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로 끊긴 할머니의 한글공부, 다시 이어드려야지
<span style=\"color: #278f8e;\">쑥국샘의 사람꽃밭 (하)</span>
20년 아파트 생활 종지부 찍고
시골냄새 확 풍기는 딴세상으로
뒷집 할머니와 알콩달콩 친해져
경로당에서 한글 배우는 할머니
한글 공책에 어여쁜 글씨 가득
'공부하기 딱 좋은 나이인데'
중단된 공부 계속하시게 해야지
▶ 작은 마을에서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 필자 송숙은 군산푸른솔초등학교 교사이자 두 아이의 엄마다. 별명은 쑥국선생님. 반 아이들이 1년 동안 쓴 시들을 엮어 어린이시집 <시똥누기>, <분꽃 귀걸이>, <호박꽃 오리>, <질경이 씨름>, <감꽃을 먹었다>를 냈고, 아이들과 화단을 가꾸며 생겨난 유쾌 발랄하고 뭉클한 이야기들을 모아 <맨드라미 프로포즈>를 냈다.

2020년 6월19일. 나는 지금의 우리 집으로 이사를 왔다. 언제부턴가 아파트가 답답하고 재미없어지기 시작한 나는 주택으로 가고 싶었다. 마당 있는 집에서 맨드라미, 봉숭아, 분꽃, 족두리꽃을 심고 텃밭도 가꾸며 살고 싶었다. 밤에는 불장난도 하고 싶었다. 그러나 마음뿐, 쉽게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런데 엄두를 내야 할 일이 생겼다. 살고 있던 아파트 전셋집을 갑자기 빼줘야 할 일이 생긴 거다. ‘그래, 이참에 주택으로 가자’ 맘먹었다. 그런데 적당한 집 찾기가 쉽지 않았다. 집도 맘에 들어야 했고 집값도 감당할 수 있는 가격이어야 했다. 불장난을 하려면 집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곳도 피해야 했다. 찾다 찾다 못 찾고 다시 아파트를 구해야 하나 낙심하던 차에 마침내 작고 아담한 집을 찾았다. 그리고 이사를 왔다. 20여년 아파트 생활에 종지부를 찍는 역사적인 날이었다.
아파트 생활을 마치고 시골로 가다
내가 이사한 이곳은 시내에서 가까운, 그러나 마을 어귀의 팽나무를 끼고 들어서면 갑자기 시골 냄새가 확 풍기는 딴 세상 같은 마을이다. 논과 밭이 있고, 위쪽엔 마을을 굽어보는 작은 교회당이 있고, 산에선 산비둘기·호랑지빠귀·소쩍새·뻐꾸기가 우는 작고 조용한 마을. 가끔씩 개장수, 고물장수, 젓갈장수가 떠들썩하게 다녀가는 재밌는 마을. 성격이 툴툴한 이장님과, 이장님과 똑같이 생긴 앞니 빠진 노모와, 하양·보라 꽃이 핀 도라지를 삼태기에 한가득 담아 염소 먹이로 주는 앞집 아저씨, 작은 오토바이를 탈탈탈 타고 다니는 뚱뚱한 윗집 아저씨와, 술만 마시면 허공에 대고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세상을 향해 삿대질을 하는 맨 윗집 아저씨가 사는 마을. 그리고 귀가 어두운 구순의 할머니가 홀로 사시는. 그래, 나는 지금부터 할머니 이야기를 해야겠다.
할머니는 우리 집 바로 뒤에 사신다. 할머니를 처음 뵌 건 집을 계약하고 들락거리기 시작하던 4월 초였다. 나는 이사 오기 전부터 늦게 퇴근하시는 집주인의 양해를 구하고 퇴근하면 잠깐잠깐 들러 잔디마당을 점령해가는 토끼풀과 밭의 풀을 뽑았다. 그날도 풀을 뽑고 집에 가는데 평상에 앉아 계신 할머니와 눈이 마주쳤다. 웃으며 인사를 하는데 표정 없는 눈으로 날 바라보시는 할머니, ‘흠, 인상 좋은 할머니는 아니군’ 그게 할머니에 대한 첫 느낌이었다. 하지만 나는 할머니께 조금씩 말을 걸었고 우린 시나브로 가까워졌다.
