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의 마음속에 있는 어린이를 불러내다 [이종산의 장르를 읽다]

소설가 2021. 1. 29. 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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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베서니와 괴물의 묘약
잭 메기트-필립스 지음·이사벨 폴라트 그림

어린이의 마음을 움직이는 이야기는 어른의 마음도 움직인다. <메리포핀스> <비밀의 화원>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곰돌이 푸> <찰리와 초콜릿 공장> 그리고 <해리포터>에 이르기까지 어린이의 마음은 물론 어른의 마음까지 사로잡은 이야기들은 수도 없이 많다. 이상한 일은 아니다. 어른이란 과거에 어린이였던 사람이고, 어린이는 미래에 어른이 될 사람이니까. 어린이가 모르는 게 한 가지 있다면, 어른의 마음에도 어린이가 한 명씩 들어 있다는 것이다.

<베서니와 괴물의 묘약>은 어른의 마음속에 있는 어린이를 불러내는 이야기책이다. 무려 511살이나 먹은 ‘에벤에셀’은 호화로운 대저택에서 괴물과 살고 있다. 어느 날 괴물은 그에게 어린아이가 먹고 싶다고 말한다. 몇 백년 동안 괴물에게 먹을 것을 가져다주고 그 대가로 젊음의 약을 받으며 수명을 연장해온 ‘에벤에셀’은 괴물의 먹이가 될 어린아이를 구하려 보육원에 가서 가장 성질이 고약해 보이는 아이 ‘베서니’를 입양해온다. 그러나 ‘베서니’는 결코 호락호락한 아이가 아니다. 어른과 아이가 만나는 이런 식의 이야기가 그렇듯 이 책은 특별한 우정에 대한 이야기다. 그리고 이런 이야기가 흔히 그렇듯 이 특별한 우정은 사람의 마음을 제대로 건드린다.

‘에벤에셀’이 ‘베서니’에게 자신은 착한 사람이 아니라 그냥 착한 척하는 사람일 뿐이라고 고백하는 대목을 읽다가 나는 뜨끔해서 목이 메고 말았다. 맞아, 난 착한 사람인 적이 없어. 그냥 착한 척하며 살아온 것뿐이지. 그럼 진짜 착한 사람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젊음의 약을 얻으려고 괴물의 입에 오랫동안 키우던 고양이를 던져넣었던 이기적인 ‘에벤에셀’과 단지 다른 사람을 괴롭히는 게 재밌어서 어떤 아이의 코에 지렁이 다섯 마리를 넣었던 못된 ‘베서니’는 함께 지내면서 진짜 착한 게 무엇인지 알아간다.

또 진짜 화해가 무엇인지, 용서는 무엇인지, 우정은 무엇인지도 배운다. 어렴풋이 삶과 죽음의 의미도 깨닫는다. 두 사람은 서로에게 인생의 첫 친구가 되어준다.

어린이에게 어른이 책을 읽어주는 시간이 중요하다는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런 시간이 어린이에게만 필요한 건 아니다. 어른에게도 누군가가 책을 읽어주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 누군가는 자기 자신이어야 한다. 어른이 된 내가 마음속의 어린이에게 매일 소리 내어 <베서니와 괴물의 묘약> 같은 책을 한 챕터씩 읽어준다면 분명 달라지는 것이 있을 것이다. 너무 바쁘다면 한두 쪽도 괜찮다.

어른이 되고 나니 누구도 내게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알려주지 않는다. 누군가와 어떻게 친구가 되어야 하는지, 화해는 어떻게 하는 건지, 용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알려주지 않는다. 하지만 어린이를 위해 나온 책들은 항상 그런 이야기를 한다. 그것도 재밌고 다정하게. 최고의 판타지를 가미해서. 어릴 때 당신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람이 있었는지 없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이제부터 당신이 스스로에게 멋진 책을 읽어주면 된다. 그래 줬으면 좋겠다. 당신 마음속의 어린이를 위해 하는 부탁이다.

<이종산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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