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소리 "가족이니까 그냥 넘긴 것들, 진정한 사과가 많은 것을 바꾼다"[플랫]

플랫팀 twitter.com/flatflat38 2021. 1. 29.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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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완벽한 척하는 가식덩어리.

27일 개봉한 영화 <세자매>에서 둘째 미연을 소개하는 표현이다. 그의 삶은 흠결 하나 없이 완벽해 보인다. 미연은 잘나가는 교수 남편을 둔 두 아이의 엄마다. 교회에서는 집사이자 성가대 지휘자를 맡고 있다.

그는 항상 반듯하다. 머리는 늘 하나로 곧게 묶는다. 귀에는 진주 귀걸이를, 목에는 십자가 목걸이를 건다. 남편의 외도가 의심돼 감정이 격해질 만한 상황에서도 미소를 띤 채 눈썹만 치켜올려 표현하며 아무 일 없는 듯 군다. 갈등과 문제는 무엇이든 외면하고 보는 미연의 모습은 어린 시절 경험에서 비롯됐다. 그는 가족 내에서 겪었던 고통과 상처, 폭력을 직시하는 대신 내면에 숨기는 연습만 하면서 커왔다. <세자매>의 이승원 감독은 영화 속 인물들의 모습에 대해 “결국 모든 걸 관통하는 한 가지는 정작 자신은 그 안에 감추려고 하는 것”이라고 말했는데, 미연은 그 설명에 딱 부합하는 인물이다.

미연은 배우 문소리가 연기했다. 문소리는 <세자매>의 주연배우이자, 공동 제작자이기도 하다. 지난 19일 배우 문소리를 화상으로 인터뷰했다.

“미연은 실제 저와는 매우 다르지만, 저의 내면 중 한 부분에 비슷한 구석이 있죠.”

영화 <세자매>에 대한 문소리의 애정은 그 어느 영화보다도 각별하다. 세 여성이 주연인 데다 가벼운 오락영화는 아니라는 점이 투자의 장벽이 됐다. 영화진흥위원회 제작지원작 심사에서도 떨어졌다. 상황이 순조롭지 않을 때 공동 제작자 제의가 왔고, 문소리는 바로 수락했다. 리틀빅픽쳐스 제공

문소리의 종교는 불교다. 이번 작품 이전엔 교회를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다고 했다. 미연에 대해 알기 위해 미연의 삶의 기반이자 모든 인간관계가 모여있는 ‘교회’라는 공간부터 먼저 이해해야 했다. 문소리는 영화 속에서 미연의 언니·동생 역할을 한 김선영·장윤주 배우가 실제로 다니는 교회를 따라가보기도 하고, 혼자서 몇 달간 동네 교회도 다녔다. 그러면서 미연의 삶을 온전히 받아들이기 시작했는데, 그 경험이 문소리에게는 힘이 들었다.

“미연이처럼 스스로 닦달하는 것. 그런 면이 제가 미연과 좀 닮아있는데, 제가 썩 좋아하는 부분이 아니에요. 사실 좀 내보이기 싫고, 숨기고 싶은 부분이거든요. 이 인물이 누군지 핵심을 분명 알겠는데, 너무 잘 알아서 짜증나는 심정이었죠. 그래서 맘을 좀 ‘끌탕하다가’(속을 태우고 고민하다가) 캐릭터랑 만났어요.”

<세자매>에 대한 문소리의 애정은 그 어느 영화보다도 각별하다. 작품성이야 의심할 바 없지만, 세 여성이 주연인 데다 가벼운 오락영화는 아니라는 점이 장벽이 돼 초반에 투자가 잘 안 됐다. 영화진흥위원회 제작지원작 심사에서도 떨어졌다. 초반에 제작상황이 순조롭지 않을 때 공동 제작자 제의가 왔고, 문소리는 바로 수락했다.

영화 <세자매>에서 둘째 미연(문소리·왼쪽)은 갈등이 생겨도 외면하고 아무 일 없는 듯 군다. 영화 속 세 자매 모두 어린 시절 가족에게 받은 상처를 마음 깊이 품고 있다. 리틀빅픽쳐스 제공

“저는 <세자매>의 이야기가 결국은 남의 이야기가 아니고 내 이야기로 다가갈 수 있는 힘이 있다고 생각해요. 어떤 이야기를 영화나 드라마로 만들 때 굉장히 극적인 구성을 많이 하잖아요. 사람 몇명이 죽어나가기도 하고, 때로 지구까지 폭파되고요. 그런데 저희는 그와 반대의 이야기죠. 시작이 되는 사건은 별일이 아닐 수 있는데 그것들이 사람 맘속으로 들어와서 헤집어 놓는 순간, 한 사람이 이렇게까지 갈 수 있다는 것이잖아요.”

영화 속에서 첫째 희숙(김선영)은 자신의 잘못이 아닌 일에도 연일 “미안하다” “괜찮다”며 머리를 조아리고, 둘째 미연은 가식이 일상인 삶을 살고, 셋째 미옥(장윤주)은 슬럼프에 빠져 365일 술만 먹으며 다정한 남편을 막 대한다. 얼핏 보면 ‘왜 저러고 사나’ 싶은 생각이 든다. 하지만 이미 다 잊고 지냈다 생각했던 어린 시절 가족과의 일화들을 들여다보는 순간 세 자매의 삶이 이해가 된다. 가부장적인 한국 사회에서 가족 구성원들은 의도치 않게 다른 구성원에게 상처를 줄 수 있고, 그것은 삶에 지속적인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세자매>를 보면 가족에 대한 이야기가 하고 싶어진다. 배우를 포함한 영화 스태프들은 다른 촬영지로 이동하는 차 안에서 가족 이야기를 수시로 나눴다.

‘완벽한 척하는 가식덩어리’ 27일 개봉한 영화 <세자매>에서 둘째 미연을 소개하는 표현이다. 그의 삶은 흠결 하나 없이 완벽해 보인다. 미연은 잘나가는 교수 남편을 둔 두 아이의 엄마다. 교회에서는 집사이자 성가대 지휘자를 맡고 있다. 이승원 감독은 영화 속 인물들의 모습에 대해 “결국 모든 걸 관통하는 한 가지는 정작 자신은 그 안에 감추려고 하는 것”이라고 말했는데, 미연은 그 설명에 딱 부합하는 인물이다. 리틀빅픽쳐스 제공

문소리는 “스태프들끼리 ‘저희집은요’ ‘저희 아버지는요’ 하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참 많이 나눴다고 하더라”면서 “식구들은 아무도 기억 못해도 당사자에게는 굉장히 트라우마로 남아있는 기억들도 있었다”고 했다. 또 “저희 아버지도 지금은 모든 집안일을 도맡아 하실 정도로 변하셨지만, 예전에 저 역시 가부장적이고 굉장히 엄격한 문화 안에서 컸다”면서 “작품을 찍으며 참 여러가지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갈등을 말하는 것은, 치유의 시작이다. 문소리는 “영화를 보고 나면 가족이기 때문에 그냥 넘어가고, 그러려니했던 것들에 대해 진정한 사과가 굉장히 중요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며 “가족 간의 진정한 사과는 많은 것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누군가에게는 자연이, 누군가에게는 종교가 치유하고 견뎌내게 하는 힘이 되겠지만 저는 ‘관계’만큼 치유의 힘이 큰 것은 없는 것 같아요. 그 안에서 치유받기도 하고, 위로받기도 하니까요.”


이혜인 기자 hyein@kh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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