한번은 집에 가보니 우리 밭 한쪽의 풀을 싹 매놓으셨다. 밭에 뭘 심었으면 풀을 매야지 허구헌 날 마당에서 토끼풀만 뽑냐 하시더니 보다 못해 매셨다. 만날 허리 아프고 다리에 힘이 없다면서 할머닌 밭에만 오면 괴력이 생기시는지 어떤 날은 엄나무 가지를 싹둑 잘라놓고, 콩 심으려는데 돼지감자 싹이 캐도 캐도 나와서 죽겄다 하시면서도 열 번이나 캐내고. 그 많던 질경이를 싹 뽑아 씻어 널고. 우리 집 뒤에 난 풀도 매시더니 이젠 밭의 풀까지. 나는 그런 할머니께 딸기를, 팥빵을, 두유를 사다 드렸고, 할머니는 나를 불러다 뜨거운 호박죽을 먹이시고 부침개를 먹이셨다. 어떤 날엔 두릅을 땄다며 풀 뽑는 내게 와 주시고는 한 손으론 지팡이를 한 손으론 아픈 허리를 잡고 천천히 몸을 돌려 가시기도 했다. “오늘 아들 집에 갔다 왔거든. 내가 아직 이사도 안 온 양반이 이렇게 저렇게 나헌티 잘헌다 했드니 어머니한테 잘허는 분이믄 저도 잘해야지요 허믄서 냉동실서 이걸 꺼내서 주라고 혔어. 데친 거니까 녹혀서 마늘, 소금 늫고 들기름 떨어뜨려서 무쳐 먹어” 하시며 ‘깨잎’과 ‘엄나무순’이라고 적힌 봉다리를 건네시기도 했다. 그런 날 집에 돌아와 누우면 그곳에서의 일들이 꿈처럼 느껴졌다. 마당의 풀도 화단의 꽃들도 뻐꾸기 소리도, 살구나무, 탱자나무, 뽕나무, 할머니의 밭, 호박죽도 모두 딴 세상 일들인 것만 같았다. 나는 매일 잠시잠시 딴 세상에 다녀오는 것 같았다. 그렇게 나는 딴 세상 같은 그곳으로 이사를 갔다.

할머니와 할아버지, 그리고 입원
초여름이 시작되던 어느 날, 할머니는 우리 마당의 잔디 씨앗이 영글면 좀 받고 싶다 하셨다. 할머니네 마당은 시멘트로 발라져 있는데 잔디 씨앗이 왜 필요하실까 했더니 할아버지 산소에 뿌리고 싶다 하셨다. 그리고 얼마 후 큰아드님과 막내아드님이 오셨다. 산소에 떼가 벗겨져 다시 입혔는데 비가 계속 안 와서 잔디에 물 주고 그늘 만들어준다며 검은 비닐 같은 것을 들고 길을 나서셨다. 그리고 며칠 후, 족두리꽃을 심고 있는데 할머니가 오셨다. 할머닌 바닥에 앉아 작은 플라스틱 그릇에 씨앗을 받기 시작했다. 꽃을 심고 할머니께 다가가 씽긋 웃으며 “할아버지 산소에 뿌리시게요?” 했더니 “응” 하고 대답하신다. 돌아가신 할아버지 산소에 잔디를 조금이라도 더 보태주고 싶은 할머니. 보는 내 마음이 시큰하다.
