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여울의 언어정담] 당신이 잘 있다면, 저도 괜찮습니다

송영규 기자 skong@sedaily.com 입력 2021. 1. 29.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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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감사·우정·배려와 공감의 공동체
치유하고 치유받는 서로가 있기에
지금 이 순간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정여울 작가
[서울경제]

인스타그램에 가끔 나의 안부를 올릴 때가 있다. 지인들에게 주로 내가 읽고 쓰는 이야기를 들려드리는 소박한 자리인데, 가끔 나도 모르게 감정이 강하게 표출될 때가 있다. 내가 겪은 일을 시시콜콜 말하지는 못하지만, 가끔 아주 간단한 몇 줄의 글을 쓰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가라앉는 치유적 효과가 있다. 꼭 직접적으로 내가 겪은 일의 슬픔을 토로하지 않아도, 아주 간접적인 마음 상태의 묘사만으로도 내 마음의 상태가 독자에게 전달될 때가 있다. 예컨대 하늘이 너무 아름다운 날. 그 하늘만 봐도 모든 걸 다 용서할 수 있을 것만 같은 날. 그 푸른 하늘의 감동을 함께 나누고 싶어 사진 한 장과 이런 짧은 글을 올렸다. “하늘만 봐도 괜찮아질 것 같은 이런 날. 이 하늘만 있어도 다 괜찮을 것 같은 그런 하늘이었어요. 오늘은 몸과 마음이 모두 힘든 날이었는데 이 하늘을 바라보니 다 괜찮을 것만 같았습니다. 당신도 나와 같은 하늘을 보며 그냥 다 괜찮아지기를.”

정말 새파란 하늘을 함께 나누고 싶은 마음이 핵심이었고, 이제 나는 많이 괜찮아졌다는 메시지가 핵심이었는데, 여기저기서 기다렸다는 듯이 안부 문자가 날아들었다. 그 짧은 글만 봐도 내가 얼마나 힘든지 알 수 있을 것 같다고. 내가 얼마나 힘든 건지, 이제는 정말 괜찮은 건지. 꼬치꼬치 사유를 캐묻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정말로 괜찮은 거니’와 ‘따스한 위로’만이 가득했다. 그 순간, 내가 얼마나 커다란 사랑 속에 잠겨 살아가는 지 깨달았다. 많이 힘든 거니, 내가 있잖아. 그 모든 메시지를 다 모아 보면 그런 뜻이었다. 나는 이제 함부로 아플 수도 없겠구나. 이 사람들 때문에,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 때문에 함부로 힘들 수도 없구나. 정 힘들 때는 조용히 혼자 몰래 앓고 가뿐히 일어나야겠구나. 이 깨달음은 기쁘고도 달콤했다. 나를 아끼는 사람들에게 걱정을 끼칠까 봐 함부로 아플 수도 없는 내 처지가 무척 행복했다.

사람들에게 걱정을 끼친 것이 너무 죄송했다. 그리고 그 죄송한 마음조차 내 안의 커다란 사랑임을 깨달았다. 사랑이란 이렇다. 누군가 혹시나 아플까 봐, 누군가 혹시나 슬플까 봐 항상 곤두서 있는 마음. 그 사람을 한없이 걱정하는 마음이 결코 아깝지 않은 마음. 내가 사랑하는 누군가를 하염없이 기다려도 힘든 지조차 모르는 마음. 내가 사랑하는 누군가가 조금이라도 아픈 것 같으면 도무지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 마음. 그런 따스한 마음의 온도와 가녀린 배려의 손길이 모여 우리의 오늘을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독일의 극작가 브레히트는 노래한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내게 말했다/당신이 필요해요/그래서 나는 조심한다/걸어가는 길 위를 살피며/ 빗방울이 나를 죽일까 봐 두려워하면서.”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해, 빗방울에 압살 당하지 않기 위해 빗방울조차 피해야 하는 사람은 얼마나 행복한가. 당신이 필요하다는 말로 나를 옭아매는 사랑, 그 사랑은 너무도 달콤한 구속이다. 빗방울이 나를 죽일까봐 비조차 마음 놓고 맞을 수 없는 사람. 그것이 사랑받는 사람의 눈부신 축복이 아닐까.

심리학을 공부하며 나는 매일 조금씩 더 가까이,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향해 걸어가고 있는 느낌이다. 그 길이 아무리 험난할지라도, 그 길이 아무리 끝없이 기나긴 여정일지라도. 나는 포기하지 않을 작정이다. 우리를 끝내 치유하는 감정, 그것은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순간이 얼마나 소중한 지를 알고 있는 우리 자신의 삶에 대한 사랑이다. 감사와 우정과 배려와 공감이 만들어낸 그 아름다운 이야기의 공동체, 공감의 공동체 속에서 나는 한없이 평화롭다. 오늘의 모든 고통을 잠시 잊을 수 있다. 나와 함께 해주는 당신만 있다면. 오늘 이 세상의 아름다움을 함께 숨쉴 수 있는 당신만 있다면. 나와 같은 하늘을 바라볼 수 있는 당신만 있다면. 나 없는 곳에서 당신이 잘 있다면, 저 역시도 잘 있습니다. 당신만 괜찮다면, 저도 괜찮습니다.

/송영규 기자 skong@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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