 받아들여지기 위해서는, 미래 비전에 대한 신뢰와 공감대 형성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에 따라 중장기계획 수립과정 내 다양한 주체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상호 의견 차이를 조정해 나가는 참여적, 협력적 거버넌스 구축이 필수적이다. 이를 바탕으로, 상호 합의된 미래 모습으로의 이행을 뒷받침하는 전략 수립이 이뤄질 필요가 있다.
그리고 정권 중심 정책변동에서 벗어나 증거 기반 정책변동 관리로의 이행 노력을 체계화할 필요가 있다. 미래 불확실성과 변동성이 큰 환경에서는, 정책추진에 발생하는 한계점과 실패 경험을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이를 근거로 삼아 다음 기획 단계에 반영하는 정책학습(learning) 역량 형성이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정교하고 치밀한 정책과정 없이 정치적 임기응변으로 국가 중장기전략을 수립하면, 정책학습 역량 강화는 지체될 수밖에 없다. 이에 정책 분석과 평가 내용의 환류체계를 실질화함으로써, 정책 기획의 합리성과 객관성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 정책학습 과정에서 축적된 데이터들은 중장기전략 기획, 결정 및 집행과정 상 발생하는 갈등 해결에 기여할 수 있으며, 정책의 질적 개선을 도모할 수 있다.
더불어 정책학습 역량을 바탕으로, 환경변화에 따라 민첩하게 새로운 기준(new normal)을 적용하고 중장기계획 내 목표와 전략을 지속적으로 수정 및 보완하기 위한 정책적 노력을 실질화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노력을 바탕으로, 파편화된 정부 중장기계획 간 연계성을 높여 나갈 필요성이 있다. 논리적 연계성을 확보한 중장기계획 간 관계 설정은 바람직한 미래로의 이행을 위한 집합적 노력을 견인한다. 그러므로 다양하게 그려지는 복수(plural)의 미래 시나리오 설계를 바탕으로, 중장기적 계획 로드맵과 발전전략이 도출될 필요가 있다. 이를 바탕으로, 정책추진의 일관성과 지속성을 확보해나갈 필요가 있겠다.
코로나 사태를 계기로, 우리는 'VUCA 시대'로 특징지어지는 환경변화를 체감할 수 있었고, 개인과 사회에 미치는 영향의 깊이와 범위가 이전과 확연히 다름을 확인하였다. 불확실성이 높은 시기일수록, 국가가 추구해야 할 목표와 가치를 결집할 중추적인 기제가 필요하다.
이러한 기능을 하는 것이 바로, 국가 중장기계획과 중장기 발전전략이다. 그러므로, 국가시스템의 미래 적응력 강화를 위해서는 국가 미래 비전과 가치에 대한 공감대 형성이 매우 중요하다.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한 정부 중장기계획은 허황된 구호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 기존의 사고와 행동양식을 과감하게 전환하고 제도혁신을 이행함으로써, 새로운 미래를 실현하는 계기를 마련할 때이다.
여영준 국회미래연구원 혁신성장그룹 부연구위원(yjyeo@nafi.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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