그로부터 석 달 후, 할머니의 따님께서 아버지 추도예배를 드렸다며 ‘오봉’(할머니는 쟁반을 그렇게 부르셨다)에 시루떡과 전을 가져오셨다. 다음날 할머니께 그릇을 드리러 갔더니, 그날 잠을 자는데 누가 오른쪽 허벅지부터 종아리까지 슥 쓰다듬더란다. 놀라서 “이게 누구여!” 외치는 소리에 따님도 놀라 깨서 “엄마, 왜 그래?” 그랬다는데 거친 손길이 딱 할아버지 손이었다고. 누구 손이었겠냐고. 젊어서 관절염을 앓는 할머니를 위해 몇 개월간 제피나무를 끊어다 토끼를 고아 먹여 관절염을 낫게 하셨다는 할아버지가 제삿날 다녀가신 모양이다. 어제 밭에 퇴비를 뿌리다 허리를 두 번 ‘끔벅하셔서’(삐끗하셔서의 사투리) 너무 아파 뭘 못하시고 식사도 제대로 못하셨다는 할머니. “할머니, 죽 좀 사다 드릴까요? 바나나 사다 드릴까요? 팥빵 사다 드릴까요?” 해도 먹을 거 있다며 됐다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오늘 밤 다시 오셔서 할머니 허리를 좀 만져주시고 가면 좋겠다고 생각하다 나는 그만 애잔해졌다. 할머닌 그 후로 3주 동안 입원하셨고 퇴원하시고도 기력이 떨어져 막내아드님 댁에서 며칠 지내셔야 했다. 저녁 설거지를 하며 습관처럼 불 꺼진 할머니 집을 확인하는 일은 참 쓸쓸한 일이었다.
드디어 할머니가 돌아오셨다. 집 떠나신 지 장장 26일 만에 오셨다. 내가 마당에서 토끼풀 뽑고 있는데 오셨다. 아드님이 차에서 내리는 걸 보고 발딱 일어나 할머니께 갔다. 차 조수석 쪽으로 가 안을 들여다봤다. 안 계신다. 뒷문을 들여다봤더니 할머니가 나를 보시곤 고개를 끄덕이며 웃으신다. 히잉.ㅠ 나는 차 문을 얼른 열었다. 분홍 가을 윗도리와 짙은 남색 바지를 곱게 입고 앉아 계시는 할머니. 나는 할머니를 부축해 집으로 모셨다. 아드님이 가시고 어둑해진 저녁. 대문이 열려 있어 들어가 할머니를 불렀다. 할머니는 혼자 저녁을 드시고 계셨다. 나는 할머니를 뒤에서 안으며 보고 싶었다고, 몸은 좀 어떠시냐고 물었고 할머니는 허리뼈에 금이 갔었다고, 막내며느리가 반찬을 만들어 싸주었다고 하셨다. 나는 할머니 등을 쓰다듬으며 며느님이 참 착하시다고, 드시고 싶은 거 있음 언제든 말씀하시라고, 무슨 일 있음 전화하시라고 전화번호를 크게 써드리고 왔다. 그리고 그날 밤, 설거지하며 할머니의 불 켜진 창문을 보고는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할머니 아직 안 주무시네.” 잠시 후 불 꺼진 창문을 보고는 “할머니 이제 주무시네” 했다. ^^

할머니의 겨울
도끼 사러 집 나서는 길, 할머니께 들러 혹시 뭐 필요한 거 없냐 여쭈어봤다. 나가는 김에 사오겠다고. 언제나처럼 필요한 거 없다 하셨고 이따 호박죽 끓일 거니까 와서 먹기나 하란다. “근디 어디 갈라고?” “네, 도끼 사러요.” “도끼는 뭣 허게.” “두꺼운 장작 있음 패게요. 저 불장난할 때 쓰게.” “지랄~” “ㅎㅎㅎ 다녀올게요~.” 도끼도 사고 톱도 사서 돌아오니 할머니가 아궁이에 불을 지피고 계신다. 오라고 해서 갔더니 호박죽을 퍼 주신다. 예전에 끓여 주신 노란 호박죽을 생각했는데 오늘은 팥을 많이 넣어서 색깔이 좀 거무죽죽하다. 그런데 부엌방이 너무 차가워. 냉골이야. 나는 너무너무 추워서 호들갑을 떨며 “할머니 너무 추워요. 덜덜덜. 왜 보일러 안 때요. 저는 이렇게 추운데 할머니는 안 추워요????” 방석에 앉아 호박죽을 먹으며 맨바닥에 앉아 계신 할머니께 덜덜거렸더니 웃음이 나는지 빵긋 웃으시고는 냉장고에서 물김치를 꺼내 주신다. 그런데 살얼음이 끼어 있다. 한입 먹고는 “아이고 추워~~~ 할머니 보일러 꼭 때요. 알겠죠!!!!!” 나는 빨리 일어나려고 정신없이 한 그릇 해치웠다. 아궁이에 불을 때고 아궁이 딸린 방에서 주무시던 할머니는 그 후 강추위가 닥치자 밖에서 불 때는 게 힘들다고 보일러를 틀어 보일러가 들어오는 방에서 주무셨고, 덕분에 부엌방도 따뜻해졌다. 부엌방이 따뜻해지니 내가 살 것 같았다.


할머니의 한글 공부
추적추적 겨울비 내리는 늦은 오후, 할머니께서 우두커니 평상에 앉아 계시기에 잠시 들렀다.
“할머니, 바람 쐬러 나오셨어요?” “응, 아궁이에 불도 때고. 며칠 안 땠더니 방이 써늘혀서. 거기서 안 자도 때야겄드라고.” “네, 비가 일요일까지 온다네요.” 아랫마을 굴뚝에 피어오르는 연기를 바라보며 이 얘기 저 얘기 하다가 귤 먹고 가라시기에 방으로 들어갔다. 할머니께서 주시는 귤을 오물오물 까먹다가 “맞다, 할머니 경로당에서 한글 배우셨다고 했죠.” 예전에 할머니께서 했던 말씀이 떠올라 물어봤다. 할머니는 그때 처음으로 한글을 배워 이름을 겨우 쓸 줄 알게 되었는데 코로나 때문에 선생님이 못 오셔서 그것마저도 까먹었다고 하셨다. “혹시 공부하시던 공책 있어요? 저 그거 보고 싶어요. 어딨어요?” “응, 저짝 방 가믄 테레비 옆에 큰 가방 있어. 그거 들고 와.” 그렇게 해서 꺼내본 할머니의 공책. “가구, 가지, 고구마. 와, 할머니 글씨 진짜 귀엽게 잘 쓰시네요. 하하하 넘 귀여워요. 아이고, 근데 이게 뭐예요. 구두가 나중엔 고두가 됐네요. 호호호~. 오, 받아쓰기 공책도 있네. 와~ 할머니 받아쓰기 시험 100점 맞았네요?” 할머니는 내가 말할 때마다 눈이 감아지게 웃으신다. “이건 아드님 이름인가 봐요. 이게 큰아들? 이건 작은아들? 이건 따님들 이름이고요?” “으응.^^” “와. 한 권을 다 쓰셨네. 공부 많이 하셨네요.” “나이가 먹어서 머릿속에 잘 들어가도 안혀.” 또 다른 공책을 펴보니 표지 안쪽에 ‘코로나19 극복을 위한 비대면 수업 가정학습지’라고 씌어 있다. 안쪽엔 할머니 이름과 숫자 0에서 5까지, 그리고 아드님의 이름이 반복해 씌어 있었다. “근데 할머니 하나도 안 하셨네요? 숙제를 이렇게 안 하면 어떡해요~.” 나는 할머니를 향해 곱게 눈을 흘기다가 노래 가사가 적힌 종이를 발견했다. “어, 노래도 배우셨나 봐요. 이 노래 기억나요? 야이~야이~야 내 나이가 어때서~ 공부하기 딱! 좋은 나인데에에에~하하하.”
이 공책 저 공책 펴가며 혼자 웃고 떠들어대는 나를 보고 입이 함지박만해진 할머니, 귀여운 할머니.^^ 코로나로 끊긴 할머니의 한글공부. 내가 다시 이어드려야겠다.
송숙 군산푸른솔초등학교 교사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 정은경 청장이 가장 우려하는 부작용, ‘아나필락시스’는 무엇?
- 주먹밥 받으러…추워도 섭니다, 무료급식 ‘긴 줄’
- 개신교계 “한국 교회, 소상공인·시민에 고개조차 들 수 없다”
- 20대 대상 디지털 성범죄 가해자 41%는 ‘애인’
- 한양대병원 23명 집단감염…“27일 입원환자 보호자 첫 확진”
- 눈 덮인 도로 한복판 코로나 백신 접종장 변신 왜?
- 게임스톱발 ‘헤지펀드-개미 대결’, 증권계 규제론으로 번져
- 자가격리할 집이 없는데요…노숙인 시설도 집단감염 확산
- 이재명 경기지사, 국립5·18민주묘지 홀로 참배
- 피라냐 이빨도 이겨내는 2.5cm 아마존 메기…비결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